토끼의 해 방송계 이슈

[신년특집] 토끼의 해 방송계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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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출처 : EBS 홈페이지 화면 캡처

제공 : EBS

◇ EBS, 폭우로 인한 개국 최초 방송 중단 사태(2011.07.27.)
2011년 7월 27일 오전 8시 20분께 중부지방에 내린 엄청난 폭우로 인해 우면산에 산사태가 일어나면서 EBS 방송센터 세트실이 붕괴되고 제작 스튜디오에 토사가 유입됐으며, 전원을 공급하는 기전실이 침수돼 방송센터 전체가 정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EBS는 주조정실에 긴급 비상 전원을 투입해 TV 방송을 송출하고 라디오방송은 음악방송으로 대체했으나 같은 날 오후 1시 50분께 비상전원장치 전력 고갈로 약 16분간 방송 송출이 중단되고 비상용 영상을 방송했다.

오후 2시 6분께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한 EBS 본사에 송출 시설을 설치해 지상파 TV는 정상적인 방송 운행을 재개했지만, EBS 플러스1, EBS 플러스2, EBS English 등 케이블 채널은 송출 시설이 복구되지 않아 지상파방송을 재전송했고, 라디오의 경우에는 송출 신호가 끊겨 비상용 음악을 방송했다.

이날 EBS는 이명구 부사장을 중심으로 침수 피해 복구 대응단을 구성해 직원 200여 명을 동원, 토사를 제거하고 물을 퍼내는 등 피해 시설 복구에 나섰다. 그리고 오후 7시 이후 케이블 방송도 점차 정상 방송하면서 약 11시간 만에 모든 채널의 방송 송출을 정상화했다.

◇ SBS, 지상파 최초 전면 HD 전환(2011.08.18.)
SBS는 2011년 8월 19일 오후 5시 30분 방송하는 프로그램 ‘날씨와 생활’을 끝으로 SD 방송을 마치고 20일부터 방송하는 모든 프로그램을 HD로 제작·송출하기 시작했다. 이는 지상파 방송사 중 가장 빠르게 HD로 전면 전환한 것이다.

◆ 1999년

‘MBC 뉴스데스크’ 방송 화면 캡처

◇ 만민중앙교회 MBC 습격 사건(1999.05.11.)
MBC는 5월 11일 오후 11시 이재록 목사와 만민중앙교회의 문제를 다룬 ‘PD수첩 – 이단 파문! 이재록 목사! 목자님! 우리 목자님!’ 편을 방송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오후 10시 30분쯤 만민중앙교회 신도 2,000여 명이 수십 대의 버스와 승용차를 나눠 타고 서울 여의도 MBC 사옥 앞으로 몰려들었다. 이들 가운데 300여 명은 오후 10시 50분쯤 정문을 뚫고 사옥 안으로 난입했다. 11시 5분쯤 이들은 주조정실을 점거하고 닥치는 대로 방송 기자재를 끄거나 부수며 방송 송출을 강제로 중단하고 이를 제지하는 직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이로 인해 ‘PD수첩’은 약 5분 만에 방송을 중단하고, 남산 송신소에서 보관 중이던 다큐멘터리 ‘자연은 살아있다’를 긴급 송출했다. 오후 11시 40분쯤 700여 명의 경찰 병력이 투입돼 난입한 신도들을 끌어냈고 방송 송출을 정상화했다.

이는 강압적인 물리력을 앞세워 방송을 중단시킨, 과거 군사 쿠데타 때도 없었던 대한민국 방송 역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 1987년

출처 : 노컷브이 유튜브 채널

◇ CBS, 보도 기능 회복(1987.10.15.)
CBS는 1980년 언론탄압으로 뉴스와 광고를 금지당하고 종교와 음악 위주의 방송만 할 수 있었다. CBS는 방송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건의서를 정부와 국회에 제출하고 1986년부터 방송 기능 정상화를 위한 대국민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1987년 6월 항쟁과 6·29 선언 이후 언론 민주화의 바람이 불면서 10월 15일 약 7년 만에 CBS의 뉴스가 다시 전파를 탔다. 이날 많은 CBS 구성원이 뉴스를 제작하는 생방송 부스를 찾아와 CBS 뉴스의 새로운 시작을 함께 바라봤다.

◇ 새 방송법 제정(1987.11.28.)
1987년 11월 정기국회에서 언론기본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방송법을 제정했으며, 한국방송공사법을 개정했다.

새 방송법의 가장 큰 특징은 과거의 언론기본법에서 단순 심의기구 역할에 그쳤던 방송위원회에 독립적인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또, 특별법에 의해 설립한 방송사의 이사 추천권과 결산 공표권도 부여했다.

또한, 한국방송공사법을 전면 개정하고 공영방송 사장 선임권을 행정부처(당시 문화공보부) 장관으로부터 방송위원회가 추천한 이사회로 이양했다.

◆ 1975년

◇ EBS, 우면동 방송센터 준공(1975.08.31.)
현재 EBS의 모체라 할 수 있는 한국교육개발원(KEDI)은 1975년 8월 31일 한국교육개발원 스튜디오동(현 EBS 우면동 방송센터)을 준공하고 그해 9월 27일부터 방송을 제작하면서 본격적인 우면동 시대를 열었다. 같은 해 12월에는 한국 최초로 컬러TV UHF 2개 채널 시험 전파를 발사했다.

◆ 1963년

◇ 동아방송(DBS) 개국(1963.04.25.)
동아방송(DBS)은 동아일보사가 겸영한 우리나라 두 번째 민간상업방송으로, 1963년 1월 7일 상업방송으로 정식인가를 받고 4월 25일 오전 5시 30분을 기해 개국했다. 호출부호 HLKJ, 주파수 1230㎑, 출력 10㎾였다.

◇ KBS, 광고 방송 시행(1963.01.01.)
1960년대 방송은 운영의 기틀이 불안했으며, 특히 재정 규모가 매우 취약해 재정난에 시달렸다. 이에 정부는 1962년 12월 3일 「국영텔레비전 방송사업운영에 관한 임시조치법」과 「특별회계법」을 제정하고 1963년 1월부터 KBS의 광고 방송을 시행하고 시청료 징수를 단행하는 등 재원 마련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 1951년
◇ ‘라디오 학교’ 방송 시작(1951.06.18.)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6월 18일 KBS는 부산에서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라디오 학교’라는 프로그램을 매일 15분씩 방송했다. 전쟁 피난민으로 부산에 학생 수는 증가했지만 교육 시설, 교과서, 교원 등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을 위한 것이었다. 이는 우리나라 교육 방송의 시초이다.

◆ 1927년

◇ 경성방송국 최초의 방송 시작(1927.02.16.)
일본은 한반도 통치 수단으로 방송국 설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1926년 11월 30일 사단법인 경성방송국을 서울 정동에 설립하고 1927년 2월 16일 최초의 방송을 시작했다. 이때의 출력은 1㎾였으며 주파수는 690㎑, 호출부호는 JODK였다.

방송 초기에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혼합해 방송했고, 순수 한국어 방송으로는 창이나 민요, 동화 등을 방송했다. 일본어 방송은 주로 뉴스 및 경제 상황 등을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