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료 둘러싼 동상이몽

수신료 둘러싼 동상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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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박성제 MBC 사장이 MBC도 수신료를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면서 수신료를 둘러싼 미묘한 입장차가 감지되고 있다.

박 사장은 5월 7일 한국방송학회 주최로 열린 ‘공영방송의 철학, 제도, 그리고 실천’ 콜리키엄에서 “MBC가 공영방송으로 분류되지만 공적재원 관련 정책에서는 민영방송에 포함되는 모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수신료가 특정 방송사에만 주는 기금이 아니라 공영방송 전체 사업의 경비 충당을 위한 것인 만큼 MBC가 자격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업계에서는 이날 박 사장의 발언이 MBC 경영난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고 있다. MBC는 2018년 1,237억 원의 영업 적자를 낸 데 이어 지난해에도 1,500억 원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KBS와 마찬가지로 업무추진비 삭감 등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상황이다.

수신료는 TV 방송 시청에 부과되는 요금으로 1963년 100원으로 출발해 1981년 2500원으로 오른 뒤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시청료 거부 파동 등을 거치면서 1994년부터는 전기요금과 함께 징수되고 있으며, 수수료를 제외한 금액을 KBS와 EBS가 97:3의 비율로 나누고 있다. 1981년 당시 신문 월 구독료를 기준으로 책정된 수신료가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면서 여러 차례 수신료 정상화 움직임이 나타났지만 정치권의 입장차와 신문‧종합편성채널 등 이해관계자의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됐다.

박 사장의 발언에 KBS는 공개적으로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내부 구성원들로 조직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이하 KBS 새노조)와 KBS 노동조합(이하 KBS 노조)은 내부 성명을 통해 각자의 입장을 밝혔다.

KBS 새노조는 5월 12일 성명을 통해 “지상파 경영난이 심각하다고 해 설득력 있는 근거 없이 수신료가 논란으로 키워지는 상황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KBS 경영진이 먼저 공적책무와 이를 뒷받침할 재원 마련에 대해 얼마나 준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신료 현실화는 길게 보고 나가야 할 목표이기에 구체적인 비전과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KBS 노조는 6월 15일 성명을 통해 “박 사장이 오는 6월 19일 부산에서 열릴 세미나에서도 수신료를 지원 받겠다는 입장을 펼칠 것으로 알려졌다”며 “현재 받고 있는 수신료가 쪼개지는 것은 대규모 적자를 기록 중인 KBS에게 존망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MBC가 수신료는 KBS의 것이라는 명제를 깨고 나섰으면 KBS는 당연히 강하게 반발해야 하는 게 생존 논리”라고 덧붙였다.

수신료 배분 확대가 숙원 사업 중 하나인 EBS의 계산도 복잡해졌다. 월 2500원 중 EBS의 몫은 70원이다. 한국전력에 돌아가는 수수료보다 낮은 금액이다. 이 때문에 EBS의 수신료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왔다.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EBS의 수신료를 늘려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게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먼저 방송통신위원회는 올해 초 중장기 방송제도개선안에서 기존 ‘지상파-종편-보도채널’로 나뉜 구조를 ‘공영방송-공공서비스방송-민영방송’으로 구분했다. 여전히 논의 중이긴 하나 업계에선 KBS를 공영방송으로, MBC를 공공서비스방송으로 분리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공공서비스방송에는 MBC뿐 아니라 아리랑TV‧국악방송 등 다른 방송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 논의가 진행된다면 MBC에 대한 수신료 지원은 가능성이 매우 낮다.

수신료 현실화를 통한 재분배도 쉽지 않다. KBS 경영평가단은 6월 2일 지난해 경영평가결과를 공개하면서 수신료 현실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론에 민감한 정치권에서 먼저 수신료 인상 카드를 꺼내진 않을 것이고, ‘수신료 분리 징수’‧‘수신료 환불 요구 최다 기록 갱신’ 등의 이슈가 계속 나오는 한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한 수신료 현실화 운동도 힘들 것으로 보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신료 현실화 주장에서 가장 큰 예로 들고 있는 영국 BBC에서도 수신료 폐지를 검토 중이다. 해외 언론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BBC를 대상으로 TV를 시청하지 않아도 정해진 요금을 무조건 내야 하는 수신료 제도를 폐지하고 보는 만큼만 돈을 내는 지불 과금 제도로 변경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세계 공영방송의 모델인 만큼 BBC에서 수신료 제도를 변경한다면 국내에 끼치는 영향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다만 스웨덴의 예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스웨덴은 올해 1월부터 수신료 납부를 원천징수로 변경했다. 기존에는 라디오와 TV 수신기를 보유한 가구에만 수신료 고지서를 발부했지만 올해부터는 개별 고지서 대신 개인 소득 원천징수 방식으로 납부하도록 했다. 한국납세자연맹은 2월 18일 스웨덴 현지에 설립한 KTA국제납세자권리연구소가 기고한 리포트에서 “새로운 TV 수신료 징수 방식에 대해 스웨덴 납세자의 반대 여론이 높지 않다”며 “스웨덴 공영방송의 공정한 보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세금이 낭비되지 않고 국민을 위해 사용된다는 정부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세금으로 거두 수신료를 일반 국가 재정과는 별도로 관리해 스웨덴 공영방송사의 재정 독립을 지켜주고 이를 통해 공영방송사의 공공성을 증대하겠다는 스웨덴 정부의 안내를 납세자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면서 “이는 정부가 걷어들인 세금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 투명하게 사용할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