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UHDTV 시장을 두고 국내 제조사와 경쟁하고 있는 일본의 소니가 본격적인 공세를 시작했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국내 제조사에게 밀리는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나서는 분위기다.
현재 UHD 분야에서 플랫폼 기술은 각자의 영역에서 일정 수준 궤도에 올랐다. 지상파와 케이블, 위성방송, IPTV 등은 자신들이 가지는 미디어 플랫폼 역량을 UHD로 전환하는 것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주파수나 전송방식, 또 실제 운용을 가정한 현업부담 등의 난제들이 산적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UHD 플랫폼 전략은 상당히 구체적인 편이다.
반면 UHD 콘텐츠 분야는 이야기가 다르다. 국내에서 제대로 된 UHD 콘텐츠를 생산하고 수급할 수 있는 사업자는 지상파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지상파 UHD 가능성이 각광을 받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연히 4월 UHD 상용화를 천명한 케이블 사업자들은 콘텐츠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지상파와 비교해 양질의 UHD 콘텐츠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상용화를 정상적으로 실시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망도 어둡다. 케이블 사업자가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UHD 콘텐츠는 기대할 수 없는 수준인데다, 지상파 UHD 콘텐츠를 가져오자니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진다. (실제로 홈초이스는 지난해 MBC와 UHD 콘텐츠 제휴 계약을 맺었다가 성사 직전에 틀어진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케이블 UHD 콘텐츠 사업자인 홈초이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UHD 콘텐츠를 보유한 소니에 손을 내밀었다. 소니의 계열사인 소니 픽처스가 보유한 막대한 UHD 콘텐츠를 자신들의 플랫폼에 끌어온다면 성공적인 상용화의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니는 여러 가지 기술적인 문제를 이유로 자신들의 UHD 콘텐츠를 홈초이스에 개방하는 것을 피하고 있다. 케이블 UHD 상용화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몸이 잔뜩 달아오른 홈초이스는 협상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소니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소니의 이러한 태도를 두고 세계 UHDTV 디스플레이 시장의 판도 변화가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현재 소니는 심각한 경영난 속에서 PC부문을 매각하고 TV부문을 분사하면서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런 소니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은 UHDTV다. 실제로 소니는 HDTV 시절 국내 제조사들로부터 시장 주도권을 빼앗긴 상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UHDTV 분야에 상당한 역량을 기울이고 있다. 그 결과 소니는 UHDTV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세계를 제패했으며 촬영, 제작, 편집 등 관련 인프라에서도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국내 제조사들이 앞선 기술력과 더불어 가격을 내린 UHDTV를 속속 출시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시장조사기관인 NPD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1월 북미지역 UHD TV 시장에서 금액 기준 50.4%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3개월 연속 1위를 달성해 소니를 왕좌에서 내몰았다. 물론 전 세계 UHDTV 점유율로 보자면 소니가 아직 1위 사업자이지만 그 뒤를 국내 제조사가 바짝 조이는 형국이다.
정리하자면, 소니의 입장에서 국내의 UHD 경쟁력 제고는 상당히 불편한 돌발변수다. 그렇기 때문에 홈초이스와의 UHD 콘텐츠 수급 계약에 있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만약 홈초이스가 정상적으로 소니의 UHD 콘텐츠를 수급 받아 단기간에 ‘UHD 붐’을 일으킨다면 장기적으로 세계 UHDTV 시장 수성을 노리는 소니에게는 크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홈초이스의 끈질긴 UHD 콘텐츠 수급 노력이 의외로 빠른 결실을 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소니의 입장에서 홈초이스에 UHD 콘텐츠를 제공한다고 해도 자신들에게 직격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간단히 ‘경제사업’에 뛰어들 것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전망의 기저에는 소니의 ‘강력한 UHD 인프라’가 있다.
최근 막을 내린 일본 최고의 카메라 전시회인 CP+에서 소니는 자사의 UHD 카메라와 디스플레이를 함께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여기에는 UHD 영역에서 촬영과 제작, 편집, 심지어 조명과 음성 시스템까지 망라한 소니의 자신감이 배어있다. 디스플레이에 매몰된 국내 제조사들이 UHDTV 수상기를 제작한다고 해도, UHD 콘텐츠를 제작하고 편집하고 가공하는 것은 물론 플랫폼 분야에서도 막강한 인프라를 보유한 자신들의 아성을 넘을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 이유로 소니가 막강한 UHD 인프라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콘텐츠를 홈초이스를 비롯한 다양한 사업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종속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단적인 예로 CES 2014에서도 국내 UHD 장비는 디스플레이를 빼면 ‘제로’인 반면 일본의 UHD 장비는 막강한 라인업을 구축했었다. 답답하지만 이런 현실을 타파하고자 국내 제조사에 소니와 같은 방송장비 제작에 나서라고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내 UHD 방송 장비가 없는 이유는 내수시장의 중심인 지상파 UHD보다 유료방송 중심의 UHD 전략을 추진한 정부의 패착도 있다)
한편 홈초이스는 소니와의 계약이 불발돼도 미래창조과학부 주도로 만들어진 100억 펀드인 ‘올포원’의 측면지원에 기대어 UHD 콘텐츠 수급에 자신 있으며, 그 외 다양한 루트로 UHD 콘텐츠를 모았기 때문에 상용화에는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케이블 UHD 콘텐츠 사업자인 홈초이스는 4월 상용화가 시작되면 UHD 전용 채널인 ‘유맥스(U-Max)’를 통해 다큐멘터리, 영화, 드라마 등을 정상적으로 방영할 계획이다. 홈초이스는 UHD 상용화 초기에는 하루 본방 4시간을 기준으로 삼아 유맥스를 운용할 계획이며 추후 권역별 케이블 사업자들의 협의를 전제로 해당 채널의 번호를 통일하는 방안도 고려중이다.
그러나 자체 제작은 힘들고, 지상파 콘텐츠는 유입경로가 막힌 상황에서 제조사 별로 수집한 콘텐츠에 홈초이스가 개별적으로 모은 콘텐츠를 합치는 형태로는 진정한 UHD 상용화가 어렵다는 것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