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필요 없다고? …”지상파도 공공재”

[사설] 지상파 필요 없다고? …”지상파도 공공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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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변철호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장] 최근 ‘지상파 무용론’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얼마 전,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지상파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모 국회의원은 “시청자 입장에서 지상파와 종합편성 채널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고, 지상파 직접 수신율은 불과 2.6%밖에 되지 않는다”며 지상파방송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일각의 주장대로 지상파방송은 더 이상 필요치 않은 걸까?

지상파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국민 대다수가 생수를 사 먹고, 정수기를 이용한다고 해서 수돗물 수질을 ‘식용 불가’에 맞춰도 될까?”, “재정 악화가 심각해지니 건강보험을 없애고 의료 민영화를 도입해도 될까?”

아마 국민 대다수는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국민들은 전 세계적인 펜데믹 상황에 미국 등 선진국보다 우수한 의료체계를 경험하며 적정수준의 보험료를 부담할 가치가 있다는 데 동의했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최소한의 공적 서비스가 왜 필요한지 온몸으로 체감한 것이다. 지상파방송도 마찬가지다. 공영방송 등 방송의 공적 서비스 영역이 사라진다면 우리나라 방송 생태계는 상업적, 자극적 콘텐츠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사실 모 국회의원이 지적한 직수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도 잘못된 디지털 전환 정책에 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디지털 전환을 주도한 영국과 일본 등 대부분의 국가는 디지털 전환 이후 직수율이 증가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디지털 전환 이전인 2007년 21.4%이던 직수율이 디지털 전환 이후 10% 안팎으로 떨어졌고, 이제는 겨우 한 자릿수만 유지하고 있다.

미디어 환경 변화와 함께 미디어 이용자들의 이용행태가 변화하면서 지상파방송에 대한 경쟁력은 약화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해외 여러 지상파방송은 우리의 지상파방송처럼 처참하게 추락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지상파방송에 대한 규제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BBC, ARD, ZDF, NHK 등 해외 공영방송사들은 디지털 전환과정에서 시청자 서비스 확대에 방점을 두었다. BBC 등은 프리뷰 형태의 30개 이상 다채널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면서 지상파방송의 경쟁력을 지탱해 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지상파방송은 아날로그 1채널을 디지털 1채널로 변환하는 1:1 전환에 그쳤고, 케이블TV와 IPTV에 점점 점유율을 빼앗기고 있다.

다채널 서비스 등 다양한 서비스가 가능하고 이동방송에 유리한 유럽방식을 채택하지 않고 미국식 전송방식을 선택한 것이 큰 패착이었던 것이다. 또한 종합편성 채널을 4개나 허가해 신문이 방송을 소유하게 하는 등 매체 균형 발전을 저해하는 정책으로 지상파방송의 추락은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지상파 UHD 방송도 정책적 오류의 연장선에 있다. 지상파 방송사는 UHD 본방송을 앞두고 시청자 중심의 지상파 UHD 방송을 위해선 내장형 안테나, 모바일 UHD 방송 허용, 개인 맞춤형 광고 등 다양한 부가 서비스 허용, 콘텐츠 제작비 수급을 위한 광고제도 개선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여러 차례 주장해왔다. 이 같은 법․제도적 지원이 없이는 세계 최초로 지상파 UHD 방송을 시작한다고 해도 고화질만으로는 미디어 산업 자체에 큰 변화를 이끌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결국 지상파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정부는 이동방송에 취약한 미국식 전송방식을 보완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DMB 서비스를 탄생시켰으나 이 때문에 UHD 모바일 서비스를 허가해 주지 않고 있다. ATSC 3.0 기반으로 5G 연동과 자율주행 차량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장해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수 있는 UHD 방송이 우리나라에서만 초고화질에 국한된 1채널 서비스로 머물러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지상파 독과점 시대가 끝났는데 방송법과 제도는 독과점 시대 그대로인 것이다. 그런데도 글로벌 미디어 공룡 NETFLIX는 아무런 규제 없이 한국에서 독주를 이어가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방송정책이고 규제인가?

다시 서론으로 돌아가서 국민들이 생수를 사 먹고, 정수기를 이용한다고 해도 수돗물 수질은 벌레가 나오지 않도록 깨끗이 관리해야 한다. 또 재정 악화가 심각해진다고 해도 건강보험 형태로 의료 서비스는 유지돼야 한다.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지상파방송도 마찬가지다. 유료방송 가입자가 거의 100%에 달한다 해도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공공 서비스 플랫폼이 있어야 한다. 온 국민이 코로나19 생활안정지원금을 받는 이 어려운 시기에는 더욱더 그렇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