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김승준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회장]
국가 전산망 화재 사태, ‘국가 미디어데이터센터’ 구축의 경종
얼마 전 국가 전산시스템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행정과 금융, 의료 서비스까지 마비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기술적 사고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데이터 보존 체계가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준 경고였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행정망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방송과 언론, 문화의 근간이 되는 미디어 데이터 역시 같은 위험 속에 놓여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 미디어 데이터는 ‘문화유산’이자 ‘자산’
방송 영상과 음성은 단순한 기록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시대의 역사, 국민의 기억, 그리고 대한민국의 문화가 담겨 있습니다. 즉, 미디어 데이터는 국가의 문화유산이자 미래 산업의 자원(Data Asset)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방송사마다 따로 아카이브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 자료들은 대부분 한 건물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KBS는 여의도 신관 지하에 모든 방송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데, 만약 화재나 지진이 발생한다면 수십 년의 방송 기록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MBC나 SBS는 재난복구 시스템을 갖추긴 했지만, AI를 활용한 자동화나 지능형 관리 수준은 아직 제한적입니다. 결국 국가 차원의 미디어 데이터 보호 체계가 부재한 상황입니다.
국가 미디어데이터센터란 무엇인가 — “국가의 디지털 문화 금고”
이제는 각 방송사가 개별적으로 자료를 지키는 시대를 넘어, 국가가 나서서 통합된 ‘국가 미디어데이터센터’를 구축해야 할 때입니다. 이 센터는 단순히 백업을 위한 창고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영상과 음성 자산을 안전하게 보존하고, AI 기술을 통해 새롭게 활용하는 ‘디지털 문화 금고’입니다.
핵심 개념은 다음과 같습니다.
안전한 보관: 테이프, 클라우드, 객체 스토리지를 결합한 다계층 저장
재난 대응: 수도권과 지방에 나누어 운영해 한쪽이 마비돼도 즉시 복구
AI 자동화: 영상 속 인물, 장면, 대사를 AI가 자동으로 분석·태깅
공공 활용: 방송·연구·교육기관이 합법적으로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개방형 구조
보안 강화: 국가표준 암호화·블록체인 기반의 저작권 보호 체계
이러한 시스템은 단순한 방송사 백업망을 넘어, ‘국가의 디지털 문화안전기지이자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가 될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 방송 아카이브는 대부분 한 건물, 한 시스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특히 DR(Disaster Recovery)센터 없이 한곳에 모든 영상이 모여 있는 방송사의 경우, 화재나 정전, 지진 등의 재난이 발생하면 복구가 불가능한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디지털 시대의 국보’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국가 차원의 이원화, 즉 분산형 보존 시스템이 시급합니다.
AI 시대의 아카이브 — ‘보존’에서 ‘활용’으로
이제 아카이브는 단순히 자료를 보관하는 공간이 아니라, AI를 통해 자료를 새롭게 발견하고 재구성하는 플랫폼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비 오는 장면이 나오는 드라마’를 검색하면 AI가 자동으로 찾아주고, 오래된 뉴스나 다큐멘터리에서 필요한 장면만 추출해 요약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기술이 도입되면 방송뿐 아니라 교육, 콘텐츠 산업, 연구 분야에서도 새로운 창작과 혁신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국가 미디어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한 제언
이제 필요한 것은 국가의 결단과 협력입니다. 방송 3사와 EBS, 국립영상자료원을 포함한 통합 협의체 구성 ‘미디어데이터 주권법(가칭)’ 제정, 데이터 표준화·백업 체계 의무화 → 수도권 시범센터 → 지방 분산형 센터 확산의 3단계 로드맵 추진, 문화체육관광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행정안전부가 함께하는 공동 재난대응 및 복구 시스템 구축 등 이러한 체계가 마련된다면, 미디어 데이터는 더 이상 방송사 내부의 자산이 아니라 국가의 공유 자산이 될 것입니다.
“기억이 안전해야 미래가 있다”
이번 전산망 화재는 디지털 시대의 기억이 얼마나 쉽게 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데이터가 한곳에 집중되어 있고, 백업 체계가 부실하며, AI 활용이 뒤처진다면 또 다른 ‘디지털 재난’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방송기술인들은 이미 그 위험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미디어데이터를 지키고, 그 안에 담긴 기억과 가치를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할 때입니다. “기억은 힘이다. 그러나 그것이 안전할 때만 미래가 있다.”
국가 미디어데이터센터는 대한민국의 기억을 지키고, AI 시대의 문화 경쟁력을 높이는 디지털 문화의 최후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