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인 ‘채널재배치’

비현실적인 ‘채널재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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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방송의 가치는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무료보편의 서비스 구현’을 통해 생명력을 얻는다. 특히 전국 디지털 전환을 앞둔 현재의 국내 미디어 상황은 이러한 지상파의 책임을 더욱 중요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최근 직접수신율로 대표되는 지상파 방송 고유의 ‘공익 경쟁률’이 커다란 위기에 직면해있다. 또한 시청권을 볼모로 한 케이블 업체의 과도한 정부 지원 요청이 쇄도하고 있으며 난시청 해소 및 뉴미디어 발전 동력으로 활용되어야 하는 700MHz 대역 필수 주파수는 통신사의 탐욕으로 인해 공공의 서비스를 포기당하고 있다. 게다가 디지털 전환 사업이 진행될수록 해당 사업의 강력한 추진 주체인 지상파 방송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의지도 희석되고 있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채널재배치 작업의 비현실성과 그에 따른 손실보전 논란’이다.

   
 

최근까지 방송통신위원회는 전국 디지털 전환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채널재배치 작업을 전국에서 일괄추진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추진은 곧 엄청난 역풍을 맞았다. 전국이 동시에 디지털 전환 직후 채널재배치에 돌입한다면 송신시설 및 수신 가구 모두에게 엄청난 혼란이 야기되기 때문이다. 이에 방통위는 한발 물러나 4월 27일 전체회의를 열고 2013년 10월까지 채널재배치 유예기간을 두기로 전격 합의했으며 경계지역에서 발생하는 혼신(통신 장애)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라도(2013년 6월), 경상도(2013년 7월), 수도권·강원도·충청도(2013년 10월) 3개 권역으로 채널재배치 기간 및 지역을 분리해 순차 진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이 같은 방통위의 채널재배치 유예 정책도 허점이 많다는 것이 대부분의 의견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채널재배치에 따른 손실보전, 즉 디지털 전환 이후 지상파 방송사가 착수해야 하는 물리적인 작업에 대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당장 지원 액수로 파악할 수 있다. 최근 방통위가 편성하고 기획재정부가 승인한 채널재배치 손실보전 금액은 약 190억 원이다. 기존에 방통위가 편성한 예산인 250억 원에서 무려 60여 억 원이 감액된 것이다. 게다가 이 190억 원 중에서 실제 디지털 전환 작업에 활용되는 금액은 30억 원이 감액된 160억 원이며 또 여기에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이 160억 원의 10%에 달하는 16억 원을 운영비를 이유로 가져가기 때문에 실제 지상파 방송사가 활용할 수 있는 금액은 150억 원에도 미치지 않는다. 이 돈으로 지상파 방송사는 디지털 전환의 중요한 필수요소인 채널재배치 사업을 이루어내야 한다. 더 자세히 보면 KBS가 약 100억 원, MBC와 기타 민영 방송사들이 40억 원을 조금 상회하는 금액을 지원받게 된다.

여기서 많은 전문가들은 해당 금액의 손실보전을 통해 지상파 방송사들이 채널재배치 사업을 올바르게 진행할 수 없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KBS의 경우만 해도 가장 많은 100억 원을 지원받는다고 하지만 채널재배치를 위한 시스템 변경사항은 기간 송/중계소의 경우 송신기 계통에서는 마스크 필터, 일부 컴바이너 교체와 Exciter 채널변경, Amp 세부 조정, Auto-correction 및 컨트롤 관련 센서 조정 또는 교체 등이 필요하다. 또 송신 안테나 계통은채널 컴바이너 교체 또는 분리,브랜치 케이블 교체 및 안테나 위치 조정과 컴바이너와 안테나 간 계통 종합 특성 측정 및 조정도 필요하다. 여기에 간이TV 중계국의 경우 중계기는BPF(마스크 필터) 교체, Exciter 채널변경 및 중계기 전체 특성 조정 등이 필요하며 안테나 계통은 송신안테나 브랜치 케이블 교체 및 안테나 위치 조정과 확정채널 수신안테나 설치가 요구된다. KBS DTV 방송시설은 기간국 33개소 99매체, 간이중계국 309개소 927매체 등 총 342개소 1,026매체이다. 이중 채널재배치 대상시설은 기간국 15개소 29매체, 간이중계국 송신채널 변경은 281개소 718매체, 수신채널 변경은 123개소 237매체 등 총 984매체에 이른다. 이는 기존시설 중 송신채널 변경은 약 73%, 수신채널 변경은 23%에 이르는 엄청난 사업이다. 이런 작업을 100억 원으로 해내야 하는 셈이다.

   
 

게다가 문제는 또 있다. 바로 방통위의 ‘채널재배치’ 순차 작업 자체가 과연 현실성 있는 정책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비록 10개월의 유예기간을 두긴 했지만, 채널재배치의 3권역 순차 작업은 100억 원에 불과한 지원으로 해내기에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특히 세 번째 권역인 수도권 및 강원, 충청권 지역은 인구수만 비교해봐도 다른 권역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디지털 수요가 몰려있다. 3개의 권역으로 나누어 부담을 경감시킨다는 정책은 긍정적이지만, 지금의 지원으로는 이마저도 힘들게 만들고 있다.

최근 케이블 업체들은 전국 디지털 전환을 맞아 갖가지 이론을 내세우며 해당 작업에 대한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주무부처인 방통위도 시청권 보장의 차원에서 이러한 케이블 업체의 주장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대목에 이르러 많은 전문가들은 ‘과연 사기업인 케이블 업체에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안을 차치하고서라도 무료보편의 공공성을 추구하는 지상파 방송사에 대한 손실보전 지원을 줄이는 부분은 이해되기 어렵다. 방통위가 대한민국 미디어 정책의 방향을 ‘유료매체’에만 투자하는 시스템으로 구상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장의 지원은 ‘공익적’ 가치에 부합하는 지상파 방송사에 집중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정지작업은 충분히 진행 중에 있다. 700MHz 대역 주파수 확보나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 그리고 직접수신환경 개선을 위한 지상파의 노력 등으로 충분히 확인 가능한 것이다. 정부의 지원이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유료매체에 몰리는 것은 지양하고, 지상파 방송사에 대한 무료보편의 서비스 가치를 증진시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폭넓은 공감대가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게다가 이번 손실보전 금액 미비 사태는 채널재배치 문제는 물론, 직접수신율을 떨어트려 최악의 ‘블랙아웃 사태’를 일으킬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채널재배치는 아날로그 TV가 종료되면 채널 14번∼51번만 사용하게 됨에 따라, 이전에 활용되던 52번∼69번의 채널들을 14번∼51번 內로 이동해야 하고, 14번∼51번 內의 채널들도 다수 재배치하여야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채널재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방송을 볼 수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블랙아웃이 되어버린 직접수신 가구들이 대거 유료매체로 이동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년 제주도에서 실시된 디지털 전환 시범사업 당시 일부 가구에서 블랙아웃 사태가 발생해 많은 직접수신 가구가 유료매체로 전환한 사례가 있다. 개인의 판단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최소한 무료보편의 공공 서비스를 받기 원하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경제적 부담이 되는 유료매체로 ‘갈아타는 것’은 막아야 한다. 채널재배치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으며 직접수신률 저하와 손실보전 지원의 미비는 이러한 현재의 상황에 더욱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