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대안은 고용 기간제한보다 사유제한이 중요

비정규직 대안은 고용 기간제한보다 사유제한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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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2일 한나라당이 국회 직권상정해 처리한 방송법, 신문법 등 미디어법 효력 발생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 야4당은 부정투표이기에 원천무효라면서 길거리 홍보에 나섰고,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언론악법 원천무효 100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방송법 처리를 두고 야4당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과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 이제 헌법재판소가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됐다.


이런 가운데 정부와 한나라당이 고민하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법안이 존재하고 있다. 바로 비정규직법안이다. 하지만 미디어법 처리 후폭풍에다 이후 국정감사 등이 이어져 8월 임시국회나 9월 정기국회에서 밀어붙일지 여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지난 7월 말 이영희 노동부장관이 기존의 비정규직법안의 핵심사안인 ‘2년 유예’를 접고, 현행법에 따라 원점에서 정규직 전한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유예를 고집했던 한나라당이 반발했다. 이후 지난 7월 30일 당정협의를 거쳐 ‘법 시행 유예입장 유지와 비정규직법 개정 및 정규직 전환금 사용’을 위한 8월 국회를 열자고 야당에 제한했다.


여기에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노사합의를 전제로 무기한 비정규직 사용 검토 의사’를 내비친 것에 대해 ‘사용자 단체’의 의견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면서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노동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당정협의를 통해 이영희 노동부장관의 ‘원점 재검토, 정규직 전환’ 발언은 백지화됐고, 기존 방침인 유예 입장을 고수하게 됐다.


즉 정부와 한나라당이 현행 비정규직법에 명시된 ‘비정규직 2년 이후 정규직 전환’을 하지 않고, 앞으로 비정규직법 개정을 통해 유예기간을 두겠다는 기존입장을 재확인하게 됐다.


어쨌든 노동부는 지금까지 현행 비정규직법에 따라 지난 7월 1일로 2년 유예기간이 지났음에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을 유도키는커녕 모르쇠로 일관했다. 특히 공공부문에 근무하고 있는 비정규직은 노동부의 방치로 상당수 해고문제를 비켜갈 수 없었다.


그동안 노동부가 앞장서 ‘100만 해고 대란설’ 등을 유포했고, 비정규직 정리해고자를 부풀린 듯한 발언을 해왔다. 노동부가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해고자를 늘려 국민 불안을 가속화시킨 다음, 야당의 반대로 법안이 지연됐다고 여론을 호도한 뒤,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었다. 이 같은 정부와 한나라당의 접근방식이 진정 비정규직을 위한 것일까. 한심하기 짝이 없다. 실업이 발생한 만큼 노동부의 부담은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노동부는 지금까지 정리해고를 방치해  왔다. 실업을 해결해야 할 주무부서 노동부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업이 발생해 실업률이 상승한다는 것은 정부의 고용정책이 잘못됐다는 국민적 지표가 될 수 있다. 노동부의 정책 중 노동자들의 생존권, 즉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초 여야, 양대 노총 등이 참여하는 5자회동에서 비정규직법안 개정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여당의 반대에 부딪쳐 사회적 합의를 보지 못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합의를 보지 못한 비정규직법안을 한나라당이 8월 임시국회를 열어 처리하겠다는 발상은 국민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절대 미디어법처럼 직권상정해 일사천리로 처리하는 그런 악수를 두지 않기를 바란다. 만약 다수 석을 이유로 날치기처리하면 국민적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현재 미디어법 졸속처리로 폭풍정국, 안개정국이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현재 비정규직을 860만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전체 노동자 수 대비 50%를 훌쩍 넘긴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제 비정규직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전 국민의 문제이고, 전국 노동자의 문제이며, 정부가 해결해야할 가장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법 개정문제가 중요하다. 하지만 문제해결을 위한 비정규직법이 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다. 다수당인 한나라당과 정부가 진정성 있고 건설적인 접근으로 비정규직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여야 국회의원들이 자신과 자신 가족의 문제로 바라볼 때, 비정규직 문제가 원활히 해결되리라고 믿고 싶다.


현행 비정규직법에는 ‘2007년 7월 1일 이후 계약, 갱신, 연장한 노동자들은 2009년 7월 1일이 되는 날부터 정규직화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이 방안을 두고 현재 정부와 한나라당은 1~2년을 더 유예하자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비정규직으로 2년 이상 일했다면, 현행법에 따라 정규직화를 하고, 정부가 기업에게 전환기금을 지원해 정규직화 유도에 앞장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시민사회단체 등 노동시민단체는 현행 비정규직법 자체가 문제가 많으므로 전면 법 개정을 해야 하고, 그 핵심으로 ‘기간제한’이 아니라 비정규직 사용업무를 제한하는 ‘사유제한’을 요구하고 있다.


현행 비정규직법에서 가장 큰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기간제한을 두다보니 기업들이 법을 피해가는 편법적 행동을 자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2년이 되기도 전에 계약을 해지하거나 외주화, 3개월, 6개월 등의 초단기로 고용 계약을 해 해고를 일상화했다. 그리고 그 폐해는 고스란히 비정규직들이 짊어져야했다.


어떻게 보면 정부와 한나라당의 입장처럼 기간제한을 좀 더 유예(연기)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유예기간이 끝나면 비정규직 문제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재논의를 하게 되는 맹점도 도사리고 있다. 비정규직을 자르지 않고, 1~2년 기간만 연장해주는 단기적 효과는 있다. 하지만 미래를 염두에 결정한 장기적 처방은 아니다. 꼼수를 부린 단기적 처방인 것이다.


그래서 비정규직의 채용에 있어 ‘기간제한’에서 ‘사유제한’으로 바꾸는 법개정이 중요하다. 비정규직을 고용할 수 있는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자는 것이다.


즉 비정규직 채용시 진정으로 임시적 고용 이유가 존재할 때만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수출물량, 생산물량 등 예상치 못한 일량이 늘어났을 때, 병가와 산재, 휴가 등으로 결원을 잠시 대체하고자 할 때, 기후의 변화로 계절적인 영향을 받는 다거나, 연구 사업 등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는 사업, 방학을 이용한 학생 아르바이트 등에만 비정규직을 임시 채용해야 하는 방안 마련이 중요하다.


한 사용자 밑에서 상시적 전일근로를 하면서 근로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노동자들은 무조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즉 상시적으로 행하는 일자리는 당연히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개정 비정규직법에 명문화한다면 지금같이 비정규직에 대한 해고, 인원감축과 대체, 외주화 용역 등의 편법은 사라질 것이다.
 
김철관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수석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