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기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최성준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깜짝’ 임명됐다. 최 내정자는 이경재 위원장이 경질의 기로에 서서 흔들릴 때 슬그머니 등장한 후보군에 단 한 번도 이름을 올린적 없다. 그야말로 ‘의외의 카드’다. 당장 최 내정자를 발탁한 박심(朴心)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선 업계에서는 최 내정자가 방송통신에 문외한이지만 판사로 재직한 비정치인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정치인의 경우 인사청문회부터 난관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지만 평생을 판사로 살아온 법관은 상대적으로 흠결이 적기 때문이다. 이에 인사파동을 겪으며 부침을 거듭한 현 정권이 이경재 위원장을 경질하며 상대적으로 ‘안전한’ 판사를 발탁했다는 분석에 중론이 쏠린다.
하지만 최 내정자의 발탁에도 변수는 있다. 우선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방송통신 비전문가라는 점이다. 최 내정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자신이 방송통신 비전문가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법률가로서의 중립성이 방통위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제1원칙은 법이 정한 기준을 따른다는 것이나 법 원칙만 쫓다 보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기도 한다”며 “법 원칙을 중시하되, 법이 허용하는 부분에서의 융통성을 찾아보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방송 및 통신을 잘 모르지만 판사의 ‘감각’으로 방통위를 훌륭하게 조율하겠다는 뜻이다.
현재 방송통신 업계의 상황은 복잡하다. 미디어렙, 종편, 700MHz 방송용 필수 주파수 할당 등 공익과 사익의 경계가 첨예하고 충돌하는 상황에서 각 이해 당사자들은 극한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 내정자의 발탁은 민주당의 논평처럼 “축구감독이 필요한 데 아이스하키 감독을 배치한 것처럼 어리둥절한 인사”라는 비판이 가능해 진다. 또 강성남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역사를 통틀어 방송이 이렇게까지 미묘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적이 없다는 점을 감안한 인사가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방송 및 통신 비전문가의 방통위원장 내정은 상당한 리스크가 예상된다.
게다가 ‘법 원칙’을 지나치게 내세우겠다는 최 내정자의 발언에는 ‘위험한 냄새’가 난다. 비록 미래창조과학부 주도의 유료방송 규제완화 정책이 상당한 부작용을 일으키며 방송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지나치게 경직된 규제도 무분별한 규제완화만큼 위험하다. 이런 우려는 몇몇 언론을 통해서도 읽힌다. 물론 융통성을 가지겠다는 발언을 하긴 했지만 그 융통성이 사업자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면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일으킬지, 아니면 상황에 따라 변하는 이중잣대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최 내정자가 판사적 감각과 법의 원칙을 내세우며 방통위원장 직을 수행할 경우 뉴미디어 생태계는 공안정국의 경직성을 닮아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마지막으로 최 내정자의 발탁은 삼권분립의 가치를 심하게 훼손시킨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최근 법관출신의 고위직행은 다반사다. 현 정부 들어서 벌써 두 명의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행정부의 관료가 되었다. 심지어 최 내정자는 서울고법 행정1부 재판장으로 발령받은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서 방통위원장에 내정됐다. 사법부의 신뢰를 위해 도입한 평생법관제의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한 셈이다. 이는 삼권분립을 기반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권력 시스템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