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에 빠진 PPL…제작비 충당 VS 방송 몰입 방해 ...

딜레마에 빠진 PPL…제작비 충당 VS 방송 몰입 방해
PPL 의존 ‘중간 광고 허용’으로 해결 가능할까?…답답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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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화면 캡처
ⓒ방송 화면 캡처

[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 <태양의 후예> 13회에서는 현대자동차 제네시스에 탑재된 ‘차선 유지 시스템(Lane Keeping Assistant system, LKAS)’ 기능이 PPL로 등장했다. 차량 스티어링 휠의 LKAS 버튼을 누른 서대영 상사(진구)가 조수석에 탄 윤명주 중위(김지원)와 키스하는 장면은 일명 자율 주행 키스라 불리며 논란의 대상이 됐다.

#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의 마지막 회 주인공은 코스메틱 브랜드 아이소이(isoi)였다. 고려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현세로 돌아온 하진(아이유)은 화장품을 판매하던 중 최지몽(김성균)과 비슷한 얼굴을 한 고객을 맞아 ‘고려시대 화장 문화’를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아이유가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아이소이 제품들이 화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함을 물론 클로즈업까지 돼 주인공은 아이소이라는 네티즌들의 비아냥이 쏟아졌다.

최근 과도한 간접광고(Product Placement, PPL)가 드라마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지적이 쏟아지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PPL과 질 높은 방송 프로그램의 선순환 구조를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PPL은 광고 마케팅 기법의 하나로, 원래는 영화나 드라마 제작 때 소품 담당자가 영화에 사용할 소품들을 배치하는 업무를 뜻하던 용어였으나 최근 광고 효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남에 따라 광고를 노리고 영화에 제품을 내보내는 뜻으로 쓰고 있다.

2009년 방송법 개정으로 PPL이 도입될 당시에는 배경이 되는 소품 정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드라마 등 프로그램의 흐름에 방해가 된다는 지적이 없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PPL 시장이 급격하게 커지자 드라마의 흐름을 깨는 것은 물론이고 결말 등 방향까지도 영향을 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마켓링크가 10월 24일부터 28일까지 서울과 경기, 6대 광역시 거주 20세 이상 60세 이하 644명에게 실시한 PPL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KBS와 MBC, SBS, JTBC 등에서 제작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본 대상자들은 5점 만점에 3.81, 3.93 등 거의 4점에 가까운 점수를 내놓으며 PPL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특히 상품(명칭)이 자막‧음성‧소품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노출되거나 언급되는 장면, 상품에 관한 상업적 표현이 자막‧음성‧소품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노출되거나 언급되는 장면을 껄끄러워했다.

방심위 PPL 토론회112월 1일 오후 3시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방심위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선 최용준 전북대 교수와 오경수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은 “조사 결과 PPL이 반복적으로 노출되거나 과도하게 부각되는 경우 또 프로그램의 내용이나 구성과 관계없이 노출되는 부분을 특히나 더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곧 PPL이 제작비 조달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지만 광고주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프로그램과 광고의 구분을 모호하게 해 시청자를 기만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미지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이사는 “저희도 PPL 최소화하고 싶다”며 “PPL 때문에 광고주한테 치이고, 작가들한테 치이고, 배우들한테 치이고 정말 PPL 하기 싫지만 미지급 사태를 막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 이사는 “방송사에서는 드라마 한 회당 약 2억 8천만 원을 주면서 4억짜리로 만들기 원한다. 그럼 회당 1억 2천만 원의 공백이 생기는데 20부작을 만든다고 하면 24억의 광고를 따와야지 미지급 사태가 생기지 않는다”면서 “저희도 부끄럽지만 PPL 욕먹을 각오하면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위의 사례에서 언급한 <태양의 후예>는 총 16부작으로 약 130억 원이 들었으며,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는 총 20부작에 약 150억 원이 투입됐다. 이 같은 제작비를 기존 광고만으로는 충당할 수 없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PD연합회가 9월 21일부터 30일까지 KBS, MBC, SBS 등 3사 서울 지역 PD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도 응답자 327명 중 300명(97.1%)이 ‘PPL‧협찬 확대가 제작 여건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고, 301명(92.1%)이 지난 5년 동안 PPL과 협찬의 영향이 더 심해졌다고 답했다. PD가 직접 PPL이나 협찬을 유치하기 위해 뛴 적이 있다는 응답도 43.7%(143명)나 됐다. 이들 중 대다수는 PPL 의존이 △프로그램의 완성도 훼손 △제작진의 자율성 침해 △방송의 공정성 위협 등의 문제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박석철 SBS 전문위원은 “개인적으로도 프로그램 내 광고 삽입을 반대하고 있고,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방송 프로그램 제작진들도 PPL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현실적으로 증가하는 제작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에 PPL의 딜레마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PPL과 가상 광고에 대한 안을 애매하게 만들어서 내놓았는데 방송사에서 PPL을 열어달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다”라며 “방송사에서도 광고와 프로그램을 분리하는 것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우리는 꾸준히 (PPL이 아니라) 중간 광고를 열어달라고 요구해왔다”고 호소했다.

박종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방송법에는 광고에 대한 철학이 있는데 이는 일관되게 방송 광고는 방송 프로그램과 혼동되지 않도록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PPL이 프로그램과 광고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PD연합회의 설문 조사에 응한 대다수 PD들은 PPL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중간 광고 허용을 제시했다. 박 위원의 말처럼 프로그램과 광고의 경계가 애매해져 프로그램의 작품성과 공익성이 위협받는다면 차라리 프로그램과 광고가 명료하게 구분되는 중간 광고가 낫다는 주장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프로그램 제작비를 감당하기 위해서 PPL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PPL로 시청자들의 시청 흐름을 방해하는 것도 또 시간이 지나면서 지나치게 부각되는 것도 사실이다. PPL을 뺄 수도 없고, 넣지 않을 수도 없는 딜레마에 봉착해 있는 것이다. 물론 일각에선 지상파 중간 광고 허용과 PPL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시 등을 해결책으로 내놓고 있지만 이 역시 어느 정도의 효과를 낼지는 아직까지 미지수여서 PPL를 둘러싼 복잡한 방송 생태계는 당분간 답답한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