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컨버전스와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

디지털 컨버전스와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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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재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연산과 데이터, 사유와 대상, 논리와 개체의 융합은 변화의 추동력이 되어 단말과 소프트웨어, 소프트웨어와 통신, 방송과 통신, 매체와 컨텐츠 간의 고도 디지털 컨버전스를 촉발하였다. 이는 제품의 컨버전스, 방송과 통신의 컨버전스, 나아가 영화, 교육, 보건과 방송 및 정보통신 등 산업 간, 생활공간 간, 서비스와 네트워크 간의 컨버전스를 낳는 모태가 되고 있다. 디지털 컨버전스의 확산 결과는 생산과 소비, 수요와 공급의 관행, 절차, 문화의 변화와 소멸 또는 신생이다.

 디지털 컨버전스의 진전은 이렇게 경제 활동의 근간이 되는 기술, 제품, 산업, 경쟁, 기업의 업무 프로세스와 전략, 소비자의 구매행동, 소비자와 생산자의 관계 등 다양한 측면에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특히, IT, 통신, 방송 및 관련 산업은 디지털 컨버전스의 진원지로서 사업과 제품의 정의와 아이덴티티, 활동 범위 등이 총체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다. 동시에 이들은 다른 산업에 앞서 디지털 컨버전스에 의한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정하며 컨버전스를 선도하고, 이를 통해 능동적으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해 나가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출판, 무선통신, 전화, 방송, 영화, 음악 등의 산업은 1880년대를 전후하여 전기와 자기 기술의 발견에 기반을 둔 다양한 음성 및 영상 정보의 저장과 전송 기술의 눈부신 진보를 배경으로 탄생하였다. 나름대로의 기술과 기기, 표준과 규칙, 산업과 문화를 형성하면서 폭발적으로 분화해 나가던 정보의 생성, 저장, 전송관련 산업이 1980년대를 전후하여 새로운 양상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제각각 그 속도와 방식은 달랐지만 각 산업이 디지털로의 환원의 길로 향한 것이다. 분화의 역사에서 통합의 역사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잠재력을 만들면서 각각의 산업은 서로 상이하면서도 동태적인 연관관계를 맺고 서로 침투하는 관계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보면, 융합, 복합, 통합, 결합 등의 방식을 통한 성공적인 조합은 시장에서 뜨거운 반응을 보이며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기술적 실현 가능성도 높고 긍정적 전망도 많은 탁월한 기능간의 컨버전스라 해도 TV와 VTR의 복합처럼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칠 가능성도 상존한다. 컨버전스에 대한 올바른 방향 모색과 전략의 설계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컨버전스에 의해 새로이 등장하는 기술의 장점과 한계를 객관적,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는 이유다. 예를 들어, 모바일 화면의 크기와 전송속도 등의 한계점이 가지는 특성을 이해하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또는 주어진 한계점을 전제로도 성공 가능한 모바일 서비스 및 방송 어플리케이션은 무엇인지에 대한 탐색이 주요 과제가 된다. 또한 IP기반의 방송 서비스인 IPTV의 확산과 이를 위한 특화된 어플리케이션과 콘텐츠의 창출은 어떤 준비와 투자, 노력, 그리고 동시에 경제적, 사회적 반대급부를 가져올 것인가를 다각적인 측면에서 분석해 보아야 한다.

 기술의 진보와 확산은 다이나믹한 현상, 즉, 시간의 진화를 감안하여야 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전송망의 고도화로 미래 IPTV와 저가 인터넷 비디오의 품질 차이가 소멸할 수 있으며, 이는 새로운 산업 양상의 전개를 촉발하게 될 것이다. 이외에도 모바일 화상회의, 비디오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개인화, 지역 기반 서비스, 비디오 텔레폰, 미래형 모바일 게임, 사회적 네트워킹 등에 관련된 혁신 제품의 개발, 관리, 시장 형성 등의 주요 이슈들이 부상하였다. 이런 변화가 초래하는 IT와 통신, 컨텐츠와 방송 등의 산업이 서로 상호 영향을 미치며 생성시키는 하나의 미디어 생태계는 어떤 모습으로 전개, 진화될 것인지가 첨예한 관심사이다. 이런 생태계에서는 플랫폼 사업자의 서비스가 소비자 보다 공급자의 이해에 밀착하게 됨으로써 인터넷처럼 관대한 사회적 플랫폼의 역할을 수행하기보다 수익성 중심의 차별적 서비스에 집중하게 될 가능성도 크다.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은 주로 기존 산업 간 경계에서 중첩이 발생하고 경계가 허물어질 때 출현한다. 이는 현재의 산업 분류에 따른 시각을 다시 보아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래야 기존의 산업 분류 관점이 놓치는 기술과 사업의 개발과 경영의 문제를 다룰 수 있으며, 제품/서비스의 조합에 대한 전략적 재해석을 바탕으로 미래의 제품/서비스의 범위와 방향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과 방송∙통신의 컨버전스는 이미 그 조짐이 보여 졌으며, 정보저장 기술의 급속한 진보는 자동차나 건설과 같이 전혀 상이한 산업의 플레이어들이 자신들의 고객에 대한 서비스의 연장선상에서 컨텐츠의 배송과 공급에 경쟁자 또는 협력자로 참여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만든다.

 엇보다 디지털 컨버전스가 진행된 미래 시점에서 경제 활동의 주인공이 되어있을 넷 세대, 게임세대가 베이비붐 세대를 대체하여 소비자, 생산자, 경영자, 시민의 주류를 형성할 때 이들이 보여주는 즉시성, 모험선호성향, 윤리성, 다면적 관점 성향 등의 특성이 어떤 사회적, 기술적, 정치적, 경제적 변화로 나타날지, 이를 위한 오늘의 준비와 대책은 무엇일지가 파악되어야 한다. 국가와 산업의 건실성과 경쟁력이라는 관점에서 이런 현상을 올바로 이해하고 대책을 준비할 수 있어야 오늘의 기술자와 경영자, 기업과 산업, 정당과 정부가 그 유능성을 인정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