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제조사의 우후죽순 방송진출 우려, 기우일까

대형 제조사의 우후죽순 방송진출 우려,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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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정책 이관 문제를 둘러싸고 여야가 극한 대립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가 미디어 산업발전을 명분으로 제조사의 방송사업자 진출을 용인하려는 비판을 하고 있어 화제다.

 

   
 

정통 미디어 비평 전문지 [미디어 오늘]은 최근 사설 ‘대통령의 고집과 삼성 TV의 방송 플랫폼화’를 통해 ‘IPTV 및 케이블 SO, 위성방송 등의 플랫폼 사업에 대한 인허가권을 ‘독임제’ 미래창조과학부가 갖지 못하면 ICT 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지도 못하고, 일자리 창출도 못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을 지적하며, “차기 정부가 유료 방송 플랫폼 장악을 통해 채널 배정권에 대한 영향력 강화 외에도 대기업 제조사들의 방송 플랫폼화를 촉진시키려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미디어 오늘]은 또 사설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실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는 전제로 “미과부가 유료 방송 플랫폼에 대한 인허가권을 갖게 되면, 새로운 방송사업권을 허가하거나 규제를 완화해주기 수월하게 된다”며 “유료 방송 인허가권의 방송정책권이 독임제부처인 미과부로 넘어가면, ‘스마트TV’의 대표주자인 삼성TV가 ‘방송플랫폼’이 될 기회를 얻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전했다. 즉 차기 박근혜 정부의 미과부 방송정책 관장, 그 중에서도 유료 방송 플랫폼의 미과부 담당 정책은 채널 배정권이라는 표면적인 이유 외에도 국내 제조사들의 방송 플랫폼화를 유발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편 셈이다. 과연 단순한 우려일까, 아니면 예정된 파국을 경고하는 것일까.

이즈음에서 의미심장한 두 가지 사건을 살펴보자. 하나는 작년 망중립성 논쟁에서 등장한 케이블-제조사 연합이다. 작년 6월, 삼성전자 윤부근 사장은 케이블 업체의 잔치장인 ‘디지털 케이블 2012’를 직접 방문해 “케이블 사업자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상호 윈-윈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힌 바가 있다. 이는 단순한 축사 이상의 의미가 있는 발언이었다. 그 배경을 살펴보자.

 

   
 

당시 IT 업계 최대의 이슈는 망중립성 논쟁이었다. 트래픽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통신사와 서비스 제공사, 특히 스마트 TV를 제작하던 제조사들이 망 이용 대가를 두고 물러나지 않은 한판 승부를 벌인 것이다. 여기에는 방통위가 제시한 망 중립성 가이드 라인에 대한 기본적인 호응도 없고 공감도 없었다. 통신사는 삼성 스마트 TV에 제공되는 망을 끊어버리는 초강수를 두었고 삼성전자도 곧바로 이론적 반격에 나서는 치킨게임만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제조사, 즉 삼성전자는 케이블 업체를 자신들의 새로운 동맹으로 삼기 시작했다. 윤부근 사장의 케이블 구애는 그런 배경에서 벌어진 일인 것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윤 사장의 케이블 업계에 대한 ‘적극적인 구애’는 케이블 측이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던 셋톱박스 투자에 부담을 덜어주는 대가로 삼성의 스마트 생태계가 케이블 TV를 통해 더욱 공고히 자리잡게 하려는 전략이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즉 애플의 모바일 환경이 하나의 생태계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음을 목도했던 삼성이 망 개방성이 폐쇄적인 통신사와의 제휴를 줄이고 1500만 가입자를 보유한 케이블을 통해 셋톱박스 투자를 대행해주고, 새로운 헤게모니를 지배하겠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케이블 측의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6월 4일 양휘부 한국케이블TV협의회 회장은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삼성 윤부근 회장의 발언에 마치 화답이라도 하듯 “스마트 TV의 협력상대로는 케이블이 통신사보다 우위에 있다”고 자평하며 “삼성도 결국 우리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제조사-케이블 업체의 동맹이 망 중립성 논쟁에 쫒긴 제조사의 수동적인 미디어 플랫폼 변신이었다면 최근 POOQ이 탑재된 스마트 TV를 출시한 현재의 상황은 더욱 노골적이다. 살펴보자. 삼성과 LG가 POOQ이 탑재된 스마트 TV를 출시하며 월 5,900원으로 지상파를 비롯한 30여 개의 채널을 시청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자 유료 방송 사업자들은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당장 제조사들이 방송 플랫폼 사업자가 되려 한다는 비판을 쏟아내며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물론 망 중립성 문제가 여기에 또 등장하지만, 현재로서는 POOQ를 탑재한 스마트 TV 등장으로 방송 시청 형태까지 바뀌다는 다소 성급한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POOQ이 케이블과 재송신료 계약을 맺고 모바일 환경에서 방송을 서비스하는 현재의 모델이 스마트 TV로 옮겨가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을 만들어 낸 점이다. 이는 케이블이 재송신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의무재송신 현안에 대하는 태도를 비춰볼 때, 춘지자명(春雉自鳴)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다시 [미디어 오늘]로 돌아와 보자. [미디어 오늘]은 박근혜 정부가 미과부를 통해 유료 방송 플랫폼에 대한 규제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것을 경계하며 동시에 제조사들의 방송 플랫폼화 현상이 벌어질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과연 기우일까. 플랫폼과 콘텐츠의 명확한 경계가 사라지는 융합의 시대를 맞이한 지금, 플랫폼과 플랫폼이 결합하고 콘텐츠와 콘텐츠의 결합이 수많은 핵분열을 일으키는 뉴미디어 환경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다음 정부는 방송을 돈 벌이 사업 아이템으로 여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국가를 비즈니스 모델로 인식해 많은 인문학적 가치를 스스로 포기했던 지난 정부의 과오를 벌써 잊었는가. 제조사들의 방송 플랫폼화를 촉진시킬 줄 모르는 미과부의 등장에 그 어느 때보다 등골이 오싹하다. 부디 [미디어 오늘]의 사설이 괜한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