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전숙희 기자] 필자는 약 2년여간 넷플릭스를 이용해 왔고, 딱히 보고 싶은 콘텐츠는 없지만, 결제를 했으니 뭐든 찾아서 보는 미디어 소비를 몇 달 하다가 결국 다른 OTT를 사용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왓챠플레이를 시작으로 푹(POOQ)과 티빙까지 사용했다. 다른 OTT의 이용 기간은 한두 달 정도로 넷플릭스와 비교해 그리 길지 않다.
감상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에 미리 밝혀두자면, 필자의 미디어 소비는 노트북과 스마트폰 중심이다. TV는 적막을 물리치기 위해 배경 음악으로 켰다가 노트북을 켜면 끄는 정도로 사용하다가 1년 전쯤 TV가 고장 난 이후 구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그대로 없이 지내고 있다.
즐겨보는 방송을 바로 볼 수 있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실시간으로 본방송을 보기보다는 이후에 VOD로 시청하며, 드라마는 종영까지 기다렸다가 한 번에 몰아본다. 최근에는 예능 또한 시즌이나 주제에 따라 몰아보는 걸 더 선호한다. 또, 좋아하는 감독이나 배우 등의 필모그래피를 모두 찾아보는 ‘필모 깨기’를 꽤 집요하게 하는 편이다.
이 ‘필모 깨기’는 여러 OTT를 사용하게 한 큰 이유기도 하다. 넷플릭스, 왓챠플레이, 푹, 티빙이 제공하는 콘텐츠는 비슷한 듯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짧은 시간 여러 OTT를 사용한 것도 이 차이 때문이다. 배우 A의 작품 a는 푹에서도 티빙에서도 볼 수 있지만, 작품 b는 푹에서만 작품 c는 티빙에서만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또, 왓챠플레이에서 볼 수 있는 HBO의 콘텐츠를 넷플릭스에서는 절대 볼 수 없으며,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는 당연하게도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다.
결국 OTT를 네 곳이나 옮겨 다닌 것은 콘텐츠를 따라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낀 콘텐츠 외 사항에 대한 만족도는 생각보다 많은 차이가 있었다. 여기서 포인트는 필자의 첫 OTT가 넷플릭스라는 점이다. 넷플릭스를 해지하고 왓챠플레이를 이용할 때만 해도 큰 감흥이 없었다. 두 사 모두 카드형 카테고리로 콘텐츠 포스터가 주르륵 나열된 UI가 상당히 흡사하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콘텐츠에 대한 정보량, 오프라인 저장 기능의 개수 제한 정도였다. 넷플릭스를 사용하면서 콘텐츠 정보를 너무 적게 제공한다고 생각했고, 흥미 있는 콘텐츠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별도로 검색해 보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왓챠플레이는 ‘최근 한달간 시청률 상위 5% 작품’ 등의 정보까지 제공해 줬으며 굳이 알고 싶지 않았던 다른 이용자들의 평가까지 볼 수 있었다.
데이터를 아끼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오프라인 저장 기능을 한 번에 3개로 제한하고 있는 왓챠플레이의 정책은 좀 짜다고 생각했다.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사용하지 않는 입장에서 비행기를 타는 등 장시간 이동할 때뿐만 아니라, 아침저녁 출퇴근길에도 넷플릭스의 저장 기능을 정말 유용하게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왓챠플레이에서는 ‘뉴스룸’, ‘왕좌의 게임’ 등 HBO의 작품과 넷플릭스에서 볼 수 없었던 콘텐츠가 있었다. 당최 뭘 찾아서 볼 수 없는 넷플릭스와 달리 왓챠플레이는 여러 태그를 통해 국가와 콘텐츠 분위기 등 상세하게 분류하고 덕분에 원하는 콘텐츠를 찾기 수월했기 때문에 큰 불만은 없었다. 아니, 불만이 없어졌다. 푹을 사용하면서부터.
위에 언급한 네 개의 OTT는 넷플릭스/왓챠플레이와 푹/티빙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분류 기준은 구글과 네이버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푹을 사용하고서야 알았다. 모든 OTT가 카드형 카테고리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이미 카드형 카테고리에 익숙해졌다는 것을, 원래도 네이버보다 구글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푹에는 뭐가 많다. 가장 핫한 혹은 가장 밀고 있는 콘텐츠의 이미지가 휙휙 돌아가고, 이용권 파격 할인 문구도 큼지막하게 있고, 최신 업데이트 VOD, 인기 VOD, 추천 영화, 지금 뜨는 TV컷, 홈쇼핑 채널 등등 아래로 아래로 무언가가 줄줄이 이어진다. 단순하고 간단한 UI만 접하다가 처음 푹을 봤을 때의 기분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넷플릭스의 자사 오리지널 콘텐츠 중심의 나열도 싫었고, 남들은 다 장점이라고 말하는 자동 추천 기능에 한 번도 만족하거나 감탄해본 적이 없는 필자에게, ‘이거 재미있대, 이건 어때? 이게 제일 인기 많아!’라는 푹의 UI는 누군가 귀에 대고 고함을 지르고 있는 듯했다. 덕분이랄까 유사한 UI의 티빙을 사용할 때는 충격과 공포까지는 겪지 않을 수 있었다.
이외에도 푹에서는 많은 방황을 해야 했다. 첫 달에는 무료라던데 첫 구매 시 3개월간 할인이라는 이벤트만 강조하고 있어 그게 진짜인지 어디서 확인할 수 있는 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 본인 인증 절차를 하게 되니 그제야 첫 달 이용 무료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푹은 다른 OTT와 달리 회선 수, VOD 다운로드 횟수, 영화 시청 등에 따라 다양한 요금제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 첫 달 무료의 경우 요금제를 마음대로 고를 수가 없었다.
이는 여러모로 넷플릭스와 왓챠를 ‘대인배’로 느끼게 했다. 첫 화면부터 ‘30일/첫 1개월 무료 시청’을 강조하면서 어느 요금제든 상관하지 않는 넓은 아량 말이다. 멤버십 해지 버튼마저도 찾기 쉽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며 오랜만에 접속한 넷플릭스에서는 ‘한 달 동안 다시 무료로 이용하세요’라며 나를 반겨줬다. 푹과 티빙에서는 오프라인 저장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도 내게는 너무나 큰 단점이었다.
푹/티빙이 넷플릭스/왓챠플레이와 다른 점은 실시간 방송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채널도 지상파부터 홈쇼핑까지 다양하게 서비스하고 있다. 그러나 VOD 시청을 선호하는 나에게는 그저 거기 있구나 정도의 존재감만 주었다.
유튜브마저도 유튜브 프리미엄을 선보인 마당에 짧지 않은 길이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푹과 티빙이 오프라인 저장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모바일 이용자를 배려하지 않는 것으로 느껴졌다. 푹의 경우 사용하는 기기에 따라 요금제가 다르며 모바일 이용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푹의 소비가 모바일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걸 인지하고 있거나 모바일 중심의 서비스를 하겠다는 뜻일 텐데 그걸 체감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티빙의 경우에는 몰아 볼 때 콘텐츠 말미에 ‘다음 회차 보기’ 버튼을 클릭하지 않으면 자사 콘텐츠의 CM이 나오다가 그대로 멈췄다. 알아서 다음 회차로 넘겨주고 반복되는 초반 오프닝은 건너뛰어 주기까지 하는 넷플릭스/왓챠플레이와 많이 비교되는 대목이다. 게다가 이 ‘다음 회차 보기’를 클릭해서 볼 경우 그 회차는 본 것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1회차를 보다가 ‘다음 회차 보기’를 클릭해 2회차, 3회차를 보면, 홈 화면의 ‘이어 보기’에서는 여전히 1회차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보자면 푹과 티빙은 방송사 홈페이지와 다를 바 없었으며 조금 격하게 표현해 OTT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푹은 최근 SKT와 손을 잡고 대대적 변화를 예고했다. 아직 어떠한 모습이 될지 들은 바는 없으나 부디 이용자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플랫폼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이를 통해 OTT 간 선의의 경쟁을 이끌고 이용자의 만족도를 더욱 높여주길 소망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지금 가장 열심히 이용하고 있는 OTT는 바로 티빙이다. 이는 결국 흔히 말하는 콘텐츠의 힘이라는 거다. 이 OTT 저 OTT를 넘나들게 한 큰 이유인 ‘필모 깨기’가 끝난 지금 내 취향의 콘텐츠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건 티빙이었기 때문이다. 길었던 이번 설 연휴에도 티빙과 함께했는데 실망스러운 UI는 어쩔 수 없는 일로 감당하며 여러 콘텐츠를 줄줄이 달렸다. 몇 가지 콘텐츠를 보고 나면 ‘더 이상 뭐 보지’하며 고민했던 다른 OTT와는 달리 보고 싶은 게 많이 남아 있기까지 하다.
다른 OTT를 사용하며 넷플릭스의 대인배스러움과 편리한 UI가 늘 그립지만, 한국 진출 때부터 지적받은 한국 콘텐츠 부족은 많이 보완했다고 하나 여전히 내게는 만족스럽지 않다. 미디어 시장을 긴장하게 만드는 오리지널 콘텐츠의 경우, 개인적으로 넷플릭스의 감성과 내 취향이 맞지 않다고 많이 느꼈다. 이 원인은 문화적 감성 차이와 ‘Netflix Bloat’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Netflix Bloat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가 많은 에피소드 수에도 내용이 많지 않고 전개가 느린 현상을 지적하는 말로 이는 ‘Netflix Pacing’ 현상까지 불러오고 있다. 이에 대해 신디 홀랜드(Cindy Holland) 부사장은 “예전에는 한 시즌에 13개 에피소드를 기본으로 하는 기존 케이블 방송의 패턴을 따랐으나 현재는 10개 에피소드를 넘지 않는다”며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대응하고 있음을 밝혔다.
문화적 감성 차이는 이와 별개의 문제일 텐데, 그렇기 때문에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와 ‘끝까지 간다’의 김성훈 감독이 함께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킹덤’이 어떤 반응을 이끌지 궁금하다. 현재의 평가를 들어보면 연기력 지적 외에는 성공적인 듯하며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우연히도 발음마저 god인 갓을 비롯해 조선 ‘hat’에 쏟아진 관심과 호평은 덤이다. 게다가 이미 시즌 2를 확정하고 그에 더 많은 이야기를 전개할 것을 예고해 많은 관심을 얻고 있다. 지금까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가 한국 사람에게 큰 매력이 없었을지언정 계속해서 등장할 넷플릭스표 한국 콘텐츠는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다. 방송사와 비교할 수 없는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으로 알려진 넷플릭스의 성향 또한 앞으로 큰 ‘사고’를 치는 것이 아닌지 기대하게 만든다.
올해는 OTT 시장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9월에는 훌루(hulu)가 한국 진출을 예고했다. 디즈니가 21세기 폭스를 인수해 훌루의 최대주주가 되면서 현재 미국과 일본에서만 하고 있는 서비스를 전 세계로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디즈니는 디즈니+(디즈니플러스)라는 디즈니 단독 콘텐츠를 제공하는 OTT를 올해 말 미국에서 선보일 예정이며 이를 위해 넷플릭스와 영화 공급 계약을 중단했다. 마블 유니버스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세계관과 콘텐츠를 보유한 디즈니가 앞으로 어떤 것을 보여줄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주말에 리모컨을 들고 이리저리 채널을 마구 돌리다가 ‘참 볼 거 없네.’하던 것이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때는 TV의 몇 가지 채널에서 골랐다면 지금은 훨씬 넓은 범위에서 훨씬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달라졌을 뿐이다.
언뜻 보기에는 쉽게도 돌아서는 냉정한 이용자지만, 질 좋은 콘텐츠를 선보인다면 언제든 돌아오는 쉽고도 단순한 이용자라는 걸. 그 단순하지만 확실한 진리를 OTT 업계에서는 항상 염두에 뒀으면 한다. 물론, UI의 질은 상향 평준화해준다면 아주 많이 고맙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