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 켜는 공돌이

[기술인이 사는 법]첼로 켜는 공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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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 켜는 공돌이

송주호(EBS 기술연구소)


“공대 나왔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대학 시절부터 지겹도록 들어온 질문이다. 공대 출신이 클래식 음악을 좀 지나치게 좋아한다는 것이, 그리고 취미로 첼로 연주를 한다는 것이 마치 이중인격자인 냥 취급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유야 어찌되었든 ‘단.무.지.’로 대표되는 공대생에게 이런 ‘고상한’ 취미를 가졌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믿기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그저 ‘좋아한다’는 운명이 지워졌을 뿐, 고상하거나 특출하다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공대출신과 다름을 위안 삼고 싶었던 것 뿐. 하지만 그것마저 나로 인하여 무너졌으니 심적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내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된 것은 고리타분하게 얘기하자면 ‘운명적’이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친형이 음악 숙제로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운명’>을 들었을 대 그 옆에 있었을 때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손길이 나를 헤어날 수 없는 세계로 몰아넣은 것이다. 그 때가 아직 공대를 갈 지 결정되지 않았던 초등학교 5학년 때였으니 지금은 20년이 넘었다.

누구나 음악을 좋아하게 되면 악기를 연주하고 싶기 마련이다. 헤비메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일렉 기타나 베이스기타, 드럼 등을 연주하고 싶어 할 것이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고민은 몇 배로 커지게 되는데, 그 악기 수가 헤비메탈에 비할 바가 아니가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솔직히 얘기하면 고민조차 사치였다. 당시 피아노나 바이올린과 같은 악기는 좀 있는 집안이나 배울 수 있는 분위기였고, 필자의 집안은 그런 수준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걸 뻔히 아는 상황에서 악기를 하겠다는 것은 부모님 몰래 007 작전으로 음반을 한 장 두 장 사들이던, 그나마 있던 삶의 자유를 담보로 거는 무모한 짓이었다.

하지만 고2 때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웬만한 대학교에는 대학생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존재하며 그곳에서 악기를 배울 수 있다는 것! 필자가 고3 때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있는지가 대학을 결정하는 기준 중 하나였다는 사실은 믿거나 말거나. 대학 다니면서 남은 것은 첼로 연주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행운아라는 것을 인정하는 말일 수도 있다.

이제 세월이 흘러 사회생활 경력을 두 손으로조차 꼽을 수 없는 지경이 곧 되겠지만, 그 열정이 오히려 커져만 가는 것은 어쩌면 회사 동료나 상사에게는 비밀로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여러 클래식 음악 동호회에서 정례적으로 관련 강의를 진행하는 것도 10년이 넘었고, 게다가 여러 클래식 음악 잡지에 음악 칼럼니스트로 데뷔한지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첼로 연주도 대학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한 이후 교회와 동호회 등에서 꾸준히 활동하여 그 햇수를 말하기도 민망할 지경이다.

그런데 잠시 돌아보면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위의 동료들로부터는 기술자면서 전혀 다른 분야의 문화생활을 누린다는 사실로, 전문 음악인들에게는 생업이 따로 있으면서 음악을 좋아하고 연주한다는 사실로. 어쩌면 유별나 보인다는 말을 ‘부럽다’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모든 일은 덤빈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마음 속에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시작해 보길 강권한다. 나이라는 좋은 핑계거리를 들먹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지금이 앞으로 살 날들에 비하면 가장 젊을 때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