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월간 방송과기술』 2023년 1월호에 실린 원고입니다.>
[방송기술저널=최홍규 EBS 창의융합교육부 연구위원/미디어학 박사] 매년 12월이 되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 듯 느껴진다. 매년 상반기와 중반기에도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기간은 아직 1년 동안의 계획이 성취되는 과정 중에 있는 기간이며, 성취를 통한 성과를 완전히 평가하기 어려운 기간이기 때문에 여유를 부릴 수 있다. 12월은 다르다. 이미 1년 동안의 작은 성취들을 통해 성과라는 것이 드러나는 시기가 12월이기 때문에, 12월이 되면 더욱 시간이 빨리 흘렀다는 것이 깨닫게 된다. 1시간은 빨리 흘러 버렸지만, 그 시간에 맞춰 무엇을 성취하고 성과를 냈는지 그것이 명확히 체감되지 않는다면, 빠르게 흘러간 시간을 원망하는 시기가 바로 12월인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우리 사회에서 ‘기술’은 상당히 시간에 대응적인 개념이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빨리 흐르면 빨리 흐를수록, 느리게 흐르면 느리게 흐를수록. 기술은 그에 발맞춰 발전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이제 2023년을 앞두고 있으니, 우리 사회에서 기술도 그에 맞춰 새롭게 발전하고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2022년에는 2022년에 대응되어 발전하고 적용된 기술이 있고 그 성과가 나타났듯이, 2023년에는 2023년도에 적용이 본격화되는 기술이 있고 연말에는 그에 따르는 성과가 나타날 것이다.
방송산업에서도 기술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ies) 기술이 전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방송영역에서도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속도를 맞춰 빠르게 변화하는 ICT 기술을 방송산업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는 매년 각 사업자에게 큰 숙제다. 사업자가 아무리 좋은 ICT 기술을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적용할 계획을 면밀하게 수립하지 않으면, 아무런 성과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2022년 12월 6일, 리서치 그룹 가트너(Gartner)는 2023년과 그 이후의 기술과 사업 분야를 예측하는 글을 게시했는데, 이 글에 포함된 <2023년 최고의 전략 기술 트렌드(Top Strategic Technology Trends 2023)> 보고서에서는 2023년도와 그 이후 시점에 어떠한 전략 기술이 부각하며, 기업의 전략적 목표를 바탕으로 이러한 ICT 기술을 어떻게 적용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그 내용을 담고 있다.
본 원고에서는 이러한 가트너의 보고서 내용을 통해 방송산업에서 ICT 기술을 어떻게 적용할 때 사업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지 짚어보았다.
ICT 기술의 적용은 단계적으로
방송산업은 ICT 기술을 방송 콘텐츠의 소재로 활용하거나, 미디어 서비스 개선에 적용하거나, 새로운 사업의 기획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 측면이 있다. 혁신적인 ICT 기술이 방송 콘텐츠에 재미를 더하고, 미디어 서비스 가치를 높이거나 신사업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ICT 기술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다.
가트너가 꼽은 2023년 주요 기술의 동향을 살펴보면, 각각의 기술을 최적화(Optimize)의 측면, 규모(Scale) 확장의 측면, 개척자(Pioneer)적 측면, 지속 가능한 기술(Sustainable Technology)의 측면으로 구분하여 살펴봤다. 기업이 ICT 기술을 적용할 때에 아무리 최첨단의 기술이라고 해도 ICT 시스템의 최적화 측면에서 살펴볼 기술이 있고, 사업의 프로세스와 규모를 확장하는데 활용할 기술이 있으며, 비즈니스 모델 변화나 고객과의 관계 등을 개선하기 위한 기술 등으로 구분해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술에 투자하는 경우에는 ‘지속 가능한 기술’인가, ‘지속해서 사업에 도움이 되는 기술인가’와 같은 점을 따져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2023년에 새로운 ICT 기술이 부각한다고 할 때, 만일 방송사업자가 그 기술을 사업에 적용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맥락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기존에 방송산업이 반복하였던 단발성의 기술적용 사업만 추진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방송산업의 사업자들은 ICT 기술을 적용하기 이전에 일단 사업 목표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사업목표가 ICT 기술에 대한 안전한 기반구축인지(Create secure foundations), 데이터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함인지(Maximize Value from data), 브랜드를 보호하거나 성장하기 위함인지(Protect and grow your brand), 인재를 유치하기 위함인지(Attract and retain talent), 수익을 증대하기 위함인지(Grow revenue), 디지털 기술을 가속화하기 위함인지(Accelerate digital) 등에 따라 적용할 기술과 기간이 달라질 수 있다. 사업목표에 따른 단계적 기술적용을 통해 사업 추진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적 외형보다,
‘데이터’라는. 기술에 필요한 자원을 먼저 감안할 것
최근 ICT 기술 중에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기술은 단연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을 통해 어떤 서비스도 효율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 같고, 자동화가 가능할 것 같으며, 어떠한 사업적 판단도 빠르게 이뤄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하나의 기술적인 외형에 불과하다. 인공지능을 구동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라는 자원이 먼저 필요하며, 이 데이터가 인공지능 기술에 적절히 적용될 수 있는 절차와 그 절차에 맞는 세부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원시 데이터(Raw Data)를 통해, 문맥(Context)을 읽어내고, 분석(Analytics)하여, 그 결과를 통해 데이터 기반의 결정(Data-Driven Decision)을 내리는 절차와 그 세부적인 과정이 설정되어 있다면 인공지능 기술은 이 과정을 더욱 효율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데이터라는 자원 없이는 이 전체 과정도 쓸모가 없어진다. 따라서, 방송산업의 사업자가 인공지능이라는 ICT 기술을 적용하려면 스스로 어떤 데이터 자원을 확보하고 있느냐를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 기술이 어떠한 절차와 세부적인 과정에서 적용되는지에 대해 살펴봐야 할 것이다.
만일, 데이터라는 자원이 갖춰지고 인공지능이 적용되는 절차와 세부적인 과정이 마련된다면 적응형 인공지능(Adaptive AI)과 같이 개선된 인공지능 체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고, 일반화된 결과를 개인맞춤형으로 도출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등 보다 진화된 인공지능 기술 체계를 확보할 수 있다.
‘사업에 필요한가?’ ‘적용할 능력이 되나?’도 따져야
방송산업 안에서도 과거 방송의 황금기를 겪은 사업자들의 경우에는, ‘그 어떤 사업자보다 새로운 ICT 기술을 도입하여 혁신과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일을 시작하는 경우를 종종 접할 수 있다. 한편으로, 방송산업의 핵심적인 상품은 ‘콘텐츠’인데 이 콘텐츠는 시장분석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에, 방송산업 현장에서는 ICT 기술과 서비스를 도입할 때 면밀한 분석의 과정을 다소 생략하기도 한다. 같은 맥락으로, 방송산업 내 구성원들은 매우 혁신적인 ICT 기술이나 서비스가 등장하면 무조건 한번 수용은 해보자는 태도로 ICT 기술을 바라보기도 한다.
ICT 기술을 적용할 경우 먼저 판단해 보아야 하는 것은 ‘사업에 필요한가?’에 대한 여부다. 해당 ICT 기술을 적용했을 때, 사업 시너지를 낼 수 있고 수익을 개선할 수 있으며, 브랜딩에 효과적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적용을 고려해봐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효과를 담보할 근거가 부족하다면 적용을 미루고 분석에 더 시간을 투입해야 할 것이다.
한때, 스마트폰 등장 후 모바일 앱 서비스가 큰 인기를 끌자 각 방송사는 방송 콘텐츠 단위로 앱을 개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앱을 개발하는 시간과 비용 대비 시장효과는 낮아 이내 그러한 양상은 사라졌다. 최근 앱 하나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슈퍼 앱(Super App)’이 조명을 받고 있는데, 이러한 슈퍼 앱의 특징을 간과한 채로 방송산업에서 너도나도 슈퍼 앱 개발에 뛰어든다면, 기존에 겪었던 과오를 다시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서비스를 적용할 능력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인기 있는 ICT 서비스 중 ‘메타버스(Metaverse)’가 있다. 그런데 메타버스가 창출할 기회가 많다고 해서 메타버스 서비스를 운영할 능력이 되지 않는데, 메타버스 기술을 적용해 서비스를 만들면 안 된다. 코로나19가 종식 단계에 접어들면서 메타버스를 비롯한 ICT 서비스의 성장세가 위축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방송산업의 사업자들은 메타버스의 긍정적 미래를 속단한 채로 사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운영능력과 자금력, 사업 지속화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고 사업 추진을 결정해야 한다.
∗ 본 원고에 포함된 모든 그림은 가트너(Gartner) 보고서의 그림을 출처로 함
(www.gartner.com/en/information-technology/insights/top-technology-tren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