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IP로 경쟁력을 확장하라

[기고] 콘텐츠 IP로 경쟁력을 확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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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월간 방송과기술』 2023년 1월호에 실린 원고입니다.>

[방송기술저널=한영주 EBS 기술기획부 연구위원] 지금은 콘텐츠 경쟁 시대이다. 각양각색의 플랫폼이 미디어 시장에 등장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콘텐츠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국내외 미디어 사업자들은 자사 플랫폼으로 이용자들을 유입하기 위해 매력적인 콘텐츠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OTT가 급격히 성장하며 콘텐츠가 세계 시장으로 확산하고 흥행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미디어 안에서의 완결성을 갖췄던 콘텐츠에서 미디어와 플랫폼을 넘나드는 스토리 확장과 재창조 중심의 연계 콘텐츠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이에 미디어 산업의 성장 동력으로 주로 플랫폼에 대한 논의가 지배적이었지만, 지금은 콘텐츠에 대한 논의로 옮겨가며 콘텐츠 IP의 활용과 연계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방송, 게임, 웹툰, 소설 등 별개의 장르로 존재했던 콘텐츠들은 장르적인 장벽을 허물고 콘텐츠 IP를 통해 재탄생하고 있다.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보유한 콘텐츠 IP 기업들은 수수료를 지불하고 기존의 OTT 플랫폼에 유통하는 대신, 직접 D2C(Direct to Customer) 플랫폼을 만들어 자체 스튜디오 설립을 통해 독자적인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 포스터와 에이미상 시상식
출처 : 오징어 게임 공식 사이트, Emmy Awards 공식 사이트

최근 국내 시장에서 콘텐츠 IP에 관한 관심과 논의가 상당히 뜨겁다. 그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오징어 게임>이었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오징어 게임>은 2021년 10월 기준으로 (공개 23일 만에) 1억 3천 2백만 명이 시청한 것으로 알려졌고,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으며 각종 패러디와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K-콘텐츠의 열기는 와 <기생충>에서 <미나리>를 거쳐 <오징어 게임>에서 절정에 달했다. 이후, <오징어 게임>이 각종 해외 어워즈를 휩쓸며 K-콘텐츠의 상승세를 굳혔고, 한국적인 코드가 세계 시장에서도 통한다는 점을 증명해냈다. <오징어 게임>의 제작비는 2,410만 달러로 알려졌으며 경제적 가치는 약 8억 9,100만 달러로 추산되는데, 투자 대비 효과는 무려 37배에 달한다. 하지만 국내 시장에서는 <오징어 게임>의 성공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국내 제작사에 돌아간 수입이 240억 원 수준으로 알려지며 콘텐츠 IP에 대한 권리문제가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오징어 게임> 사례는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인정받아도 콘텐츠 IP의 권리를 확보하지 못하면 성장의 기회가 제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오징어 게임>을 계기로 국내 시장에서는 콘텐츠 IP 문제를 풀어가고자 활발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얼마 전, ‘국내 OTT 플랫폼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규제 합리화 방안’을 주제로 개최한 ‘K-콘텐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 포럼’에서는 오징어 게임에 대한 성공 대가를 국내 기업이 충분히 받지 못했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국내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비단 <오징어 게임>의 IP 문제는 영상 콘텐츠로만 국한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은 드라마 시리즈 이외에 인터넷상의 각종 굿즈(goods)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이머시브 게임박스(Immersive Gamebox)에서 개발한 실사 사이즈의 몰입형 양방향 게임으로 재탄생되며 콘텐츠의 지속적인 확산과 활용을 이어가고 있다. 아마 지금쯤이면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콘텐츠 IP가 왜 중요한 논쟁거리가 되었는지 어느 정도 느낌이 올 것이다. <오징어 게임>이 흥행에 성공한 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지속해서 확장한다는 지점이 더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최근 인기리에 공개된 <킹덤>, <승리호> 등 다수의 국내 콘텐츠는 작품성을 통해 큰 인기를 얻었지만, 한국 제작사가 IP를 소유하지 못한 점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마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한 홍길동과 같은 신세이니 말이다.

IP를 활용한 실사형 인터랙티브 게임
출처 : Immersive Gamebox 공식 페이지

그렇다면, 콘텐츠 IP는 어떻게 접근하고 활용해야 할까? 개념적으로 콘텐츠 IP는 콘텐츠 지식재산(Content Intellectual Property)을 의미하는데, 최근에는 콘텐츠 기반의 다양한 장르적 확장과 부가 사업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크게 부상하였다. 본래 법적 권리인 지식재산권에서 시작해서 콘텐츠로 개념을 확장한 것이다. 특히나 영상 산업에서 콘텐츠 IP는 투자, 제작, 유통, 부가 사업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OTT의 영향력을 통해 시장성이 입증되며 필수 요소로 부상하였다. 이는 콘텐츠 전략의 접근 방식이 달라진 것을 의미하는데, 개별적인 성공에 집중했던 과거의 방식과 달리, 지금처럼 역동적인 미디어 환경에서는 여러모로 양질의 콘텐츠 IP가 시장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콘텐츠 IP는 오리지널 콘텐츠의 제작뿐만 아니라, 다양한 채널과 콘텐츠로 활용 범위를 확장할 수 있고 새로운 비즈니스로도 연결할 수 있다. 콘텐츠 IP는 자사 경쟁력의 외연을 넓힐 뿐만 아니라 다른 사업자들과 협력을 통해 신규 IP를 다시 발굴할 수 있는 선순환의 기회를 가져다준다.

일반적으로 콘텐츠의 IP는 원천 콘텐츠 발굴과 선택을 거쳐 시각적인 재탄생과 영상화를 시도하여 대중적으로 확산해서 회자되며 다양한 채널과 플랫폼으로 확장해간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1단계에서는 주로 원작 웹소설이 독자의 선택을 받고, 2단계에서는 웹소설의 인기를 바탕으로 웹툰이 만들어진다. 여기까지는 특정 장르의 콘텐츠를 즐기는 이용자에게 한정되었다면, 이후 영상화 단계를 거치며 대중적 인기와 확산세가 판가름 나게 된다. 3단계에서는 웹툰이 게임이나 영상으로 제작되고, 4단계에서는 영상이 인지도 있는 플랫폼에서 송출된 후, 5단계에서는 영상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아 각종 매체에서 회자된다. 이러한 구조는 지금처럼 콘텐츠 IP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전부터 종종 활용되었던 전략이다. 예컨대,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Fifty Shades of Grey)’는 본래 웹소설로 시작해서 소설로 출간되며 베스트셀러에 등극하였고 이후 영화로 제작되는 수순을 밟았다. 또한 일본의 오컬트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데스노트’는 만화-애니메이션-영화-뮤지컬-TV 드라마-리메이크 영화-오디오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콘텐츠 IP를 바탕으로 일본 열도를 넘어 아시아와 미국까지 확장하며 그 활용이 수십 년 간 이어지고 있다.

콘텐츠 IP 전략은 기존에는 일련의 순차적인 단계가 존재했지만, 최근에는 미디어 상황과 이용자를 고려해서 유연한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IP 거래의 확장과 콘텐츠 시장이 영상으로 재편되면서 처음부터 영상화를 목적으로 웹소설을 공모하는 영상 맞춤화 전략도 생겨났다. 이러한 현상은 시대적 기호와 요구에 따라 대중문화의 형태가 변화한 것을 보여준다. 텍스트 기반의 콘텐츠는 영상화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수익적 측면에서도 영상 콘텐츠보다 저조한 편이기에, 최근의 콘텐츠 IP 전략은 텍스트 기반의 콘텐츠는 영상화 가능성에 따라 그 확장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영상화 목적의 웹소설 공모전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블로그(2022. 9. 19)

원천 IP의 대표적인 형태는 소설이나 웹소설, 웹툰, 시나리오, 구성안, 대본 등이 있다. 원천 콘텐츠의 IP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상 콘텐츠의 흥행은 곧바로 원작에 대한 관심과 소비로 이어진다. 여기서 콘텐츠 IP의 파급력을 엿볼 수 있다. 동일한 IP로 제작된 콘텐츠라도 장르적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이용자에게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다. 주로 인기 웹툰이나 웹소설 기반의 콘텐츠들이 영상 콘텐츠로 확대해서 재생산되며 높은 부가가치를 얻게 되자, 암묵적으로 원천 콘텐츠의 IP 확보가 곧 미디어 기업의 경쟁력이라는 등가 공식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원천 콘텐츠의 IP 확장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원작의 내용이 지나치게 축소되거나 생략될 경우, 재미를 반감시키기도 하고 장르적 확장이 오히려 어색할 경우에는 이질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게임을 소재로 확장했던 대부분의 콘텐츠 IP 사례는 대중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콘텐츠 IP가 성공하려면 대중적 인기와 사업화를 모두 전략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콘텐츠 IP를 이용해 성공한 사례들을 보면 재미, 수익성, 확장 가능성, 작품성, 잠재력 등의 5가지 요소가 공통으로 발견된다. 만약 이 중에서 최소 3가지 요소와 일치한다면 콘텐츠 IP로 성공할 가능성이 충분하며 5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하고 있다면 ‘슈퍼 IP’라고 할 수 있다.

콘텐츠 IP의 충족 요건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2022. 7. 28)

미디어 산업에서 이제 콘텐츠 IP는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세계적인 경기 악재와 맞물려 긴축정책으로 치솟은 고금리에 투자 시장은 얼어붙었지만,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와 같은 대형 글로벌 OTT 사업자들의 한국 콘텐츠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유지될 전망이다. 매해 연달아 놀라운 성과를 보이며 K-콘텐츠가 좋은 성적으로 세계 시장에서 K-컬쳐에 대한 호감도를 크게 상승시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탓에, 글로벌 OTT에서는 K-콘텐츠에 대한 기대치를 어느 정도 갖고 있다. 실제로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K-콘텐츠의 인기는 지배적인 현상을 보인다. 향후 국내 사업자들 간의 콘텐츠 경쟁은 물론이고 해외 사업자와 경쟁까지 더하며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이제 콘텐츠 IP를 누가 먼저 선점하는지에 따라 시장에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셈이다.

콘텐츠 IP의 확장 전략은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그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이용자에게 달려있다. 대중적 인기가 확장 가능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콘텐츠가 확장된 이후에도 지속해서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므로 원천 콘텐츠의 IP 발굴과 확장에서 대중의 관심과 요구를 파악하는 일이 가장 중요해 보인다. 콘텐츠 IP를 이용한 비즈니스는 이미 할리우드 영화 시장에서 수십 년간 선보였던 전략이지만, 국내에서 이제 막 주력 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콘텐츠 IP를 이용한 비즈니스를 위해 제도적, 정책적 부분에서 손볼 지점도 많고 비록 후발 주자로 시작했지만, 다양한 소재와 창의적인 내용으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겸비하며 한국 콘텐츠가 세계 시장으로 진출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국내 콘텐츠 IP의 경우 장르적 확장에 집중된 경향을 보였지만, 조만간 <어벤져스>와 같은 해외 IP처럼 콘텐츠 내 세계관의 확장도 활발히 진행되길 기대해본다.

◆ 참고문헌
김용수 (2022. 12. 17). <넷플릭스 IP 독점···국내 콘텐츠산업 기반 악화 우려>. 시사저널e.
이성춘 (2022. 7. 4). 스튜디오 설립으로 콘텐츠 자체 제작에 힘쓰는 OTT들. 방송영상 트렌드 & 인사이트, 30호(2022년 1월).
한국콘텐츠진흥원 블로그 (2022. 7. 28). 이제는 IP 시대, 잘 팔리는 IP는 무엇일까?
한국콘텐츠진흥원 블로그 (2022. 9. 19).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가 – 소설의 영상 제작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