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진신우 SBS 방송기술팀 부장] 지상파 방송사는 지금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글로벌 OTT, 플랫폼 사업자, 1인 크리에이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미디어 주체들이 시청자의 시간을 놓고 경쟁하고 있으며, 그 결과 지상파방송의 영향력과 시장 지위는 해마다 눈에 띄게 약화되고 있다. 이 쇠락의 흐름은 단순히 콘텐츠 품질이나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라, 미디어 생태계 전반의 구조적 변화 속에서 나타나는 복합적인 결과다.
지상파 방송사는 오랜 기간 축적해 온 방대한 미디어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수십 년에 걸쳐 생산된 영상, 음성, 자막, 메타데이터는 그 자체로 다른 어떤 사업자도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경쟁 자원이다. 이러한 자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방송사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요소임에 틀림없다.
최근 방송사 기술 조직은 AI를 활용한 미디어 검색 기능 개발에 상당한 역량을 투입하고 있다. 음성 인식, 영상 분석, 의미 기반 검색 등 첨단 기술을 접목한 내부 검색 엔진 구축은 기술적으로 매우 매력적인 과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과연 ‘더 잘 검색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지상파방송 프로그램 경쟁력 약화의 본질적인 해법인가?
현장의 프로그램 기획자와 편집자들이 검색을 잘 못해서 고품질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들은 제한된 제작비와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오랜 경험과 감각을 바탕으로 꾸준히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만들어 왔다. 검색 기능의 고도화가 제작 효율을 일부 개선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시청자의 선택을 근본적으로 바꿀 만큼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잘나가는 유튜버나 크리에이터들이 대중의 선택을 받는 이유 역시 고급 검색 엔진을 잘 활용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플랫폼의 알고리즘, 시청자와의 소통 방식, 빠른 기획·제작·피드백의 선순환 구조 속에서 경쟁력을 만들어낸다. 이는 기술 자체보다는 운영 구조와 제작 시스템의 민첩성에서 비롯된 결과다.
지상파방송 쇠퇴의 원인에는 국가 제도, 규범, 규제라는 거대한 외부 요인이 분명 존재한다. 광고 규제, 편성 규제, 소유 구조 제한 등은 글로벌 플랫폼과의 경쟁에서 방송사에 불리하게 작용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사 내부에서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고민보다, AI 검색 엔진이라는 비교적 ‘손에 잡히는 기술 과제’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방송사에서 개발한 정교한 AI 검색 엔진이 등장하면 프로그램 경쟁력 확보에 큰 도움이 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방송사는 보안과 내부 정책을 이유로 on-premise 방식의 AI 검색 시스템 구축을 선택하고 있으며, 이는 막대한 초기 투자와 지속적인 유지 비용을 수반한다. GPU 인프라, 스토리지, 전력, 인력 비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더 나아가 AGI 시대로 접어들 경우, 현재 수준의 인프라는 금세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더 크고 더 많은 GPU 팜을 자체적으로 구축하는 전략은 방송사 본연의 경쟁력과는 거리가 먼 방향일 수 있다. 기술 발전의 속도를 감안할 때, 자체 구축 시스템은 완성되는 순간부터 노후화의 길을 걷게 된다.
방송사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은 제작비용은 줄이면서도 성과와 수익을 높일 수 있는 효율적인 제작 시스템이다. 제작 프로세스 전반의 재설계, 외부 기술과의 유연한 연계, 클라우드·서비스형 AI의 전략적 활용, 그리고 무엇보다 콘텐츠 기획과 유통 구조의 혁신이 병행되어야 한다.
AI 검색 엔진을 직접 구축·개발하는 전략이 과연 방송사의 제한된 자원과 인력을 투입할 만큼 우선순위가 높은 선택인지, 이제는 냉정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검색이라는 수단에 매몰되어, 방송사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와 제작 시스템 혁신이라는 본질을 놓치고 있다면, 그 어떤 첨단 AI도 쇠퇴의 흐름을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상파방송의 미래는 “얼마나 잘 찾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만들고, 어떻게 만들며, 어떤 방식으로 시청자와 만나는가에 달려 있다. 이제 방송 기술 전략도 검색 너머를 바라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