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월간 방송과기술』 2023년 2월호에 실린 원고입니다.>
[방송기술저널=최홍규 EBS 창의융합교육부 연구위원/미디어학 박사] 필자는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을 보고 난 후, 한동안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영화는 소위 SF 영화가 가져가는 공식대로 화려한 CG를 선보였다. 하지만 CG 기술력 만큼이나 영화 전체의 스토리가 웅장하면서도,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감성적이고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판도라 행성에서 부부로 살아가는 ‘제이크 설리’와 ‘네이티리’의 생존기를 다루는 이 영화, 이 영화에서 판도라 행성에서 거주하는 캐릭터(아바타)의 매력은 전편과 마찬가지로 관객을 지배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은 전쟁을 일으킨 지구인보다 판도라 행성 원주민에게 더욱 감정이입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바타:물의 길’은 2009년 개봉된 영화인 원조 ‘아바타’에 이어 13년 만에 개봉된 후속작이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2009년 전 세계 최초 3D 영화인 ‘아바타’를 만들며 3D 영화의 서막을 열었다. 아바타 이후에 3D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져 TV 가전 분야에서는 3D TV의 생산이 활발해졌던 것도 이때부터다. 13년 전 영화 아바타를 통해 사람들은 영상이라는 것이 평면이 아닌 입체적 감각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무려 13년 전에 관객들에게 입체 영상에 대한 인식을 제공한 ‘아바타’였기에, 이번 ‘아바타: 물의 길’에 대해서도 관객들의 기대감은 컸다. 그리고 영화의 결과는 기대감만큼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아바타’가 관객에게 주는 기대감과 감동이 컸던 만큼 영상기술 시장에도 적잖은 의미를 남겼을 것이다. 그럼 이번에 개봉된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이 영상기술 시장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한번 짚어보자.
아바타 정도의 도전적인 콘텐츠가 3D 기술도 발전시키는 것
2009년 아바타가 개봉되었을 당시, 전 세계에는 3D 기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매우 커지는 상황이었다. 특히 TV를 시작으로 3D 키워드가 확산하기 시작했는데, 3D 영상을 시청할 때 착용하는 안경의 기술적 방식으로 편광방식이 괜찮은지 셔터글라스 방식이 괜찮은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을 정도로 3D 기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컸다. 하지만, 그 이후 13년 동안 3D 기술과 상용화는? 2009년 ‘아바타’ 이후에 진일보한 게 없다.
실제 2009년 ‘아바타’ 개봉 이후에는 3D 영상기술을 구현하는데 3D 안경이 필요한지 아닌지, 3D 기술 이후에 어떤 입체영상 기술이 발전할지, 영화와 드라마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는 어떻게 활용될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할 정도로 입체영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사람들은 3D 안경을 끼지 않아도 입체영상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으며, 같은 맥락으로 3차원 입체영상을 구현하는 ‘홀로그램(hologram)’ 기술이 주목받기도 했다. 또한, 머리에 착용하여 가상의 공간에서 입체적인 영상을 즐기는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이하 HMD, Head mounted Display)’가 주목을 받은 데에도 2009년의 아바타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영상 이용자 입장에서 영상을 보다 입체적으로 즐겨보려는 시도를 하고, 영상기술 시장에서 입체영상 상품이나 서비스가 제공되기 시작하는데, 2009년 ‘아바타’의 역할은 컸다. 어찌 보면 오늘날 실감미디어(Immersive Media)로 불리는 AR(Augmented Reality), VR(Virtual Reality), XR(eXtended Reality) 등과 가상의 플랫폼 공간을 의미하는 메타버스(Metaverse)의 개념까지, 2009년 ‘아바타’가 ‘입체’, ‘실감’, ‘가상’의 영상기술 영역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은 결코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정작 영화와 TV 분야에서 3D 영상기술은 왜 ‘아바타’ 이후에 보편화 되지 못했을까? ‘아바타’로 인해 3D 영상에 대한 붐이 일었지만, 이후 ‘아바타’ 만큼의 파급을 몰고 온 영화나 TV 콘텐츠가 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9년 ‘아바타’가 3D 영상기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를 높이고 입체, 실감, 가상에 대한 주목도를 높인 것은 맞지만 ‘아바타 급’의 콘텐츠가 생산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영상기술 개발은 주춤했던 것이다.
‘물의 길’은 영상기술이 보여주는 가능성의 길
13년 만에 개봉한 후속작 ‘아바타: 물의 길’도 2009년 아바타와는 또 다른 영상기술의 방향을 제시한다.
13년 전 영화에서 입체영상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가상의 시각적 효과가 어디까지 가능할지에 대한 지표를 제시한다. ‘아바타: 물의 길’은 추정되는 손익분기점이 20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는 2조 8천억 원에 달할 정도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영화다. 그만큼 CG를 통한 실물의 사실적 묘사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이뤄졌다. 단순히 막대한 예산만 투입된 것이 아니라 영화 CG 시장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것이 2009년 아바타와 2022년 아바타 영화의 특징이다.
‘물의 길’이라는 영화의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에서는 바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액션씬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물과 바다를 표현한 CG 기술은 보는 이에게 감탄을 자아낼만하다. 사실적인 바다의 해저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90만 갤런의 물탱크가 준비되었다고 하는데, 90만 갤런은 340만 리터에 해당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치다. 다량의 물을 매개로 하여 사실적이고도 거대한 바다의 그래픽이 창출된 것이다. 영화의 파트를 구분했을 때, 두 번째 파트에서 주인공들이 바다에 거처를 둔 부족들에게 찾아간 이후의 장면들부터는 물과 바다의 아주 디테일한 그래픽이 돋보였다.
기존에 사실적인 표현이 어려웠다고 평가되는 어려운 물과 바다의 이미지, 영화 ‘아바타: 물의 길’에서는 CG로 무리 없이 구현되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대단위 자금과 인력 투입을 통해 그 어떠한 실물과 자연 현상도 CG로 사실적인 묘사가 가능하다는 점을 의미한다.
자본의 규모로 경험되는 씁쓸함
한편으로 ‘아바타: 물의 길’이 영상기술 시장에 던지는 메시지는 매우 단순하다. 자본의 규모가 뒷받침된다면 어떠한 영상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영화들에서 활용된 화려한 CG를 구현하는 데는 마치 기술력이나 노하우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것처럼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많은 자금이 준비된다고 해도 ‘특별한 CG’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기술력’이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임스 카메론은 전작 아바타에 이어 이번 아바타에서도 자금이 충분하면 어떠한 CG도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어디선가 대규모 자금을 끌어올 여력만 된다면, 이를 CG로 구현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바타: 물의 길’처럼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감수할 영화 제작사가 그렇게 많을까? 아니다. 이미 13년 전 천문학적인 금액(한화로 약 3천억 원)의 자금을 마련해 영화 ‘아바타’를 제작한 제임스 카메론,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할리우드 제작시스템이 아니었다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전편의 호기로운 도전에서 큰 성과를 거둔 제임스 카메론은 성공한 감독에게 부여되는 후광효과를 톡톡히 누려 후속작에도 배팅할 수 있었고, 그 결과로 영화사에 길이 남을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아바타: 물의 길’을 보는 사람의 감정에는 자본의 규모로 압도되는 쓸쓸함도 있다. 자본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절대로 만들어낼 수도, 제작에 도전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영화. 그런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를 우리는 예매전쟁을 감수하며 관람한다. ‘아바타는 꼭 3D 영화관에서 봐야 해.’, ‘아이맥스(IMAX) 영화관의 4D로 예매해야지.’, ‘아바타를 2D 영화로 보기는 아까워.’ 등의 말들은. 마치 ‘아바타’는 프리미엄 영화이니 그에 걸맞은 예우를 해줘야 한다는 것으로 들린다. 어떤 도전적인 감독이 이런 현상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씁쓸한 감정은 바로 아바타라는 예술작품이 자본력 없이 이런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