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나가는 K-콘텐츠에 맞는 QC가 필요하다

[기고] 세계로 나가는 K-콘텐츠에 맞는 QC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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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월간 방송과기술』 2022년 2월호에 실린 원고입니다.>

[방송기술저널=김승준 KBS 후반제작부 팀장] 콘텐츠 강국이 된 한국, 그러나…
아카데미상, 오스카상을 휩쓴 한국영화 <기생충>과 <미나리>, 공개하자마자 전 세계 1위를 기록한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을 비롯한 다양한 K-콘텐츠들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그 위상 역시 높아졌습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나라 방송제작기술 또한 UHD 방송을 세계 최초로 송출하는 등 기술 분야에서도 앞서가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은 명실상부 콘텐츠 강국이며, 세계 최고 수준의 방송 인프라를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콘텐츠마다 Case by Case로 적용되는 등 제작기술이 표준화되어 있지 않아 콘텐츠의 질적 문제가 야기되고 있고, 관행처럼 속도와 효율에만 치우쳐져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과 겹쳐 크게 우려되는 부분은 바로 거대 OTT에서 요구하는 제작 관련 기술 사항들이 마치 우리나라 제작기술의 표준처럼 자리 잡아가는 것입니다. K-콘텐츠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만큼 이제는 콘텐츠 퀄리티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정의하고, 누군가는 검증해서 대한민국의 콘텐츠가 세계로 나갔을 때, 내용적인 면과 더불어 기술적인 면에서도 당당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017년 5월, 세계 최초로 UHD 본방송을 시작한 우리나라였지만 SPEC에 부합하는 표준동영상도 없어 외산을 참고해야 하는 상황에서, 필자는 3년 전인 2019년에 UHD 표준동영상을 제작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제작 당시 다음과 같은 고민을 했습니다. 제작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했을 법한 고민일 것입니다.

▹ 8K 디지털 시네마 카메라로 촬영 시 1초에 2GB 이상의 저장용량이 필요한데, 이 엄청난 촬영 데이터를 어떻게 저장해야 하는가?
▹ Sony와 ARRI, RED 등 여러 카메라의 색상 톤이 다르고, 삼성이나 LG 등 모니터에 따라 표현하는 색이 다른데 무엇을 기준으로 작업을 해야 하는가?
▹ 인코딩, 렌더링에서 오류 발생 시 이 오류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쉽게 알 수는 없는가?
▹ 원본 해킹을 방지할 확실한 보호 방법은 없는가?
▹ 1,000nit 이상의 화면 밝기에서 작업하는 동안 제작자들이 건강에 영향을 받을지와 밝은 화면이 시청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런 고민에서 나온 답은 4K/UHD나 HDR 기술 등에 대한 ‘기준이나 표준’, 즉 ‘콘텐츠 QC’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콘텐츠 QC의 정의와 관련 해외 동향을 살펴보겠습니다.

콘텐츠 QC(제작기술 품질 관리, Quality Control)란?
정해진 영상, 음향 규격에 맞게 콘텐츠가 제작되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말합니다. 비디오 포맷, 카메라와 렌즈 정보, 오디오 포맷과 타입, 워터마크 등 기본 정보와 색역, 밝기를 나타내는 nit가 허용 범위를 넘지 않았는지, 플래시가 터지는 프레임이나 프레임이 한두 개씩 빠지는 드롭 프레임 등 눈으로 감지하기 어려운 부분을 기계적인 정보로 검증합니다. 관련 전문가가 영상과 음향을 직접 모니터링하면서 이상한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는 과정이 바로 콘텐츠 QC 과정입니다.
정상적인 HDR 영상 / 색번짐, 화질열화, 영상손실의 예
그림 1. HDR 이미지의 정상, 손실 예시, 그림과 같은 예는 모니터 특성이 다른 경우나 딜리버리나 색보정 과정에서의 문제, 화질열화나 영상손실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하여 발생할 수 있다. 정확한 QC 가이드와 단계별 가이드 설정이 필요한 이유이다.
출처 : KBS 방송장비인증센터 UHD 표준동영상 자료

해외에서는 이미 관리 중인 콘텐츠 QC

ACES의 제작기술 표준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같은 플랫폼에서는 엄격한 자체 제작기준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납품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는 디지털 전환 이후 HD 규격 설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4K/8K 영상과 HDR 제작에 대한 가이드나 표준은 없는 상황입니다.

그림 2. NETFLIX 콘텐츠 요구 규격 가이드, 여러 제작 분야별 기술규격 제시
출처 : partnerhelp.netflixstudios.com
그림 3.넷플릭스의 ARRI 카메라 가이드 예시
그림 4. UHD Aliance 홈페이지와 콘텐츠 요구 규격 가이드
출처 : alliance.experienceuhd.com

UHD Aliance 품질 기준
・ Color Gamut (색역) : P3
・ White Point (백색 기준) : D65
・ EOTF : SMPTE 2084 (PQ)
・ Black Level : 0.005Nits
・ Peak Luminance : 1000Nits

ACES 로고

ACES(Academic Color Encording System)는 미국의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제작기술 표준을 이끄는 기구로, IDT(Input Device Transform)와 ODT(Output Device Transform)의 개념을 제작 워크플로우의 기본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무수히 많은 카메라 종류별, 녹화 포맷별 원본을 입력과 출력으로 나누어 관리하며, IDT를 통해 동일한 색상과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는 중간 매개 코덱인 IMF(Interoperable Master Format)를 생성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워크플로우 단계마다 ACES에서 제공하는 색공간과 인코딩 가이드를 통해 제작하면, 최종단에서 ODT를 통해 모바일기기에서부터 TV까지 동일한 색감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림 5. ACES 표준 워크플로우
출처 : KBS 방송기술인협회 유튜브 자료

어찌 보면 당연한 제작 워크플로우일 수 있겠으나, 국내 제작환경에선 ‘종합편집실에서 봤던 화면 색감이 집에서 보면 왜 그만큼 표현이 안 될까?’라는 고민만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카메라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소스가 들어오고,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에서 TV, 프로젝터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디스플레이가 존재하는 이러한 현실에서 콘텐츠의 품질을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는 기술 표준의 도입은 필수적입니다.

국내 제작상황은?
ACES는 콘텐츠 제작에 있어 촬영에서 캡처, 데일리 편집 VFX 마스터링까지 동일한 색상, 동일한 품질, 동일한 이미지를 유지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사실 이 단순한 파이프라인의 목적을 국내 제작환경에 빗대어 보겠습니다.

시네마 캠으로 RAW까지는 아니지만 약간 압축된 ProresHQ 4K나 REDCODE 8:1 또는 6:1 수준의 촬영을 하고, 데이터매니저들이 편집을 위한 프록시 파일을 생성합니다. 이때 잘 놓치고 있는 것이 컬러 차트를 테이킹(촬영)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후반 제작과정에서 표준화된 색감을 생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또 한 가지 문제점은 Prores422HQ 등의 HD 사이즈로 다운컨버팅 한 것이 IMF 코덱이자 송출 전 단계까지 메인 코덱이 된다는 점입니다. 색감의 유지나 화질은 각 단계에서 신경 쓰지 못하고 있다가 색보정 단계 즉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나마도 촬영 원본 파일로 컨펌 즉 리커넥팅 작업을 통해 색보정을 진행하는 경우는 조금 나은 케이스라 하겠습니다. 이런 현실을 돌아본다면 각자 다른 인풋 디바이스를 IDT로 동일한 색감 퀄리티로 인코딩해서 단계마다 유지해서 나가되 최종아웃풋 시 ODT를 통해 모든 아웃 디스플레이에서 동일한 품질이 유지되도록 제안하는 ACES의 이론은 실제 국내 적용이 필요한 시스템일 것입니다.

유럽의 영상제작 QC
BBC는 2013년 이후 QC를 따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DPP(Digital Printing Protocol)나 ITU(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 등의 기구나 EBU(European Broadcasting Union) 산하 표준기관에서 기술규격을 제정하고 꾸준히 업데이트하며, 그 표준을 따르는 콘텐츠 제작 문화가 저변확대 되어 있기에 가능한 상황입니다.

또한, 유럽의 영상제작 QC는 한발 더 나아가 영상의 광민감성 발작, 즉 ‘휴먼팩터(human factor)’에 대한 연구와 표준제정에까지 닿아 있으며, ITR-BT1702 문서를 통해 정의하였습니다. 높은 밝기의 화면이 일정주기, 일정 패턴으로 반복 시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보고서를 채택하고 있으며, BBC의 경우 이 사항을 필수적으로 반영한 콘텐츠만 제작하고 있습니다. 디스플레이 부분에서도 시청자의 위치, 거리, 시청환경, 등에 따라 휴먼팩터 문제가 발생하는 등 간과되었던 많은 부분이 화면의 대형화와 밝기 상승에 따라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의학 전문가와 방송 전문가 집단이 함께하는 연구가 필요하며, 표준을 제정하여 이끌 수 있는 기관이나 정책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림 6. TV의 밝기를 나타내는 성능 차이에 따라 영상 데이터 훼손 예시
・ HDTV : 100~400nits, ・ UHDTV : 800~1000nits

기술규격 준수에 대한 인식 확산이 필요하다
콘텐츠의 디지털화, 모바일화, 네트워크화로 수많은 종류의 콘텐츠 유통단계가 존재합니다. 콘텐츠 퀄리티가 유지될 수 있는 제작표준 제정과 아카이빙에 대한 정책변화, 더불어 유통되는 콘텐츠의 지적 재산권을 지킬 수 있는 기술도 QC의 연장 선상에서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최근 화두인 대체 불가능 토큰인 NFT와 같이 영상을 포함한 디지털 아트는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대체 불가능한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제작 원본에 대한 권한과 권리에 대한 기술규격도 제정되어야 하고 검증되어야 할 QC 요소입니다.

콘텐츠 QC가 자리 잡기 위한 중요 요소로 먼저 아카이브(Archive)에 대한 인식변화가 필요합니다. 아카이브와 QC가 무슨 상관관계를 갖는지 의문이 들겠지만, QC의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원본’에 대한 개념입니다. 촬영 Tape가 원본이었던 시대에서 Tapeless Full File 시스템 도입 후 SD급이나 HD급 원본 보관이 잘 돼 있지 않거나 또는 수준 이하의 파일만 보관돼, 후에 재가공 시 질적 저하를 경험해 보신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잘 짜인 제작 워크플로우와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위한 원본 개념 정의, 보관시스템이 동반되어야 콘텐츠의 질적 향상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빠른 제작 속도와 효율을 강조하는 한국 상황에서 방송 후 또는 상영 후 아카이브를 위한 투자가 인색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국제적으로 QC를 위해 적용되는 표준규격에 EBU, SMPTE, ARIB, ITU-R, Local 규정 등이 있습니다. QC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그 문제가 발견되지 않은 시점의 클린한 프로세스로 다시 돌아가 재작업을 하게 됩니다. 100% 통과하는 콘텐츠가 거의 없을 정도로 QC에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지만 또한 제작자와 QC 담당자가 타협할 수 있는 포인트가 존재합니다. 방송사별 상황과 제작사의 표준이행 한계 등을 고려하여 QC 표준규격을 타협하지 않는다면, 콘텐츠 제작에 걸림돌만 될 수 있으므로 이 역시 중요합니다.

또한, 국고 지원사업으로 여러 기관에서 영상콘텐츠 제작을 지원하고 있고, 방송사도 외주제작을 의뢰하고 납품받으며 나름의 규격을 제시하고 있지만, 정작 그 기준에 부합하는지 검증할 콘텐츠 QC 센터도 현재는 없는 상황입니다. QC 자체도 중요하지만 기준을 가려낼 수 있는 기관이나 정책도 없는 상태에서 테스트가 진정성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대한민국도 이제 콘텐츠 품질 기준이나 제작 가이드가 만들어지길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제작사, 학계, 현업 단체가 함께 모여 표준안을 만들고 공유하여 고품질의 K-콘텐츠 제작이 현실화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