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월간 방송과기술』 2022년 4월호에 실린 원고입니다.>
[방송기술저널최홍규 EBS 정책기획부 연구위원/미디어학 박사] 지난해 학계에서는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국내만 예를 들어도, 2021년 이전까지 국내 등재지 색인인 KCI(KOREA CITATION INDEX) 급의 학술지에 메타버스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논문은 10여 편에 불과했다. 그러나, 2021년에는 메타버스를 제목에 포함한 논문이 80여 편, 메타버스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논문은 167편에 달했다. 그야말로 2021년 한 해 메타버스에 대해 관심이 있는 연구자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그야말로 ‘핫하다’는 ICT 관련 서비스들은 시장의 관심을 얻으면 자연스레 학계에서 연구자들의 연구 소재가 되는 과정을 거치는데, 지난해를 기점으로 메타버스가 그런 과정을 거치고 있는 ICT 서비스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메타버스에 대한 이러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메타버스가 실제 사람들이 모두 이용하는 서비스이자 한 시대를 대표하는 ICT 서비스로 자리 잡을 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다. 메타버스가 과연 ‘포털’이나 ‘소셜미디어’ 같은 ICT 발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아직 선결되어야 할 전제조건들이 있을 것만 같다. 이번 원고에서는 지난해 이슈로 부각하여 올해 대표적인 ICT 서비스로 거듭날지 기대를 모으고 있는, 메타버스가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전제조건이 필요할지 짚어본다.
이용자, ‘드러냄’과 ‘감춤’에 대한 이익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
ICT 서비스가 발전하려면 많은 이용자가 확보되어야 한다. 메타버스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메타버스가 포털이나 소셜미디어와 같은 수준의 서비스로 발전하려면 모든 세대에 골고루 이용자가 분포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이용자가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어떠한 거리낌도 느낄 수 없어야 할 것이다.
메타버스 서비스는 기존 서비스와 크게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이용자가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 활동하며 서비스 이용과정을 주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의 서비스들과 크게 다른데, 메타버스 서비스 이용자는 자신의 가상 캐릭터를 만들고 그 캐릭터가 감지하는 감각을 통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이용자는 캐릭터를 통해 메타버스 서비스 안에서 자기만의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고 그 공간에서 다른 이용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그야말로 메타버스 세계 안에서 이용자는 자기만의 특별한 정체성으로, 혹은 자기 주도적인 방식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메타버스 서비스 안에서 이용자들이 더욱 활발히 캐릭터를 만들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면, 이용자 스스로 ‘드러냄’과 ‘감춤’에 대한 이익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포털과 소셜미디어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는 ‘익명성’의 개념을 몸소 체감한 바 있다. 이러한 익명성은 기존의 서비스보다 메타버스 서비스에서 더욱 확산할 성질의 요소다. 메타버스 서비스가 시장에서 빠르게 정착하려면 바로 이용자가 메타버스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이 익명성이 가져다줄 효과에 대해 명확히 인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즉, 메타버스 서비스가 확산하려면 이용자들이 자신을 ‘드러냄’과 ‘감춤’으로 인해 얻게 될 이익을 명확히 구분하고 스스로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한 인식이 명확히 자리잡히지 못한다면 메타버스가 이용자들에게 선택되기 어려울 것이다.
포털을 통해 익명성의 개념이 확산하였지만, 소셜미디어 시대로 접어들면서 인플루언서의 개념이 등장하며 이용자는 자기 노출로 얻어지는 이익을 체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메타버스 시대에는 이용자가 스스로 자신을 캐릭터화하더라도 자신을 어디까지 드러내고 감출 것인지, 그 기준으로 찾아가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을 소비할 것이다. 아마도 ‘메타버스 스타’가 다수 탄생한다면, 메타버스 이용자가 기준으로 삼을만한 ‘드러냄’과 ‘감춤’의 모범사례가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용자는 이러한 모범사례를 통한 이익과 손해를 구별하며 서비스 이용을 늘려나갈 것이다.
공간, 현실과도 같아 보이지만 무엇이든 가능한 가상공간이 개발되어야
메타버스에서 구현되는 공간은 현실과 흡사해야 할까?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메타버스 서비스가 더욱 확산할까? 필자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가상공간은 ‘가짜’의 특성이 엿보일 때 매력적이다. 그래서 가상공간은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의 집합체여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너무 터무니없는 가상의 공간은 메타버스 서비스가 확산하는 데 저해 요소가 될 수 있다. 가상이더라도 현실감도 어느 정도 느껴지는 공간이 더 많이 생겨나야 한다는 말이다.
참으로 말이 어렵다. 현실과도 같아 보이지만 무엇이든 가능한 가상공간이라고? 결국에는 더 많은 상상력이 집결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상상력들은 철저히 이용자 주도로 구체화할 수 있어야 한다. 구글(Google)은 어느 정도 수준의 검색정보들을 확보한 이후 급성장했고, 페이스북(Facebook)은 뉴스 피드의 규모가 확장되면서 대표적인 소셜미디어 서비스가 되었다. 유튜브(YouTube)도 다양한 주제의 동영상들이 공유되며 서비스가 정착할 수 있었다. 그러니 결국, 메타버스에서도 이용자들의 상상력을 요체로 한 콘텐츠가 더 많이 확보되어야 한다.
메타버스에서 중요한 콘텐츠는 공간이다. 메타버스에서의 공간은 현실과 같아 보이는 것도 같지만 이용자가 무엇이든 시도해볼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게임에 주력하는 메타버스 서비스라면 기존 서비스와 차별화된 게임 스테이지를 더욱 많이 제공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용자 간에 친교를 목적으로 하는 메타버스 서비스라면 학습, 오락, 친목을 극대화하는 공간들이 대량으로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메타버스 안에서의 공간 콘텐츠는 결국 이용자가 스스로 꾸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최근의 ICT 서비스에서 ‘이용자’는 단순히 구축된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으며, 서비스 제공자와 함께 서비스를 만들어가는 구성원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선택받을 메타버스 서비스냐 아니냐는, 결국 이용자가 공간을 포함하여 시각화된 콘텐츠를 쉽게 만들 수 있도록 양질의 저작도구를 제공할 수 있느냐 아니냐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거래, 신뢰할 수 있는 화폐를 통한 완벽한 거래가 이뤄져야
메타버스 서비스가 기존 서비스와 달리 사람들의 더 큰 기대를 받는 이유는, 메타버스 서비스 안에서 경제활동이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기존의 플랫폼 서비스들에서도 경제활동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지만, 주로 콘텐츠를 매개로 한 판매와 거래가 주요한 형태였다. 하지만 메타버스 서비스 안에서는 직접 가상의 화폐를 통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용자는 가상의 공간에서 캐릭터로 활동하는 것 자체만으로 수익을 실현할 수 있고, 가상의 공간을 대여해 주고, 그 공간에서 광고를 게재하며 콘텐츠를 거래하여 직접적인 경제활동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메타버스에서 이러한 경제활동이 구현되려면 아직 난제들이 많다. 무엇보다 가상의 공간에서만 통용되는 화폐에 대한 신뢰가 아직 확보되지 못한 것이 큰 난제다.
지난해 메타버스 열풍이 있었지만, 그전에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열풍이 있었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은 메타버스와 그 이슈가 연결되면서 가상공간에서의 본격적인 경제활동이 가능해지는 신호탄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아직도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에 대한 무용론적 시각이 있다. 이러한 시각이 존재하는 한, 메타버스에서 완전한 경제활동이 가능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편 이용자들은 메타버스라는 서비스를 통해 자신을 캐릭터화하고 다양한 가상의 공간을 체험하고 싶을 수 있으나, 이러한 이용 활동의 개념 안에 경제활동이 포함되지 않는 한 메타버스는 기존 서비스와 차별화되기 어렵다. 즉, 메타버스 안에서 경제활동이 완벽히 가능해져야 비로소 메타버스가 포털과 소셜미디어를 이어 대표적인 ICT 서비스의 계보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