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청산

[칼럼] 적폐 청산

143

[방송기술저널=SBS 뉴미디어개발팀 부국장 오건식] 얼마 전 지인의 딸 결혼식에 갔었다. 주례사에 ‘4차 산업시대의 도래’란 표현이 포함돼 있었다. 청춘 남녀가 교제를 해서 결혼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말씀인 주례사에 뜬금없이 4차 산업이란 단어가 나와서 조금은 황당했다. 4차 산업 전의 결혼 생활과 4차 산업 도래 이후의 결혼 생활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해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인공지능이 결혼 생활 양태를 변형시킬 수도 있다는 말인지. 생각해보면 기념사 등에 별 의미 없이 그 당시를 풍미하는 단어를 끼워 넣는 것이 관례로 자행(?)됐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학적인 관행 자체가 일종의 적폐는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적폐 청산’. 이 단어는 2017년 하반기 현재의 핵심 키워드다. ‘적폐’는 영어로 ‘Augean Stables’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된 단어로써, 아우게이아스(Augeas) 왕의 3,000마리에 달하는 소 외양간(Stables)을 30년간 청소하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한 단어다. 3,000마리 소의 똥을 30년이나 방치했다면 그 냄새를 비롯한 폐해는 안 봐도 비디오다. 올해가 1987년 체제의 만 30년이 되는 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통상적으로 한 세대를 30년이라고들 하는 것과도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헤라클레스가 강물을 끌어다가 외양간을 청소했다고 한다. 그 당시의 레알 적폐 청산 방법이었다. 이는 헤라클레스의 12 과업 중에 5번째일 정도로 큰 업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아우게이아스 왕은 하루 만에 청소를 해주면 자기가 소유한 가축의 1/10을 주기로 했지만 약속을 안 지켰다고 한다. 물론 아우게이아스 왕의 최후는 안 좋게 끝난다.

요즘에도 거의 매일 미디어에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기사나 보도 영상을 접한다. 이전에 ‘우찌 이런 일이~’라고 하면서 어리둥절했던 사건들의 세세한 윤곽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단독]들을 통해 막연히 생각했던 적폐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헤라클레스가 했던 것처럼 적폐 청산의 도도한 강물이 흐르고 있다.

이에 정의감에 불타는 필자가 또다시 나섰다. 최소한 방송기술계의 적폐는 우리 방송기술 엔지니어들이 스스로 해소해야 한다는 절박한 사명감으로. 그래서 여러 명의 지인을 접촉하면서 물어보았다. “방송기술계의 적폐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방송기술계 자체의 심각한 적폐는 ‘없다’이다. UHD TV의 방식 선정이 너무 조급했다든지, DMB의 수익 모델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없었다든지, 언제까지 디지털 라디오 도입을 외면할 것인지 등등 기술 자체의 문제점보다는 주로 정책적 이슈가 주를 이룬다. 방송 방식의 결정 과정 등에서 보듯이, 방송기술인연합회 등 전문성을 가진 단체가 제시한 바와는 동떨어진 결정들은 꼭 나중에 문제를 야기했다고 할 수 있다.

합해보면 적폐는 주로 정책결정자들이 만들었고, 엔지니어들은 저질러진 문제를 해결해 왔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전문가들의 의견이 존중되고 정책에 반영이 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우리가 겪고 있는 국정농단 사태도 여러 차례 전문가들에 의해 경종이 울려졌던 사안들이었다. 하지만 전문가의 의견과는 달리 정작 시행되는 정책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경우를 그동안 너무 많이 겪었다. 이공계의 전문가는 쉽게 양성되지 않는다. 대학에서도 이공계 학생들에게는 더 많은 등록금을 요구한다. 졸업 후에는 더 큰 수행이 필요하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DTV나 UHD TV의 달콤함 뒤에는 방송기술 엔지니어들의 노력이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그릇을 만들어야 콘텐츠가 담기는 데, 콘텐츠만 이야기하고 그릇을 만드는 노력은 폄하되거나 무시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XX전자의 직원들 연봉이 어마어마하다고 말하면서도, 그 XX전자의 직원들이 야근을 밥 먹듯 한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 필자가 꼭 XX전자에서 연락을 바라고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적폐 청산의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이야기는 실화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하면서 실제로 해 본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한 것이 생생한 예이다. 마치 전문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엇을 해 낸 것을 무용담인 양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그나저나 다스(DAS)는 누구 것입니까? 우리 회사에 DAS(Digital Archive System)라고 있는데, 그럼 혹시 SBS 것인감?

댓글 없음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