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방송 개선, 재난경보 기술 정책 없이 표류

[사설] 재난방송 개선, 재난경보 기술 정책 없이 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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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재난방송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종종 도마 위에 오른다. 늦장 재난방송이 지적된 적은 한두 번이 아니다. 2016년 경주 지진이 발생했을 때 지진경보 자막 송출 시스템은 지진 발생 뒤 약 18분이나 늦게 자막을 내보냈다. 2019년 4월 강원도 산불 때도 늦장 재난방송이 다시 문제가 되었다. 반면 2017년 포항 지진 발생 시 휴대폰 재난 문자는 지진파가 수도권에 도달하기 전에 울렸다. 이후 국민은 방송보다 빨리 알려준 휴대폰 재난경보의 경험으로 재난 발생 1보를 TV 속보 자막이 아닌 휴대폰 문자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매번 나오는 늦장 재난방송에 대한 대책도 유사하다. 주요 방송사의 책임을 강화하고 운영 매뉴얼을 개선하고 정부의 방송사 관리 기능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과연 조직과 인력이 문제일까? 휴대폰 재난 문자 전달에 관련 조직과 인력이 더 많아 전달 속도가 개선되었을까? 오히려 휴대폰 재난 문자 전달 체계에는 간소화된 조직과 통합된 시스템이 신속한 전파를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이제는 재난방송을 기술 정책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현행 재난방송 관련 법령과 규정을 살펴보면, 재난 상황에서 방송통신위원회 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방송통신발전기본법 제40조 제2항에 따라 방송사에 재난방송 시행을 강제할 수 있다. 실제 지상파 방송사는 방통위 요청이 있으면 속보 자막 형식으로 재난방송 1보를 제공하고 있다. 방통위와 과기부는 이처럼 재난방송을 요청하기 위해 재난방송 온라인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재난 정보의 전달 네트워크는 더 많이 존재한다. 행정안전부는 DMB에 재난경보 데이터를 송출하기 위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고, 기상청에 기상특보 전파 시스템도 방송사와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여러 재난 정보 전달 시스템이 개별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호환성이 없어서 통합 정보 활용이 어려운 실정이다.

과연 외국은 어떨까? 우리는 미국이 지난 15년간 재난 정보 전달 체계의 기술 정책을 수립하고 시스템을 선진화하는 과정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은 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엄청난 피해를 본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미 정부의 주민 대피령과 비상조치가 늦어 피해가 커졌고, 이에 대통령령으로 재난경보 선진화 법을 만들었다. 이후 XML 기반의 재난 정보 데이터 표준인 CAP(Common Alert Protocol)이 만들어졌다. 이어 CAP에 기반을 둔 방송, 이동통신, 인터넷 등의 매체에 동시에 재난경보를 전달하는 통합재난경보 전달 시스템 IPAWS(Integrated Public Alert and Warning System)이 구축되었다.

국내에서는 민방위 경보 전달 체계에 관한 법·제도적 변화에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작년 12월 개정된 민방위기본법은 민방위 경보에 관한 기술 표준, 기술 기준, 단말기 인증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을 신설하였다. 올해 6월에 시행령이 마련되었고, 최근에는 세부 기술 기준이 행정예고 되었다. 민방위 경보 전달 표준과 기술 기준을 제도화하고 인증된 수신기가 보급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기술 정책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재난방송 정책을 담당하는 방통위는 연내 재난방송 의무사업자 모든 채널의 재난방송 송출 상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재난방송 모니터링 센터를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눈으로 감시하는 아날로그적 접근이고, 조직과 인력 중심으로 재난방송을 개선하려는 기술 몰이해에서 나오는 접근법이다. 휴대폰 재난 문자 서비스처럼 오늘날 우리 사회는 정보기술이 사회 안전망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있는 시대이다. 아무리 방통위가 비기술적 정부 조직이지만 이제는 미국과 같이, 민방위 경보 체계와 같이 재난방송에 필요한 기술 정책을 모색하기 바란다. 세부적으로는 당장 정부가 방송사에 제공하는 재난 정보 표준화를 법률적으로 명문화하고, 재난방송 송출 시스템의 자동화를 위한 기술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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