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료 징수 체계 논란과 공영방송

[사설] 수신료 징수 체계 논란과 공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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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김동신 EBS 기술인협회 회장] 전기요금 징수원이 매달 가가호호 방문하여 전기료를 거둬가던 시절이 있었다. 세금이 아닌데도 전기요금을 전기세(稅)라 불렀다. 세금이나 다름없는 공공요금이었기에 그렇게 부르지 않았을까, 전기요금은 조세도 부담금도 아닌 물가안정법의 적용을 받는 공공요금이다. 텔레비전방송수신료는 어떠한가. 이 또한 세금은 분명 아니다. 그렇다고 텔레비전을 보는 만큼에 따라 징수하는 공공요금도 아니다. 수신료의 영어 표현은 면허료(license fee)로, 텔레비전 신호를 무료로 수신할 수 있는 장치를 허가받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999년 TV 수신료의 법적 성격을 특별부담금으로 결론지었고(98헌바70), 2008년에는 전기요금과 병합하여 징수하는 방식에 대해 합헌이라고 판단했다(2006헌바70). 공영방송 운영과 유지를 위해 텔레비전을 시청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공평하게 부담하는 사회적 경비라는 얘기다. 수상기를 가진 가구에 수신료를 부과하는 법적 정당성을 헌법재판소가 인정했다.

지난 몇 년 사이 해외 여러 나라에서 수상기를 가진 사람들에게 부과하던 방식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스마트폰 등장과 맞물린다. 텔레비전으로만 방송 콘텐츠를 접하는 세상이 아니다 보니 수상기 보유 여부만으로 부담금을 지우는 데 한계가 있었다. 더욱이 젊은 세대들은 텔레비전보다 스마트폰으로 방송을 보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가구별로 수상기 유무에 상관없이 부과하는 국가, 소득세를 부과하듯이 월급의 일정 비율을 공영방송 재원으로 부과하는 나라가 늘어갔다. 넷플릭스, 유튜브가 잔디밭에 토끼풀 번지듯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세상에 그들은 왜 자국의 공영방송 존속에 그토록 열심일까? 자국의 문화를 발전시키고, 조상의 얼을 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데 공영방송만 한 제도적 장치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화로 인식되던 미디어가 어느새 산업이 되고, 글로벌 거대 자본이 미디어 산업의 맹주가 되면서 나라마다 고유의 문화가 자리 잡을 공간은 줄어들었다. 이대로라면 공영방송의 종말이 멀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세들은 그야말로 박물관의 유물로 기억할 수 있다.

공영방송은 거대 자본에 가려진 곳을 들여다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비록 돈이 되지 않을지라도 어린이, 청소년, 노인, 다문화 가족을 위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따뜻함을 나누며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드는 우리 사회 공공의 재산이다. 전기나 수도와 비교할 공공 서비스가 아니다. ATSC 3.0과 같은 새로운 표준을 활용해서 국민에게 편익이 돌아가는 기술 서비스를 기획하고 선도적인 투자를 하기도 한다. 국가의 재산인 소중한 전파에 실린 공영방송의 콘텐츠는 깨어난 시민을 키워내고, 자라나는 미래세대가 내일을 바로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을 제공한다. 거짓과 조작이 난무하는 디지털 암흑 세상에서 진실을 가려내고 불을 밝히는 역량을 키워준다. 때로는 진위를 판별하는 잣대가 되고, 때로는 뭐든 배울 수 있는 학교가 되고, 때로는 여가를 즐기는 놀이터가 된다. 민주주의 발전과 직결되는 기둥이다. 교육으로 국가 백년대계를 실현하고, K-콘텐츠의 전진기지로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언론으로서, 국가 재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첨병으로서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

시청자의 주인 된 권리를 넓혀가는 방향은 백번 지당하다. 더불어 43년간 동결된 요금, 여타 국가들의 10% 남짓 수준에 머무는 TV 수신료에 대한 검토도 함께 이뤄져야 하지 않겠는가? 지난 50년간 발전시켜 온 공영방송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고 제도다. 모두가 무료 보편적인 미디어 서비스를 누리기 위해서는 국가가 세금을 거두듯, 의무적으로 의료보험료를 부담하듯, 공공요금을 내야 하듯 ‘의무적으로 져야 할 부담’이다. ‘강제징수’가 아니라 ‘특별부담’이다. 징수 방식에 대한 논란에 앞서 거대 자본이 지배하는 OTT 시대에도 국가의 공영방송을 살리기 위한 ‘TV 수신료’의 ‘조세화(taxation)’, ‘독립된 위원회’ 설치 등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점화하는 게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