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기술인, 기술조직 그리고 경영

[사설] 기술, 기술인, 기술조직 그리고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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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박재현 방송기술저널 편집주간] ‘기술은 방송의 근간’이라고 한다. 방송국을 막 설립했을 때 가장 큰 목표는 오직 사고 없이 무사히 방송을 내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한동안 무사고 방송만을 목표로 할 때 기술의 역할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안정화’가 되면 그 무사고 운행은 일상이 되고 당연시된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해결해야 할 큰 문제가 발생한다. 다시 급하게 기술을 찾는다. 돌아보면 이것이 기술의 역할과 위상이 아니었나 싶다. 최초 설계자로서, 평시의 안정적 일상으로서, 그리고 전시의 해결사로서… 그렇게 기술은 방송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바야흐로 숨 가쁜 ‘변혁 After 변혁’의 시대다. 그리고 그 변혁의 시대를 맞이하는 기성 방송사에 닥친 환경은 시련 그 자체다. 플랫폼 경쟁력은 상실한 지 오래고, 콘텐츠 경쟁력도 위협받고 있다. 메이저 방송사의 광고 매출 급감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다. 이러한 시련의 시기에 기술에 다시 한번 조명이 비쳤다. 재설계자로서, 해결사로서 역할을 기대받으며. 그런데 현재 상황은 이전 몇 차례의 재설계 때와는 본질적으로 달라 보인다.

이전의 재설계는 요약하면 해상도를 올리는 작업이었다. 비유하면 리모델링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즉, 큰 틀과 개념은 그대로 가면서 좀 더 좋은 화면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물론 큰 개념이 변하지 않으니 기존의 내부 역량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현재의 재설계는 단순히 해상도를 올리는 작업이 아니다. 완전히 개념이 바뀌는 것이다. 유통 혁명 속에서의 재설계는 말 그대로 완전히 헐어내고 다시 짓는 재건축이라고 봐야 한다.

당연히 기존의 역량만으로는 턱도 없다. 말만 난무하던 IT, 방송통신 융합, AI, 5G가 회사의 피부 속으로 스며들게 만들어야 하는 미션이 주어진 것이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그런 역량이 부족할 뿐 아니라 그러한 역량을 미리 갖춘 잠재적 경쟁자들이 계속 등장할 것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단 한 사람의 개인이 우리의 경쟁자로 등장하지도 않는가? 우리를 보호해주던 온실이 걷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기존 방송 인프라를 효율화시키고 일정한 틀에 따라 움직이던 업무 프로세스를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기술 인력 대부분이 일정한 송출 업무, 일정한 제작 업무에 일정 수의 인력들이 투입돼서 정해진 룰에 따라 업무에 임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다양한 송출 미디어와 제작 규모에 대응을 어렵게 하고 있다. 엔지니어들이 먼저 나서서 이러한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두 번째는 시시각각 변하는 유통 환경에 맞게 진화할 수 있는 신규 인프라를 갖추는 일이다. 이미 몇몇 방송사는 유통 인프라를 갖추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 신규 인프라는 기존 방송 인프라의 개념(예를 들면 아카이브)으로 만들면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는 점이다. 사업의 목적을 제대로 설정하고 거기에 맞게, 또한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끊임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진화형 인프라로 구축해야 한다. 이것은 기술인들만으로는 이뤄낼 수 없다. 반드시 전략·사업 파트와 긴밀하게 협의하면서 진행해야 한다.

다음으로,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우리들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다. 새롭게 이 ‘업’에 진입하려는 업체와 비교해보자. 우리만이 갖추고 있는 경쟁력이 무엇인가? 기술 전략? 연구개발 능력? 아니다. 이러한 분야는 시장의 기술 중심의 기업과의 경쟁력 면에서 오히려 취약할 수 있는 부분이다(업의 특성 면에서, 인력 구조적 측면에서). 이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도록 ‘노력’이 필요한 분야이고 진짜 우리의 경쟁력은 ‘고품질의 콘텐츠 제작 능력’이다. 물론 이것 또한 경쟁력이 있다고 자신할 수만은 없다.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일상적 안정’에 안주해 온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쌓인 ‘업력’은 분명 미래의 경쟁력을 갖추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경영이다. 현재까지는 기술이 보도와 제작처럼 전문가 집단으로만 인식돼 왔다. 앞으로는 고품질 콘텐츠 생산과 이를 이용한 모든 사업적 행위는 기술 기반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이제 모든 방송사는 기술 기반의 경쟁력을 갖추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경영 자원의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더 이상 기술 조직을 전문가 집단으로만 보지 말고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진화한 전문가 조직이 될 수 있도록 경영적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 기술인과 기술 조직도 경영이 기술 측면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적극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태초에 기술은 방송의 근간이라고 했다. 이제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태초에 기술은 방송의 씨앗이었다. 이제 기술은 알찬 열매를 맺기 위한 빛과 공기 그리고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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