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방송기술 교류, 시작은…

[사설] 남북 방송기술 교류, 시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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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이상규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장] 지난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남북 방송교류를 위한 로드맵 수립방안 세미나가 열렸다. 북한의 미디어와 통신 현황을 살펴보고 남북 방송교류를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무엇인지 짚어보는 자리였다. 북한에는 조선중앙텔레비젼 이외에도 다른 채널들이 존재하며 위성방송은 물론 2016년부터는 인터넷TV(IPTV) 서비스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에서의 방송은 체제 선전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방송의 내용이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바이나 북한의 방송이 디지털화가 되었다는 것과 IPTV까지 시청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에게 새로운 사실일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북한의 방송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남과 북의 방송기술 교류가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는 2017년에 세계 최초로 지상파 초고화질(UHD) 방송을 시작했다. 만일 남과 북이 방송기술 교류를 시작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한의 기술을 북한에 도입하는 방식의 교류를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지상파 UHD 방송 표준을 북한에서 적용한다면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단편적인 사고이거니와 한쪽의 표준을 공동의 표준으로 삼는 것을 양측이 교류를 시작하기도 전에 성과물로 기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진정한 교류를 위해서는 양측의 현재 상황과 미래의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 선행돼야 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최대한의 공통분모를 찾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중국에서는 2018년 10월, 4K 방송을 위해 독자적으로 개발한 AVS2라는 코덱을 사용한다고 발표했다. 케이블 방송을 위한 표준이지만 향후 다른 매체에서도 AVS2를 사용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2012년 중국의 CCTV가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전의 디지털화를 지원했었던 만큼 향후 북한의 4K 방송 표준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남과 북이 직접 교류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주변국을 통한 간접 교류를 생각해볼 수 있다.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에는 남북의 정치체제에 대한 부담이 적으면서도 남북 관계 회복에 촉매제가 될 수 있는 우리 민족이 많이 살고 있다. 특히 중국의 연변 조선족자치주에서는 우리말로 방송을 하고 있으며 북한과의 교류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연변의 이러한 지리적, 문화적 이점을 활용하여 한류 콘텐츠의 공급, 방송 기술과 관련된 학술 세미나 및 인력 교류를 활발히 하면서 동북아 방송기술 교류의 장을 만든다면 남과 북의 직접 교류가 가능해지는 시기에 그 무엇보다 큰 힘이 될 것이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남과 북이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를 해야 하고, 그중에서 방송 교류야말로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문화적 유대감을 긴밀히 하는 데 있어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노이 북미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면서 한반도는 과거로의 회귀냐,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열 것이냐 하는 역사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현재의 상황으로만 본다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교착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밑에서는 모든 국가가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고 있겠지만 그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바다 건너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