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방송 교류 활성화를 위한 기술 방법론 모색

[기고] 남북 방송 교류 활성화를 위한 기술 방법론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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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박종원 KBS 네트워크시설국 국장]

남북 협력 시대에 공영방송의 역할
세계 유일의 분단국 한반도에서 민족의 평화 공존과 화해를 위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정치, 외교, 경제 분야는 물론 미디어 분야에서도 본격적인 남북 교류·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JTBC는 북한에 평양지국을 설립해 가장 빠르게 북한의 소식을 전할 수 있는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는가 하면, KT는 방송 인프라 구축이 어려운 초기에는 가장 빨리 교류·협력을 할 수 있는 위성방송을 통한 협력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SK텔레콤은 남북 협력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남북 경협에 맞춰 개성공단이나 금강산에 무선 통신을 중심으로 교류·협력을 추진 중이다. 공영방송에 부여된 민족의 화합과 남북의 사회 통합을 도모하는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통일 과정에서 공영방송의 중요성은 독일 사례를 통해 이미 확인된 바 있다. 독일 통일 전 80%가 넘는 동독 시민들이 서독의 공영방송을 시청해 왔으며 이는 동독 시민들의 의식 변화에 크게 기여한 걸로 알려져 있다. 서독은 PAL, 동독은 SECAM 방송 송출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었며, 두 방식은 주사선과 헤르츠가 동일하기 때문에 동서독 간 방송 시청이 가능했다. 정치·경제적 상황이 독일과 많은 차이가 있지만, 통일 과정에서 보여준 공영방송의 역할은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사영 방송과 달리 공영방송은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설계되고 제도화돼 있다. 방송법 제43조(설치 등) 공정하고 건전한 방송문화를 정착시키고 국내외 방송을 효율적으로 실시하기 위해 국가 기간 방송으로서 한국방송공사(이하 이 章에서 “公社”라 한다) 설립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방송법 제44조(공사의 공적 책임) 공사는 국내외를 대상으로 민족문화를 창달하고, 민족의 동질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을 개발해 방송해, 남북의 동질성과 통일 기반을 마련하는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남북한이 방송을 시청하는 것은 막대한 방송 인프라 구축을 위한 초기 자본 투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수신료와 같은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수익이 보장되지 않은 난시청 해소, 대규모 방송 인프라 구축과 같은 공익 목적에 수신료 지급만으로 누구나 어디에서나 방송을 시청할 수 있도록 보편적 접근을 보장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상업적 측면에서 남북 방송 교류·협력이 성공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공영방송이 선도적으로 방송 교류·협력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시장이 실패할 우려가 있고, 대규모 자본이 투자되는 공익적 역할이 필요한 남북 방송 교류·협력과 통일 과정에서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가 부각되고 있다고 하겠다.

기존의 남북 방송기술 교류·협력
참여정부 시절 남북한의 교류·협력이 활성화하면서 방송기술 분야도 가시적 성과가 있었다. 2004년부터 시작한 드라마 <사육신> 공동 제작 과정에서 KBS는 드라마 제작에 사용하는 동시녹음 장비, 드라마 촬영 장비, 편집 장비 등 총 210만 달러를 제공했다. 또한 2005년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위원회를 방문해, 오디오/비디오 시스템 기술 이전과 편집기 등을 지원했다. 당시 방송위원회가 중심이 돼 KBS는 SD급 디지털 중계차를 지원할 정도로 남북 방송기술 교류 사업은 활발히 진행됐다. 그러나 제작 장비, 중계차 지원 등 장비 지원에 국한해 제한적으로 이뤄진 측면이 있었다. 이후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남북의 방송기술 교류·협력 사업은 중단됐다.

북한의 방송 체계 및 시스템
북한의 방송 체계는 내각의 문화성 아래 조선중앙방송위원회가 있으며, 중앙방송위원회는 조선노동당에서 실질적으로 관리하면서 3개의 텔레비전 매체와 평양FM방송을 관장한다. 방송 시설은 내각의 체신청(중앙방송국)이 관장하며 아래에 시·도 체신국과 군 체신소가 있다. 우리나라의 디지털 텔레비전 전송 방식은 미국의 ATSC 방식을 사용하는데, 북한은 아직도 아날로그 PAL 방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디지털 방식인 DVB-T 방식으로 채널당 8㎒을 사용하고 있다. 북한의 지상파방송은 조선중앙TV, 만수대TV, 룡남산TV 등 3개 매체를 가지고 있다. 조선중앙TV는 평양시 모란봉구역 전승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평양, 해주, 사리원 등 20개의 송신소를 통해 북한 전역에 PAL 방식으로 송출하는 유일한 전국 종합채널이다. 만수대TV는 평양 시민과 외국인 대상으로 하는 문화 프로그램 전문 방송으로 방송사는 평양 만수대에 위치하고 있다. 이밖에 1997년 개국한 조선교육문화TV는 평양에 위치하고 있으며 2012년 룡남산TV로 전환해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 인재를 키우는 데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을 기본으로 방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의 방송 체계와 현황은 대부분 과거의 자료로 정확성이 떨어져 향후 교류·협력과 함께 북한의 전파방송 분야의 현황에 관한 자료와 체계적 관리가 요구되고 있다.

남북 방송기술 교류 활성화 방안
한반도 통일 시대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정보 제공, 비판과 감시, 여론 형성, 사회화, 오락, 광고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방송·미디어의 사회적 의미는 매우 크다. 수십 년 동안 이질적 구조로 발전해온 남북 간 민족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을 방송·미디어가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TV의 경우에는 전송 방식이 다르고 전파 도달거리가 짧아서 방송 호환이 쉽지 않다. 남북한의 매체 상황을 고려하면 단기적으로는 중단파방송 매체를 활용하는 것이 검토된다. 현재 KBS는 남북한, 일본, 중국 연변, 러시아 연해주 일대까지 커버하는 중단파 ‘한민족방송’을 송출하고 있다(그림 참조). KBS 당진송신소는 1,500KW의 중파 방송을 송출하고 있으며, 김제송신소에서는 500KW의 중파 신호를, 화성송신소에서는 100KW의 단파 신호를 송출해 한반도와 주변의 해외 동포와 북한 동포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송출하고 있다. 중단파 한민족방송을 활용해 우리말 겨레 사전과 같은 콘텐츠를 통해 남북의 언어를 통일하고 남북 간 문화적 격차를 좁히는 프로그램을 송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2007년 완공한 파주시 적성면에 소재한 북감악중계소는 남쪽으로는 파주, 북쪽으로는 개성공단을 커버리지로 하고 있어 향후 개성에 남북교류협력사무소가 설치되면 개성에서도 KBS의 텔레비전과 FM 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그렇지만 중장기적으로 남북한의 텔레비전 전송 방식을 통일해야 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방송은 전송 방식이 달라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UHD 방송에서 미국식 ATSC 3.0으로 방식을 통일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모바일 방송 측면에서 지상파 DMB 방식을 북한이 채택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남북 교류·협력이 확대되면 남북한이 동일한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 서비스 매체와 도달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공산 체제에서는 방송이 당의 선전 수단이자 이데올로기 전파 수단으로 기능하면서 당의 직접 관리를 받기 때문에 방송 프로그램 교류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가치중립적인 방송기술 분야의 왕래와 협력을 우선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KBS 한민족방송 중단파방송 전파 커버리지

남북 교류·협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류·협력을 위한 창구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방송통신위원회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중심이 되는 회의체를 통해 남북한이 주기적으로 교류·협력을 위한 의제를 설정하고 하나씩 실천해 가는 것이다. 한편, 방송 시스템과 매체를 활용한 교류·협력 외에도 과거에 추진해 온 방송 제작 장비 지원 사업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이다. 그리고 남북의 방송기술인들이 모여 방송 표준 방식과 주파수를 활용하는 방안을 통해 차세대 미디어와 방송기술을 공동 연구하는 것도 협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남북 방송기술인들이 교류와 교육을 위한 남북방송기술교육원 설립도 고려해 볼 만하다. 남북의 방송기술인들이 교류를 통해 주파수 연구, 방송 방식 연구, 새로운 서비스 개발을 위한 공동 연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공동의 연구를 뒷받침하는 세미나 개최와 교육 등 다양한 협력 사업을 준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은 공영방송의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는 전기가 될 전망이다. 단기적으로는 KBS가 운영해 온 한민족방송의 인프라를 활용해 방송 교류를 추진하고 중장기적으로는 통일의 기반을 다지는 남북 방송기술 교류·협력을 추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남북한이 동일한 텔레비전 방송을 시청하기에는 텔레비전 방송 방식을 통일하고 많은 인프라 구축이 병행돼야 한다. 방송국의 설립과 함께 보편적 서비스를 도달하기 위한 방송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며 많은 재원을 필요로 한다. 결국 남북 교류·협력의 역할 수행을 위해 남북교류협력기금 또는 수신료와 같은 공적 재원이 소요될 것이다. 남북의 화해 분위기와 함께 공영방송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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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진 등(2009), 북한 방송통신 부분 및 남북 방송통신 교류협력 현황 보고서
정보통신정책연구원(2015), 통일 대비 남북 방송통신 교류협력센터 추진방안 연구
심영섭(2015), 통독 이전 이후 사회적 통합을 위한 독일 공영방송의 역할과 과제
탁재택(2015), 한반도 통일 시대를 대비한 공영방송의 역할과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