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방송의 딜레마와 발전 방향

[기고] 지역방송의 딜레마와 발전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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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변상규 호서대학교 영상미디어전공 부교수]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우리나라가 국토의 크기에 비해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지역마다 언어가 조금씩 다르고, 음식이나 특산품이 다르며, 기질도 다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형성된 문화적 정체성은 다채로운 지역 축제로 구현되어 관광 상품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문화의 다양성까지 반영하여 세계지도를 다시 그린다면, 우리나라의 면적이 지금보다는 훨씬 넓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3대 지상파 네트워크 모두 지역방송1)을 운영하고 있다. 케이블 SO(System Operator)도 지역 채널을 하나씩 운영하고 있다. 이 중에서 지상파 지역방송은 국민 누구나 시청할 수 있는 ‘무료 보편적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지역방송은 보도를 통해 지역 내 다양한 소식을 전해서 지역 여론 형성의 장을 제공한다. 그리하여 주민자치를 실현하는 인프라의 역할을 함으로써 중앙으로부터의 정치적 통제력을 분산시킨다. 또한 지역의 문화를 발굴하고, 계승 및 발전시켜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등 대표적인 공익 미디어로 인정받는다(Napoli, 2001). 그래서 대부분 국가에서 다양성과 함께 지역성(localism)을 방송의 공익성을 구현하는 중요한 목표 중 하나로 중시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방송의 지역성이 충분히 구현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역방송이 지역 주민들을 위한 방송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역 프로그램보다는 중앙에서 제작하여 중계하는 프로그램들을 더욱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랜 중앙집권의 역사 때문인지, 지역의 현안보다는 중앙에서 진행되는 전국적 현안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지역 프로그램에 대한 낮은 관심은 지역방송사들의 경영을 악화시킨다. 결국 지역방송의 역할이나 활동 영역을 위축시켜, 중앙사에 대해 경제적으로나 콘텐츠의 의존도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근래에는 KTX가 전국으로 확장되어 전국이 두 시간 생활권이 되면서, 지역방송 무용론까지 제기되기도 한다. 면적으로만 보면 큰 나라의 한 주(州)나 성(省)에 불과한데 KTX까지 갖추었으니,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지역성이 고전을 면치 못할 것 같다.

지역방송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또 있다. 이들을 뒷받침해 줄 지역의 경제적 역량이 부족한 것이다. 우리나라 지역방송은 대체로 광역시도 단위를 방송권역으로 삼고 있고, 일부 중소 거점도시에 추가로 연주소를 두고 있다. 그런데 경제구조가 서울을 중심으로 형성되다 보니 중앙과 지방간 경제력 격차가 크다. 더욱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학업, 취직 등으로 인해 수도권으로의 이동이 심화되고 있다. 그러므로 지역의 경제력이 3개의 지상파방송과 복수의 SO 지역채널을 지탱할 만큼 충분한지 의문이다. 지역의 취약한 경제적 기반을 고려하면 지역방송이 커버하는 방송권역이 넓을수록 유리하다. 지역방송이 광고를 통해서 지역 시장을 획정해주고, 지역 내 유통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함을 고려하면, 방송권역의 광역화가 지역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도 기대할 수 있다.

실제 열악해지는 사업 환경에 대응하여 지역방송사 사이에서 통합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성과나 부작용이 명확히 드러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광역화로 인해 수요의 확대와 함께 규모의 경제 효과를 통한 운용의 효율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겠다.

그러나 지역방송의 어려움이 지역민이나 지역 경제에만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방송이 지역민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탓도 크다. 한 예로 지상파 지역방송의 권역이 지나치게 넓은 것이 부정적 요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지역민들이 가장 알고 싶고 궁금한 것은 본인들의 생활권역 내에서 생산되는 소식이다. 그러므로 방송권역이 좁을수록 지역방송 본연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역방송은 방송권역 내에서 가장 중심되는 대도시에 자리 잡고 있고, 부족한 지역 프로그램조차 그 중심 도시 위주로 제작된다. 지역방송에서 또다시 소외된 주변 중소 도시나 농어촌의 주민들은 지역 중심 도시보다는 차라리 우리나라의 중심인 서울에 대해 더 높은 관심을 보일 수 있다.

만약 해외의 사례와 같이 중소 도시마다 지역방송이 운영되고 시정·교통·교육·경제 정보를 자세히 알려준다면, 지역민들의 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주민들이 방송에 출연할 기회가 많다면 지역방송에 대한 애착심이 높을 것이다.

필자는 어린 시절 친구가 평소에 잘 시청하지 않던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신기한 마음으로 열심히 시청한 기억이 있다. 또한 해외에서 집 근처 상점이 오늘 최대 몇 %까지 할인행사를 한다는 광고나 유명 식당의 개업 광고를 보고 오후 일정을 조정하는 등, 생활에 실질적 도움을 받은 경험도 많다. 모든 주민을 한 번씩은 방송에 출연시키는 것이 목표라는 다소 허황되게 들리는 목표를 말하는 지역방송 경영자도 만나보았다. 광장에 설치된 공중전화 부스 같은 공간에 들어가서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라디오로 송출해주는 방송사도 보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그런 역할을 기대하기엔 지역방송의 문턱이 너무 높아 보인다. 외국과는 달리 대도시 위주의 방송이므로, 소소한 콘텐츠를 지역방송이 잘 송출하질 않는다. 프로그램의 형식이나 무게감도 중앙사와 차이가 별로 없다. 지역민이 일상에서 지역방송사를 친밀하게 느끼지 못한다면, 지역방송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친밀한 방송은 좁은 권역을 대상으로 할 때만 가능하다. 방송의 품위가 떨어질 것이라는 일부의 비판은 있으나, 밀착성은 지역방송의 생명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지역 지상파방송사들이 중앙사를 따라가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지역방송사의 사옥이나 인력구성, 비용구조 등은 해당 지역보다는 중앙사와 더 가까운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광역시도 단위의 방송권역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사는 경제적으로나 콘텐츠 수급에서 중앙사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즉, 중소 도시 규모로 지역방송을 운영하기에는 현재의 비용구조가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역성의 구현에 적합한 좁은 방송권역은 경제성 확보와는 배치되는데, 여기에 지역방송의 어려움이 있다.

지역방송은 그간 방송권역 내에서 배타적 영업권을 이용해 중앙사 프로그램의 중계에만 주력하였고, 광고 결합판매와 전파료 배분에 안주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한국방송학회, 2011.4). 그 결과 최근 중앙사의 광고매출 급감이 지역방송에도 그대로 연동되고 있다. 2014년 12월부터 「지역방송발전지원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지역방송이 추가로 지원을 받고 있으나, 충분하다고 평가하는 사업자는 없다. 그래서 인접 지역사끼리 통합하고, 지역 프로그램 유통 네트워크를 런칭하며, 공동제작을 늘리는 등 자구책을 모색하기도 했다. 또한 방송 외 기타사업 부문에서 웨딩홀, 커피숍 등의 사업을 운영하고, 그 수익의 일부를 방송 제작비로 투입하면서 버티고 있다.

앞으로 지역방송은 재원 구조의 개선과 역할 개선을 동시에 요구받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그렇지만 해법은 간단치 않다. 오랜 시간 많은 논의와 다양한 노력이 진행되었으나, 지역방송의 어려움은 현재진행형이다. 다만 원칙으로 돌아가서 다매체 시대에 지역방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을 것이다. 본 고에서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여 크게 다음 두 가지를 제안하려 한다.

첫째, 지역민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친밀한 지역 콘텐츠를 제작하여야 한다. 중앙사 프로그램들의 연장선에 있는 익숙한 포맷을 탈피하고, 지역민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의 기획 및 제작에 주력해야 한다. 즉, 지역민의 관심을 끌 수 있거나 생활에 도움을 주는 내용을 소재로 삼아서 시청자와의 거리감을 줄이고, 참여도를 높여야 한다. TV 보다는 친밀감이 높은 라디오방송이나, 해외에서 성공한 지역방송사나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지역방송이 친밀성을 강화한다면, 주민들은 제작비가 많이 투입되지 않은 콘텐츠라 하더라도 열심히 시청해 줄 것이다.

둘째,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제작해야 한다. 과거에 지역 프로그램을 전국으로 송출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이러한 역할을 하는 채널들이 유료방송에 편중되어 있다. 정부도 글로컬(glocal) 시대에 부응하여 지역 프로그램의 수출을 지원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지역 프로그램의 유통은 여전히 쉽지 않다. 부실한 유통망과 전문인력 부족, 홍보 미비 등이 개선점으로 꼽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의 경쟁력이다. 지역에서 인정받은 콘텐츠라야 전국이나 해외에서도 수요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고품질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과 비용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현재 지역방송사가 프로그램에 투입하는 시간당 제작비는 중앙 3사 대비 10%에 불과하다. 게다가 지역방송의 방송직 종사자는 2012~2016년 사이에 7%나 감소하였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콘텐츠 경쟁력의 약화가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 실제 지역방송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중에는 지역의 개성이 넘치는 고품질 작품이 많다. 이러한 콘텐츠들을 전략적으로 제작하고, 이를 마중물 삼아 지역방송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제작비 지원을 늘리고, 중간광고 및 광고금지품목 해제 등 지역방송 대상으로 우선하여 광고 규제를 완화하고, 방송통신발전기금 면제 등 다양한 지원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밀려드는 뉴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지역방송에는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1)지역방송은 지상파와 케이블방송을 통해 제공되며, TV와 라디오를 아우른다. 그러나 본 고에서는 주로 지역 지상파TV 방송사를 다루므로, 편의상 지역방송의 범주를 지상파TV 방송사의 지역방송 네트워크로 국한한다.

[ 참고문헌 ]
한국방송학회 (2011.4). <지역방송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재편 및 매체전략 방안 연구>.
Napoli, P.M. (2001). Foundations of communication policy: Principles and process in the regulation of electronic media. Cresskill, NJ; Hampton Press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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