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 3년, 여론 다양성은 구현되었는가?

[칼럼] 종합편성채널 3년, 여론 다양성은 구현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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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로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들이 개국한 지 3년을 맞이한다. 종편 도입 논의가 한창일 당시, 도입을 찬성하는 측은 여론의 다양성을 주요 명분으로 내세웠다. 반면에, 반대하는 측은 여론 독과점이라는 상반된 논리를 제시했다. 3년이 지난 지금, 과연 어떤 상태가 되었을까? 

다양성은 저널리즘의 대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공정성의 전제조건이다. 하나의 텍스트가 공정하기 위해서는 두 개 이상의 관점, 의견, 주장을 전개하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지상파 방송을 중심으로 한 국내 방송에 대한 평가는 다양성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등장해 왔다. , 이와 같은 문제제기는 거시적 차원에서 보자면 언론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언론이 특정 입장이나 시각에 편향되어 다양성을 위배하였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다양성을 논의하기 이전에 고찰해야 할 부분은 다원성혹은 다원주의라는 개념이다. 대부분의 논의에서 다양성과 다원성(다원주의)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미디어 분야의 다양성과 관련한 국내 연구에서도 다원성에 대한 언급 없이 다양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거나, 다양성에 대한 언급 없이 다원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두 개념을 혼용하여 사용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 만큼 다양성과 다원성은 유사한 개념으로 이해된다고 할 수 있으며, 이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곤란함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양성과 다원성의 개념은 분명 차이가 있다.

다양성과 다원성을 개략적으로 정리하면, 다양성(diversity)은 차이가 있거나 차이들을 갖는 상태(the condition of being different or having differences)이며, 다원성(plurality)은 하나 이상이 되는 상태(the state of being plural)라고 정의할 수 있다. , 다양성은 차별성을 강조하는 개념이며, 다원성은 복수성을 강조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종편을 평가하자면, 다양성을 충족했다고 보기 어렵다. 아니 오히려 훼손했다는 평가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물론 신규 방송사 4개가 설립되었으니, 복수성의 개념에 가까운 다원성 측면은 일정부분 달성되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종편 4사가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의 공급 과잉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어도 시사 보도 프로그램의 다원성은 충족(?)되었을 수도 있겠다. 실제,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주간 단위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을 합친 편성량은 TV조선이 5,100분으로 가장 많고, 채널A 4,440, MBN 3,410, KBS1 2,975, JTBC 2,725, MBC 2,320, SBS 2,145, KBS2 630분 순이다. 그러나 다원성의 충족도 딱 여기까지다. 이는 특정 장르에 치중한 다원성 충족으로, 타 장르의 입장에서 보면 다원성도 턱 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게다가 종편의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패널은 소위 보수성향 가까운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고, 프로그램의 포맷이나 다루는 주제들도 극히 제한적이다. 주로 대담 혹은 토론의 이름으로 보수성향의 전문가 패널들과 정치 이슈를 이야기하는 수준의 스튜디오 제작물들이다. , 다양성이라는 가치는 절대 달성되지 못했다는 의미다.

필자는 지난 730일 재보궐 선거의 선거방송심의 위원으로 활동 한 바 있다. 당시 한 종편 채널의 시사 프로그램에 대해 공정성 위반 가능성이 제기되어 제작진의 의견청취를 요구했던 적이 있다. 해당 프로그램은 사회자를 포함한 다수가 보수적 성향의 인사로 분류될 수 있었고, 실제 방송에서도 친 정부여당 측을 옹호하는 입장을 여과 없이 발언했다. 반대로 야당 측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 발언들을 쏟아 냈다. 그 반대의 입장을 견지한 패널은 딱 1명뿐이었다. 그런데,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 찾아온 제작진의 발언에서 필자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소한의 균형을 맞추었다는 것이다. 최소한이라니최소한의 균형도 균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이 종편에서 극히 일부의 다원성을 충족한다고 볼 수 있더라도, 다양성은 전혀 달성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여론 독과점이 차별적(다양성) 복수성(다원성)’이 보장되지 못하는 상태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종편의 3년은 오히려 여론 독과점을 심화시켰다는 해석이 맞을 것이다. 종편으로 인한 여론 다양성을 주장했던 당시의 학자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뭐라 말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