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료 인상과 미디어렙 그리고 관치경제

[조준상 칼럼] 수신료 인상과 미디어렙 그리고 관치경제

686

 

수신료 인상과 미디어렙, 그리고 ‘관치경제’


마구 쏟아진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소식들이 귓가에 맴돈다. 굴지의 대기업들이 종합편성채널 진출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꾸렸다거나, 일부 지상파방송도 종편 진출을 꾀하고 있다거나, 보도전문채널을 종편으로 바꿀 계획을 세우고 있다거나 하는 얘기들이 그것이다. 언론관계법 ‘날치기 기도’ 이후, 한국사회는 반쯤 열린 판도라 상자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들이 뭉개 뭉개 피어오르는 상황에 놓여 있다.
 


판도라 상자가 완전히 열려버릴지, 아니면 닫힐지는 알 수 없다. 헌법재판소가 산 권력의 ‘기정사실화’ 놀음에 놀아날지, 아니면 2006년 6월 신문법 관련 결정을 잊지 않는 온전한 기억력을 발휘해 최후의 보루 구실을 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답답함은 헌재를 쳐다보는 일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는 듯한 상황에서 그치지 않는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쏟아지는 온갖 논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한층 더 숨을 막히게 하고 있다.


하나가 수신료 인상의 효과에 관한 것이다. ‘공영방송은 국가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횡행하는 판에 ‘수신료 인상’이 논의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지만, 현재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 측면에서 한 가지 곁가지 논리가 힘을 얻는 듯해서다. 수신료 올리면 KBS 2텔레비전의 광고가 시장에 흘러나와 종합편성채널이나 다른 방송에 돌아가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게 그것이다. 한정된 광고시장을 둘러싼 출혈 경쟁이 격심해지는 상황에서 새로운(?) 광고 재원을 시장에 투입하는 것은 이 방안이 유일하다는 그럴 듯한 설명이 여기에 덧붙는다. 이런 이유에서 혹자는 종합편성채널의 광고 매출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현 정부가 반드시 수신료를 올릴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수신료 올리면 KBS 2텔레비전의 광고 재원이 다른 방송에게 돌아갈까? 이 시나리오의 정답은 광고주만이 알고 있다. 광고주가 KBS 2텔레비전에 집행하던 광고를 다른 방송에 집행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다는 보장이 없다. KBS 2텔레비전은 광고주가 선호하는 유력한 채널의 하나다. 이 채널에서 광고를 사실상 금지하는 조처를 취할 경우, 광고주에게는 광고를 집행해야 할 매체의 하나가 줄어드는 효과를 낳는다. 이는 그만큼 광고 예산을 줄일 수 있는 여지를 낳는다. 개인적으론 이런 효과가 훨씬 더 클 것이라고 판단한다.


물론, 광고 예산을 줄이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바로 정치권력에 의한 광고주 압력이다. ‘광고 예산 줄이지 말고 그걸 종합편성채널에 집행하라!’는 보이는 권력의 교통 정리가 작용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개인적으로 수신료 인상이 미디어 시장에서 신종 관치경제를 낳을 것이라고 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 광고의 경제적 효과를 따지고 광고 집행에 시청률을 연동시킬 것을 주장하며, 광고시장에 시장 논리를 도입해야 한다고 역설하던 광고주들은 어떤 목소리를 낼까? 누구나 짐작하듯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할 것이다.


숨 막힐 듯한 갑갑함을 배가시키는 두 번째 가벼운 논리는 이른바 ‘민영 미디어렙’과 관련해서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민영 미디어렙 법안은 미디어렙 법안이 아니다. 그것은 방송사 ‘직접 영업’을 미디어렙으로 포장한 법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방송사가 51% 소유하는 미디어렙은 방송사의 직접영업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나라당 민영 미디어렙 법안에 찬성하는 방송사는 차라리 방송사 직접영업을 주장하는 편이 훨씬 더 솔직하다.


방송광고 판매를 미디어렙으로 하는 게 바람직한가, 아니면 직접영업으로 하는 게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는 그 자체로 논의해서는 안 된다. 수도권은 광고재원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반면, 지역은 그렇지 않다는 ‘구조’를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 이 구조 속에서 수도권의 풍부한 광고 재원을 지역에 교차 보조하는 데 미디어렙이 유리한가, 아니면 직접영업이 유리한가 하는 게 논의의 기본이 돼야 한다. 후자는 아니다. 교차보조 자체가 불가능해질 위험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수도권 지상파방송 키스테이션, 특히 MBC(서울)와 SBS의 역할 문제가 떠오른다. 두 방송은 지역 지상파방송과 함께 네트워크 체제를 이루고 있다. 문제는 이 체제를 허물고 싶은 유혹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MBC(서울)의 경우 사영화 문제와 맞물려 있어 이 유혹이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SBS로서는 상대적으로 강력하다. 위성방송을 통해 전국으로 재송신하면 비용도 적게 들고 주주들한테 줄 수 있는 배당 여력도 커진다. 굳이 기존의 네트워크 체제는 필요가 없는 것이다. SBS가 그동안 민영 미디어렙과 관련해 낸 목소리가 사실상 방송사 직접영업에 가장 가까웠음을 떠올려 본다면, 단지 기우만도 아니다.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하는 곳은 헌재만이 아닌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