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 동등접근권 vs 콘텐츠 동등접근권

[이종화의 디지털 세상보기] 망 동등접근권 vs 콘텐츠 동등접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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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과 콘텐츠는 서로 속성이 다르고
맞교환해야 할 규제의 대상도 아닌데
똑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는지…

 2008년 1월 17일 발효된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이하 IPTV법)’에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지배력 전이를 막기 위한 조치로 이른바 ‘망 동등접근권’을 명문화해 놓았다. 제14조(전기통신설비의 동등제공)가 그것인데, IPTV망을 소유한 사업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다른 사업자의 망사용을 제한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또한 ‘부당하게 차별적인 대가와 조건으로 제공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동법은 제20조(콘텐츠 동등접근)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방송프로그램’을 IPTV를 통해 시청할 수 있도록 다른 IPTV사업자에게도 공정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차별 없이 제공하여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그런데 하나의 법에 이해가 상충되는 두 사항이 동시에 적시되면서 이해 당사자들은 서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제14조에는 그간 요구되어왔던 ‘동등접근권’이라는 수요자 관점의 표현이 ‘동등제공’이라는 공급자 관점의 표현으로 바뀌었으며, 제20조에서는 그간 통신사업자들이 주장해온 ‘콘텐츠 동등 접근’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전체적으로 통신 측을 배려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망 동등접근권’이 없다면 망을 구축한 사업자만이 그 망에서 독점적으로 IPTV 서비스를 하게 되므로, 고속도로 건설사업자에게만 그 고속도로에서 운송사업을 독점하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통신계에서는 IPTV 가입자가 300만에 도달하기 전까지 ‘망 동등접근권’적용을 유보해달라고 요구할 정도로 사업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여겨왔다.
 그러면서 그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망 동등접근권’에 맞불 놓을 규제항목으로 ‘콘텐츠 동등접근권’이라는 것을 주장해 왔다. 망과 콘텐츠는 서로 속성이 다르고 맞교환해야 할 규제의 대상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논리가 적용될 수 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미국 FCC가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접근규칙(PAR : Program Access Rule)으로부터 따왔다고 하지만, PAR은 어떤 SO와 수직적 결합관계에 있는 전국채널사업자가 타 사업자의 공급계약요구에 대해 부당하게 거절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기 때문에 개념상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와 달리 ‘망 동등접근권’은 논리적 타당성이 매우 높다. 법에서도 명시한대로 IPTV망은 광대역통합정보통신망으로서 마치 고속도로와 같은 것이며 일종의 SOC(social overhead capital)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사회 구성원 모두에 대해 제공되며’ 무상 또는 약간의 대가로 이용할 수 있는 시설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IPTV망은 근본적으로 모두에게 제공되어야 하는 동등접근권이 원천적으로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정부예산으로 구축한 것이 아니므로 사업자가 내세우는 합당한 금액을 지불해야 하겠지만, 그것이 SOC가 맞는다면 구축사업자의 이익을 우선하기보다 최대한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사가 만들어낸 콘텐츠라는 산물을 망이라는 물리적 인프라와 같이 취급하여 동등접근권을 거래한 듯 보이는 IPTV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지상파 방송 콘텐츠의 선호도가 높다고해서 동등접근권을 주장한다면 선호도가 낮아질 경우에도 과연 여전히 똑같은 대우(?)를 해가며 동등접근권을 주장할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최근 메가TV와 하나TV가 거의 동시에 MBC 방송 콘텐츠의 이용료를 건당 500원씩 이용자로부터 받기로 했고, KBS와 SBS 콘텐츠에도 2월1일부터 같이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무료 보편 서비스 대 유료서비스 논쟁이 촉발되면서 자연스럽게 지상파TV의 실시간 재전송에 대한 논란도 불붙게 되었다. 이에 대해 콘텐츠 권리를 가진 지상파방송사들은 IPTV사업자들이 방송콘텐츠에 무임승차하는 것은 곤란하며, 어느 나라도 방송 콘텐츠를 당일에 공짜 VOD로 보게 하는 곳이 없으니 유료화는 당연하다는 단호한 입장이라고 전해진다.
 그렇지만 케이블TV에 지상파방송 콘텐츠가 무료 재전송되고 있는 현 상황을 감안할 때 무임승차 불가론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 못하며, 케이블TV와 IPTV에 대해 각기 다른 논리로 접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통신사업자들이 주장하여 법 조항에 존치시켜 놓은 ‘콘텐츠 동등접근권’이라는 논리에 대응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한편 케이블TV가 지상파 TV의 난시청해소 목적이 있기 때문에 지상파방송 콘텐츠를 무료 제공한다고 할 수 있겠으나, IPTV가 케이블TV와 유사한 방송매체라고 법적 정의를 내린 상태에서 IPTV도 난시청해소 기능이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IPTV법의 발효와 함께 지상파 공영방송은 마치 두 손이 뒤로 묶인 입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든다. 지금 당장 그리고 얼마간은 콘텐츠 유료화로 부가수익을 챙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IPTV 사업자들이 손익분기점에 이를 정도로 가입자를 확보한 이후에도 콘텐츠 동등접근권을 주장해가며 모든 콘텐츠에게 동등한 대가를 지불할는지 알 수 없는 일이며, 콘텐츠를 줄 세우기 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라는 위험한 생각을 해본다.


이 종 화
KBS 방송기술연구팀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