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V전환과 주파수 재배치는 일순간에 끝나지 않는다

[사설] DTV전환과 주파수 재배치는 일순간에 끝나지 않는다

729

지상파 텔레비전의 디지털 전환이란 방송사의 송출단으로부터 시청자가 수신하는 과정까지의 신호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하는 작업이다. 지난 수년간 DTV Korea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사들이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듯이 수신단(시청가구)의 디지털 전환은 기존의 아날로그 수상기를 디지털TV로 교체하거나 DTV 수신이 가능한 셋톱박스를 연결하고 안테나를 교체하는 것으로 비교적 손쉽게 전환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송신단의 디지털 전환은 수신단만큼 손쉽게 해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선 송출단에서의 디지털 전환이란 기본적으로 기존의 아날로그 신호 송출과 관련된 장비의 교체와 더불어 주파수의 재배치까지도 포함하는 작업이다. 방통위는 현재 지상파가 사용 중인 14~68 채널 영역을 14~50 채널로 축소해서 방송사별 주파수를 재배치하도록 요구하구하고 있다. 문제는 이 주파수 재배치 정책이 SFN(Single Frequency Network) 방식을 구현하는 미국식 정책이라는데 있다. 우리나라는 MFN(Multiple Frequency Network) 방식을 구현해서 같은 방송사라 하더라도 지역별로 사용되는 주파수가 달라지는 형태다. 그러다 보니 방송 주파수를 재배치하는 작업은 주파수간의 혼신을 막기 위해 곧 전국 350개에 달하는 송·중계소에서 지상파 채널 다섯 개에 해당하는 총 1750개의 방송주파수 배치를 모두 재검토해야하는 작업이 된다.

물론 이 작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선 가장 넓은 커버리지를 담당하는 대출력 송신소의 주파수들을 채널별로 재배치하고, 다음 단계로 그보다 작은 커버리지를 담당하는 중출력·소출력 송신소들의 주파수를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면 가능한 작업이다. 그러나 지금의 방송통신위원회는 2012년 12월 31일 새벽 4시에 일괄적으로 재배치된 주파수를 통해 디지털 전환을 실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방송주파수를 재배치하는 작업은 곧 ‘각 송신소 및 중계소에 이미 설치되어있는 아날로그 송신기를 철거하고, 그곳에 DTV 송신기를 설치하며, 채널필터를 교체하고, 안테나 신설 혹은 변경, 주파수 변경에 따른 송신기의 조정’ 등 필수적인 여러 작업들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방통위는 이를 단순히 ‘아날로그 송신기의 전원을 끄고 디지털 송신기의 전원을 켜면 해결되는 작업’으로만 이해하고 있다.
또한, 송신소의 철탑을 올라 안테나 철거·변경·설치 작업을 수행할 철탑공은 전국 약 200명 정도로 확인되는데, 4인 1조로 활동한다고 하더라도 50개에 불과한 작업팀이 전국의 650개소의 송신소, 중계소 및 TVR의 안테나를 변경 및 신설을 2012년 12월 31일 하루만에 처리한다는 것은 물리적·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더구나 그 시점은 춥고, 어두운 한 겨울의 새벽이다. 송신소 철탑공이 수퍼맨이 될 수는 없다.

이제와서 아날로그 방송 종료 일정을 변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시청자들에게 홍보가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근본적으로는 DTV 전환 일정이 늦춰질수록 아날로그·디지털 방송을 동시에 운영하는 비효율이 방송사에게는 지속적으로 부담이 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하루’라는 극히 짧은 시간동안 수백 곳의 송신소에서 그 다섯배에 달하는 주파수를 재배치하고 관련되는 모든 장비를 철거·변경·설치해야 한다는 방통위의 구상은 끔찍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비록 그 형식적으로 단 하루안에 디지털 전환과 주파수 배치가 완료된다고 하더라도 전국의 방송은 상당기간동안 혼신과 난시청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결행한 디지털 전환 후에 또다시 혼신과 난시청의 멍에를 방송사에 떠 넘길 셈인가?

주파수 재배치와 디지털 전환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단 하루만에 작업을 완료해야 한다는 사실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시청자와 방송사가 보다 나은 환경에서 디지털 방송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도록 합리적인 방식을 궁리할 필요가 있다. 그 궁리의 결과가 만약 방통위의 애초 목표와 달리 주파수 재배치 작업 시한을 유예하거나 권역별로 나눠서 진행하는 방안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