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지상파와 유료방송간 재송신료(CPS)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지상파 재송신 협의체를 발족하고 8월 11일 1차 회의를 개최했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사들은 이해 당사자인 자신들이 참여하지 않은 재송신 협의체는 편파적일 수밖에 없다며 협의체 구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지상파 방송사들이 회의 연기를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협의체 발족을 밀어붙였다. ‘불통 행정’, ‘성과주의식 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상파방송과 유료방송은 2007년부터 재송신 대가 등을 이유로 갈등을 빚어왔다. 2008년에 접어들어서야 인터넷TV(IPTV) 사업자와 가입자당 280원으로 협상을 마무리했지만 케이블 방송사와의 협상은 결렬됐다. 이후 민사 소송과 판결을 통해 여러 차례 협상을 시도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결국 송출 중단 사태까지 벌어졌다.
재송신 대가를 둘러싼 지상파와 유료방송 간 해묵은 갈등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중심에는 저가 콘텐츠 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 정부는 디지털 전환 사업을 추진하면서 미디어 산업을 활성화 시킨다는 명분하에 지상파의 영향력은 억제하고 이와 반대로 케이블 사업자에겐 많은 특혜를 제공했다. 특히 케이블 방송사에 지상파 디지털 TV 전송방식인 8VSB(8레벨잔류측파대) 전송방식을 허용함으로써 케이블 업계의 이익을 대변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케이블 방송의 화질을 개선시킨다는 명분으로 케이블 가입자를 잡아 두려는 케이블 TV 업계 이익을 대변해 오히려 저가 유료방송 시장을 고착시켰다는 것이다. 결국 유료방송 중심의 정부 정책이 미디어 선순환 생태계 구조를 파괴 시켰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의 위상은 예전과 같지 않다. 다매체 시대 치열한 미디어 경쟁으로 해마다 광고 수입은 떨어지고 있다. 초고화질(UHD) 방송, 다채널 방송 등 다양한 무료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재원도 넉넉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나마 지상파 방송사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콘텐츠 제값받기를 통해 콘텐츠 제작을 위한 선순환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다. 지상파 방송사는 어떻게든 유료방송 사업자와 재송신 협상을 진행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정부 주도의 재송신 협의체에 의지한 유료방송 사업자들은 협상에 제대로 임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재송신 협의체를 통해 협상을 진행하자고 제안하지만 오히려 정부의 개입이 특정 사업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수 있어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우리나라보다 많은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미국의 경우에도 정부는 사업자간 협상에 가급적 관여하지 않고 있다. 정부의 개입이 오히려 역효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사업자 간 협상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분위기나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분위기나 여건을 조성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정부가 직접 사업자간 협상에 개입하는 것은 오히려 특정 사업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해 협상을 방해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 같은 개입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