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방송 종료, 이제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

[사설] 아날로그 방송 종료, 이제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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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31일 새벽 4시, 서울 및 수도권을 마지막으로 전국 아날로그 방송 송출이 완전히 종료되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본격적인 디지털 TV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이 땅에 TV라는 매체가 생긴 지 어언 56년. 1980년 컬러 TV로의 진화에 이은 두 번째 대격변이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스타트’에 대한 흥분을 잠시 내려놓고 상황을 냉정하게 살펴보면, 안타깝게도 우리의 앞에 마냥 장밋빛 미래만 펼쳐질 것이라는 상상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과정의 이유. 하나는 결과의 이유다.

우선 과정의 이유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당초 아날로그 방송 종료 계획을 정식으로 발표하며 디지털 전환 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받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하겠다고 장담한 적이 있다. 그러나 현재 방통위는 디지털 전환을 먼저 끝낸 다른 나라와의 수치를 들먹이며 ‘대한민국은 양호한 편이다’라고 슬쩍 말을 바꾸고 있다.

또 결과를 내기 위한 과정은 어떠했는가. 무리한 자막고지 및 가상종료로 인해 안 그래도 낮은 직접수신율은 더욱 바닥을 치기 시작했고 덩달아 지상파 방송을 보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유료 방송에 가입하는 비율만 급상승했다. 또 실질적인 대민지원 홍보의 부족으로 디지털 전환 사업 자체가 크게 위협받기도 했으며 그 무엇보다 중요한 채널재배치 사업에 있어서도 예산 삭감 이후 납득할만한 후속조치가 전무한 상황이다.

여기에 아날로그 방송 종료를 순차적으로 종료한다는 방침은 훌륭했으나 그 시기를 2012년 12월 31일 이후가 아닌 이전으로 날짜를 당김으로서 졸속 아날로그 방송 종료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 디지털 전환 이후 확보 가능한 700MHz 대역 방송 주파수의 무조건적인 통신사 할당 움직임과 유료 방송 업체의 입김에 휘둘려 허가조차 내리지 못하고 있는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는 어떤가. 결론적으로 ‘아날로그 방송 종료의 과정’은 총체적인 난국에 빠져 있었다.

 

   
 

두 번째는 결과의 이유다.

2013년 현재 아날로그 방송 종료가 완료되자 전국의 약 5만 여 가구는 블랙아웃 상태에 빠져 커다란 혼란에 휩싸인 상태다. 당장 시청권을 박탈당한 국민이 재산권 침해로 헌법 소원을 제기한다고 해도 한 말이 없다.

게다가 2013년 전국 3권역 순차 채널재배치도 불안요소다.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시청자들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채널재배치 시간을 새벽으로 옮기자는 지상파 방송사의 의견은 묵살되고 오후 2시로 일괄 확정되었을 뿐더러 실질적인 예산 부족 및 방송사 손실 보전 미흡으로 인해 채널재배치 시범지역이던 2010년 강진의 대대적인 블랙아웃 사태가 다시 한번 재현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또 유료 방송 가입자에 대한 정부의 무대책도 심각한 문제다. 실질적이고 현실 가능한 지원책을 마련해 건강한 디지털 미디어 환경을 구축할 로드맵은 전무하고 천문학적인 국가 예산만 막무가내식으로 유료 방송에 퍼다줄 생각만 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28일 새누리당 김장실 의원실이 세계 최초로 발의한 유료 방송 디지털 전환 특별법은 이러한 ‘사업자 퍼주기’의 화룡점정이라 볼 수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디지털 TV 컨버터용에만 국한된 정부의 디지털 전환 정책은 시작부터 잘못되었으며 2012년 12월 31일 아날로그 방송 종료는 시기상조라는 말도 나올 정도다.

이제 대한민국은 디지털 TV의 시대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황은 복잡하다. 국민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으며 무료 보편의 미디어 서비스는 요원해지고 있고 극심한 혼란만 격렬한 파열음을 내며 무너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디지털 평등’시대를 맞이해 빈부격차가 정보격차로 이어진다는 ‘디지털 소사이어티’의 시대를 맞이했다. 정부와 방통위는 올바른 미디어 공공성을 바로세우는 한편 유료 방송에 대한 퍼주기를 중단하고 실질적인 디지털 전환 혜택이 모든 국민에게 돌아가게 만든다는 ABU 서울선언문의 정신을 되살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