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공산(無主空山) 스마트TV, 방송사의 진취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설] 무주공산(無主空山) 스마트TV, 방송사의 진취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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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상반기가 지나며 방송계에는 새로운 화두가 등장했다. 바로 ‘스마트TV’다. 흡사 ‘스마트폰’으로부터 파생됐을 법한 이 생소한 낱말은 어느 새인가 전 세계 방송, 통신, 가전사 모두가 군침을 삼키는 먹음직스런 파이가 된 듯하다.

이전에도 방송매체는 위성방송, 케이블TV, DMB, IPTV 등 전달방식의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가입자, 수익, 광고, 매출 측면에서 모든 시도가 만족스러운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그로 인해 일부에서는 방송시장을 두고 ‘한정된 콘텐츠와 소비자를 지나치게 많은 매체가 나눠가지려 애쓰는 형국’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가전, 통신사가 스마트TV 시장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스마트TV가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스마트TV 시장의 폭발력은 얼마나 클지, 시청자 혹은 소비자들에게 스마트TV란 어떤 의미인지’를 곰곰이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도대체 스마트TV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다.

 

‘스마트TV’의 정의를 인터넷 검색이나 사전 등에서 찾으면 이런 결과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TV와 인터넷을 동시에 제공하는 다기능, 지능형 멀티미디어 TV’. 그런데 과연 이것이 스마트TV에 대한 명확한 정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위의 문구는 그저 스마트TV의 기능적 범주를 두루뭉술하게 엮어 놓은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스마트TV의 구체적인 개념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는 각 기업에서 출시하는 스마트TV기기와 서비스가 천차만별이라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실제로 올해 독일 IFA(Internationale Funk Ausstellung)에 등장한 애플, 소니, 삼성, 엘지의 스마트TV들을 살펴보면, 세세한 기능에서부터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서비스까지 큰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어떤 서비스는 스마트TV를 인터넷의 영상콘텐츠를 TV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도구로만 구현했는가 하면, 어떤 서비스는 스마트TV를 보다 사용이 편리해진 가족형 PC로 개념화하기도 했다. 여기 더해 애플의 CEO인 스티브 잡스는 “인터넷과 TV가 통합되는 시장에 아직 강자는 없다”고 말하기까지 했는데, 이 말은 곧 스마트TV 시장을 통해 가장 큰 변화가 생길 분야가 콘텐츠일지, 플랫폼일지, 수상기일지 아직은 알 수 없다’는 의미로도 풀이할 수 있다.

 

방송 서비스는 일반적으로 ‘콘텐츠-플랫폼-수상기’의 경로를 거쳐 시청자에게 전달된다. 지상파 방송의 경우 플랫폼은 무선 주파수에 해당하며, 케이블TV의 경우 SO(System Operator)의 유선망, IPTV의 경우 인터넷 망사업자가 플랫폼의 역할을 한다. 방송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시청자가 방송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를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콘텐츠와 수상기 사이에 존재하는 플랫폼이 게이트 키퍼의 역할을 함으로써 기존의 무선방송을 제외하고는 방송사의 역할이 단순한 콘텐츠 공급자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는 현재 스마트TV 시장을 주도하는 애플, 구글, 삼성 등의 구상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IFA 2010을 통해 애플이 소개한 새로운 애플TV는 폭스뉴스, ABC의 방송을 다음 날부터 제공하도록 되어있고, 넷플릭스·유튜브와 같은 인터넷 콘텐츠를 제공한다. 또, 구글과 연합한 소니의 경우 TV 하나로 방송, 인터넷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구현했다. 한편, 삼성이 전시한 스마트TV는 직접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서 게임 등을 실행할 수 있는 형태이고, LG의 경우는 대쉬보드 형태의 UI를 제공함으로써 사용의 편리함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스마트TV의 사용자 입장에서는 기능이 다양해지고 사용이 편리해진 측면이 강하지만, 방송사의 입장에서는 VOD는 물론이고 인터넷 서비스와 어플리케이션까지도 한 플랫폼 내에서 경쟁해야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결국 방송사들이 스마트TV 시장에 대해 소극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를 내포하고 있는 법, 스마트TV라는 플랫폼에도 방송사가 한 단계 전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존재한다. 통신(Communication)의 특성을 잘만 활용한다면 말이다. 방송과 통신은 태생적으로 서로 다른 출발점을 갖고 있다. 방송은 Broadcasting이라는 단어가 말해주듯 ‘한 곳에서 불특정 다수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라는 의미이고, 통신은 Communication, 즉 ‘서로 의사소통하는 방식’을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 태생적 차이가 방송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작하게 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전사나 통신망이 제공하는 별도의 플랫폼 이외에 시청자가 스마트TV에서 방송사가 제공하는 채널서비스에 직접 접근하는 방식을 구현하거나 전화·문자메세지·ARS·홈페이지·SNS로 분산되었던 쌍방향적 소통창구를 스마트TV를 이용한 소통으로 집중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고전적인 편성방식 이외에 프로그램 인기도, 날짜, 이슈, 관심사 순으로 개인화된 편성표를 제공하여 TV를 사용자화(Customizing)하고, 기존의 시간흐름에 따른 전통적 광고 이외에 새로운 광고방식을 개발해서 광고매출 증대를 노려볼 수도 있다. 여기에 스마트TV를 통해 다시보기나 어플리케이션을 구매할 때 플랫폼을 거치지 않고 방송사에 직접 손쉽게 대금을 결제하는 방법을 구현하는 것도 유통마진을 줄이는 현명한 방식이 될 것이다.

 

국제적인 시장조사기관인 아이서플라이는 2014년에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스마트TV가 전체TV시장의 54%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아직 많은 방송사들은 스마트TV 시장을 소극적으로 지켜보고만 있다. 시장이 활성화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스마트TV가 아직은 초기단계이고 명확한 서비스 기준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폰이 몰고 온 국내 통신·가전시장의 격변에서 알 수 있듯이 빠른 접근성, 직관적인 사용법, 편리한 사용경험 등이 보장된다면 소비자들은 예상과 달리 급속도로 스마트TV를 선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은 스마트TV 시장에서 방송 콘텐츠가 단순한 하나의 서비스로만 존재하느냐, 아니면 스마트TV의 킬러 콘텐츠로 화려하게 변신하느냐를 결정할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