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말이 전도된’ 전파진흥기본계획

[분석] ‘본말이 전도된’ 전파진흥기본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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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5년간 중장기적으로 추진할 전파활용방향을 담은 ‘전파진흥기본계획’을 둘러싼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 2일 전파법 제8조에 따라 전파 이용 촉진과 전파방송 산업 진흥을 위해 전파진흥기본계획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번에 발표된 전파진흥기본계획이 경제성과 효율성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공공재인 전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공공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파진흥기본계획 확정 2주 전에 열린 공청회에서도 전파의 공익적 활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거듭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미래창조과학부

미래부는 전파의 효율적 사용을 강조한 전파진흥기본계획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생산 17조5,692억 원, 부가가치 4조9,780억 원, 고용 6,729명의 유발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미래부는 ‘새로운 정보통신기술(ICT) 도약과 국민행복을 위한 혁신‧소통의 전파 활용’이라는 핵심 정책 목표를 세우고, 이를 위해 △전파방송 R&D 선순환 네트워크 강화 △전파자원 공급‧관리 최적화 △수요자 중심 전파이용제도 구현이라는 3대 전략과 10대 주요과제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전파진흥기본계획 그 어디에서도 전파의 공공적‧공익적 활용을 고민한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오로지 경제적‧효율적 사용만이 강조된 본말이 전도된 계획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파는 공공재이기 때문에 아무리 효율적 활용을 강조하더라도 공공적‧공익적 활용이 우선돼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전파진흥기본계획 확정에 앞서 열린 공청회에서도 이 같은 지적은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유홍식 중앙대 교수는 미래부가 내놓은 전파진흥기본계획(안)을 보고 “아이러니하다”는 평을 내놓은 뒤 “전파는 희소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공공성을 언급해야 하는데 (미래부의 안에서는) 왜 자꾸 경제성‧효율성만을 언급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그는 “도시를 건설할 때도 산업적인 건물과 공원을 같이 만드는데 방송이 바로 그 공원 같은 역할을 한다. 방송은 주파수 없이 존재할 수 없는데 방송에 대한 언급 없이 전파의 통신 활용만 논의되고 있다”며 방송과 통신 활용에 있어서 미래부의 균형 잡힌 시각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서흥수 한국방송협회 실장도 “무조건 효율성만 강조하면 방송법과도 맞지 않는다”며 전파 활용에 있어 방송과 통신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 실장은 “방송법에 따라 지상파 방송은 책임을 부여받는다. 주파수 사용에 대한 공적 책임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지난 10년 동안 막대한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전환을 추진해왔는데 정부는 차세대 방송에 대한 기반조건 조차 만들어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파진흥기본계획에 차세대 방송을 위한 700MHz 대역 주파수 활용 계획이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전파진흥기본계획에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단 한 줄도 반영되지 않았다.

 

이제 군도 돈 내고 주파수 써야 하나?

더 큰 문제는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주파수의 이용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이용현황 및 적정 가치 연구, 유휴 주파수 반납 유인 방안 등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다시 말하자면 공공기관의 주파수 활용에도 이용 대가를 부과하겠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미래부는 “방송 주파수 사용료 도입 및 공공기관의 주파수 이용에 대가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현재 미래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의 방향을 가늠해본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리나라는 남북 대치 상황이라는 특수성으로 공공용 주파수가 전체 가용 주파수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미래부 측은 “공공용 주파수 이용현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며 한정된 주파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방송국 관계자는 “효율적 사용에 앞서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감안했을 때 어떻게 활용해야 더 공익적으로 국민들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진정한 효율적 활용이 무엇인지 먼저 고민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미래부는 지난해 4월부터 약 7개월 동안 정부 관계자 및 다양한 분야의 학계‧연구계 전문가 30여 명으로 구성된 연구반을 기반으로 전파진흥기본계획을 논의했으며, 공청회를 통해 각계의 의견수렴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에 내놓은 전파진흥기본계획은 여전히 통신에 편향적인 주파수 활용 계획만 담고 있었다. 공청회에서 학계 전문가들이 내놓은 의견은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 무늬뿐인 공청회, 공익 없는 전파 계획으로 ‘국민행복을 위한 혁신‧소통의 전파 활용’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미래부의 아이러니한 행보에 벌써부터 뜨거운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