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재송신, 해법은 없나

[문보경 칼럼] 지상파 재송신, 해법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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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TV의 지상파 재송신 문제를 둘러싼 움직임이 심상치않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이상하리만치 알 수 없는 조용함은 불안함을 가중시킨다. 동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떠오를 정도다. 지상파 재송신 문제는 저작권과 사업자 이익을 떠나 시청자의 시청권이 걸려있다는 점 때문에 쉬이 다룰 수 없는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극단으로 치달아서는 안된다.

하지만 이 같은 우려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먼저 지상파 측이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이에 따른 케이블TV 진영의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업계를 뒤흔들었던‘재송신 중단’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 겨우 진정된 국면이 다시 일촉 즉발의 상황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케이블TV에서는 지상파TV 방송광고를 볼 수 없게 될 뻔한 사건이 일어났다. 법원이 지상파 재송신은 지상파의 저작인접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판결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이후 방송통신위원회의 중재로 이 문제는 일단락된 듯 했고, 지상파재송신 전담반이 꾸려졌다. 전담반이 꾸려지는 데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더
욱 어려운 것은 운영상 문제였다. 지상파와 케이블 양측이 추천한 전문가와 함께 방송통신위원회 정책 담당자들로 구성된 전담반은 양측이 각각 자신들의 입장을 굽히지 않아 파행적으로 운영됐다. 급기야 한국방송협회 방송통신융합특별위원회(지상파 측)는 최근‘방통위 재송신 제도개선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의무재송신 확대 움직임에 반대를 표한 것이다. 성명서를 통해 지상파측은“지상파방송사의 권리를 침해하고 케이블TV(SO)의 불법적인 재송신을 합법화해주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의무재송신 확대는 위헌적”이라며“제도개선 시도를 즉각 철회하고 지상파방송사와 IPTV, 위성방송 간의 기존 재송신 계약과 현행 법에 따른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 행정 조취를 취하라”고 밝혔다. 법원이 지상파의 손을 들어줬음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채널 의무재송신 확대라는 제도를 통해 수신료 협상을 무력화시킨다는 판단 때문이다. 케이블의 요구대로 형사소송까지 취하했는데도 불구하고 수신료에 대해 논의가 되지 않는다면 더이상 협상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케이블 측은 바짝 긴장하는 모양새다. 지상파 방송사가 협상결렬을 선언한 후 케이블TV방송업계는 지상파 방송사와 전면전을 대비한 전략 수립에 들어갔다.케이블 업계 관계자는“결국 협상이 결렬되면 협상타결로 미뤄뒀던 지상파 재송신 중단을 다시 검토할 수밖에 없다”며“어떤 방식으로 중단하게 될 지는 재논의 중”이
라고 말했다. 방통위는 이르면 이번주까지 재송신전담반을 운영할 것으로 보인다. 이후 위원회에 의무재송신범위와 사업자간 분쟁에 대한 방통위의 조정기능을 담은 안을 보고할 예정이다. 안은 복수안이 될 가능성이 크며, 이를 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양측이 이렇게 강경하게 나오는 데에 각자 내세울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지상파는 자사의 콘텐츠를 케이블이 무단으로 재송신하면서 저작권을 크게 침해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위성방송과 IPTV는 수신료를 내고 있거나 협상 중인데 반해 유독 케이블만이 수신료를 내고 있지 않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케이블 측은 그동안
시청자가 지상파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수신환경을 조성한 데 대한 공로를 인정해 달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그동안 문제제기가 없었던 것은 암묵적 동의라고 덧붙이고 있다. 지난해 법원은 지상파의 논리에 손을 들어 주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저작권의 손을 들어줘야할지 시청권을 사실상 가능케 한 수신환경의 손을 들어줘야 할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도 그럴것이 양측 모두 합당한 근거가 있으며 양측모두 서로를 이용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상파는 케이블이 없었다면 수신환경 조성에 대한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인위적난시청에 대해서는 직접적 의무가 없는 관계로 수신환경 조성을 방치했다면 지금과 같은 시청률과 이에 따른 광고 수익은 요원한
것이 사실이다. 케이블도 가입자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안정적인 지상파 시청’을 내걸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를 통한 수익을 얻었다.

케이블TV의 지상파 재송신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해외에서도 같은 주장 같은 현실로 인해 이 같은 분쟁과 논의의 과정을 거쳤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나라에서건 지상파의 인위적·자연적 난시청을 해소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상 케이블TV의 역사는 지상파 방송 신호가 잘 닿지 않는 지역에서도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서 시작됐다. 해외에서는 어떤 범위까지 재송신을 허락할 것이냐가 이슈가 되어 왔다. 여기에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이라는 새로운 과제가 부과됐다. 각 국가별 차이는 있지만 큰줄기는비슷하다.
케이블을 통한 지상파 재송신의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곳은 미국이다. 1940년대 케이블은 지상파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며 출발했다. 이후 재송신이 어떤 사업자에게 지나치게 많은 이득을 주는 지와 시청자의 지상파 시청권을 두고 규제의 흐름이 계속 바뀌어 갔다. 1940년대에는 지상파의 보조적인 역할을 해주던 것이 1960년대에는 케
이블TV가 권역외 수신을 하기 시작하면서 지상파방송사의 광고 수익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FCC의 규제가 시작됐다. 케이블TV가 반드시 해당 지역 방송 채널을 송신토록 의무를 부과한 것이다. 1980년대에는 탈규제, 1990년대 접어들며 다시 케이블TV 규제가 강화됐다. 케이블의 재송신 여부가 지상파의 광고 수입을 좌우하고 있는데다 케이블의 독점적 불공정 행위에 대한 지적의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몇 년만에 쉽게 바뀌는 제도는 문제가 있지만, 현실이 바뀌면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우리나라도 지상파 재송신에 대해 여러차례 논의해왔고 그 와중에 의무송신 채널이라는 규정이 생겼다. 2004년 당시에는지상파와 케이블 모두 KBS1과 EBS만을 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지상파는 의무재송신 확대반대를, 케이블은 의무재송신 확대를 주장하고있다.

정부가 이 상황에 대해 제도를 만든다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시청자의 권리다. 이를 두고 양측이 얼마나 노력을 했으며, 양측이 상대방으로 인해 얼마나 이득을 얻고 있는지를 면밀히 따져보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분쟁이 일어날 경우에는 정부가 중재할 수 있도록 한 일본의 사례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