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조 22돌과 한국 언론의 현실

[기고] 언론노조 22돌과 한국 언론의 현실

582

전국언론노동조합 남한길 정책실장

 

해직 8명, 기소 61명, 중징계 180명…

전태일 열사가 몸에 불을 댕겨 처참한 노동현실을 고발하던 40년 전 이야기가 아니다. 군사독재정권 치하, 깊은 절망의 나락에서 수치와 분노를 희망과 행동의 언론노조 깃발로 세워낸 22년 전 이야기도 아니다. ‘국격’ 운운하며 G20 정상회의를 치룬 2010년 오늘, 대한민국의 언론 현실이다.

 

이명박 정부는 공정성이 생명인 보도전문채널 YTN에 대통령후보 특보를 임명하고 이에 반대하는 기자 6명을 해직하며 언론을 장악하기 위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공영방송 KBS에는 검찰, 경찰, 감사원, 국세청 등 공권력을 총동원해 사장을 불법적으로 해임한 후, 군사독재를 칭송했던 사이비 기자 출신들을 사장으로 앉히고 이에 저항하는 언론인들을 좌천, 유배시켰다. 또한 권력 감시의 역할에 충실했던 MBC 제작자들을 체포하고 구금하는 등, 언론인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까지 감행했다. 입바른 소리를 하는 뉴스 앵커와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는 물론이고, 오락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가수, 개그맨들까지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가차 없이 칼을 휘둘렀다. 가혹한 탄압에도 MBC가 굴복하지 않자 정권의 허수아비들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와 MBC 사장으로 투입해 지배구조를 장악한 뒤, 눈엣가시 같은 의 숨을 죽이기 위해, 노사가 협약한 ‘국장책임제’를 폐지하기 위한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소위 ‘잃어버린 10년’이 언론, 특히 방송의 탓이라 여긴 정부와 여당의 언론장악 시도는 언론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에 그치지 않고 입법과 행정을 넘나들며 전(全)방위로 진행되었다. 자신들과 한 몸통인 재벌자본과 조․중․동 족벌신문이 여론을 독점할 수 있도록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하고, 지상파 방송에 다름없는 세계초유의 종합편성채널을 허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언론법 개악’을 밀어붙였다. 그 과정에서 대리투표와 재투표를 자행하는 등 위법적으로 법안을 날치기 처리하였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방송통신위원회를 위시한 정부부처를 총동원해 종합편성채널에 온갖 특혜를 몰아주는데 골몰하고 있다. 또한 위헌적인 법률이 시행되는 불합리한 상황을 바로잡아 법치주의를 회복시켜야 할 헌법재판소는 두 차례에 걸쳐 스스로 정치적 사법기관임을 선언하는 판결을 내렸다.

 

숨 쉴 틈조차 없이 몰아친 언론탄압과 장악의 지난 3년, 우리 언론은 수치스럽게도 채찍에 맞설 용기를 잃고 달콤한 당근에 취해 굴종과 타락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권력의 주장과 논리를 한 점 비판 없이 실어 나르는 꼭두각시 언론인들의 분탕질이 계속되었고, 이들의 비겁과 나태에 지쳐 펜 끝은 더욱 무디어졌고 카메라는 진실에서 고개를 돌렸다. 스스로 자유와 독립을 지키지 못하는 언론에 대한 국민의 질타는 거셌지만, 이미 눈과 귀를 틀어막은 언론에게는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수치를 수치로 아는 참된 언론인들이 있었기에, 분노해야 할 일에 분노할 줄 아는 언론노동자들이 있었기에, 22년 전 언론독립과 자유를 상징하는 언론노조의 깃발이 세워질 수 있었다. 그리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국민의 눈이 되어 진실을 바라보는, 언론 본연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것이 언론노조의 역사였다. 그러하기에 언론탄압과 장악의 지난 3년은 언론노조에게는 투쟁의 3년이기도 했다. 언론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지키고, 부정한 권력과 부패한 자본이 언론을 억압하거나 이용하여 국민의 생각과 삶을 부당하게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한 투쟁의 3년이었다. 언론악법 저지를 위한 3차례의 언론노동자 총파업투쟁을 비롯해, 6명 해직기자들의 고난을 나누어지며 900여일이 되도록 공정방송쟁취의 깃발을 내리지 않은 YTN노조, 39일간의 파업투쟁으로 공영방송 사수 의지를 불태운 MBC노조, 정권홍보방송으로 전락한 KBS를 국민의 방송으로 되돌리기 위해 분연히 일어나 30일의 파업투쟁을 전개한 KBS새노조, 그리고 자본의 논리로 언론의 지역성, 공공성을 말살하고 오로지 사적이윤의 도구로 전락시키려는 세력에 맞선 언론노동자들의 헌신적인 투쟁이 펼쳐진 3년이었다.

 

그 결과가 해직 8명, 기소 61명, 중징계 180명이라는 깊은 상처다. 더 이상의 희생은 없어야 한다. 아니 더 이상의 희생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싸움은 멈출 수 없다. 누군가와 맞서는 싸움이 아니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언론의 공공성과 독립성’이라는 언론 본연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언론의 공공성과 독립성’은 정권에 따라 잣대가 바뀔 수 있는 추상적인 가치가 아니다. 날치기 처리된 법조차 보장하고 있는 경영과 편성(편집)의 분리, 그리고 이에 근거한 제작과 편성(편집)의 자율성 보장이라는 지극히 구체적인 가치다. ‘언론의 공공성과 독립성’은 파업의 현장, 투쟁의 현장에서 구호로만 존재하는 공허한 가치가 아니다. 보도와 취재, 프로그램 제작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위협받고 훼손될 수 있는, 그러하기에 내가 아니면 지킬 수가 없는 소중한 가치다. 선배와 동료들의 피를 먹고 자란 이 가치를 지켜내는 것, 언론노동자로서 당연한 의무이자 당당한 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