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 마케팅비 가이드라인 문제 없나

[강희종 칼럼] 통신사 마케팅비 가이드라인 문제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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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3일 방송통신위원회는 KT, SK텔레콤, LG텔레콤, SK브로드밴드 등 주요 통신사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번 마케팅비 가이드라인은 지난 3월 5일 방송통신위원회와 통신 업계 CEO 간담회에서 소모적인 마케팅비를 절감해 콘텐츠와 기술개발에 투자하기로 한 것에 따른 후속조치였다. 통신 3사 CEO들은 마케팅 비용을 서비스매출 대비 20%(올해는 22%) 수준으로 절감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3월 합의 이후 통신비 마케팅비 가이드라인의 적절성과 실효성에 대해 꾸준히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합의 후 두달이 지나도록 통신 3사는 적절한 마케팅비 가이드라인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더 이상 시기를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한 방통위는 지난 5월 13일 3월의 합의사항을 최대한 반영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 가이드라인에 대해 KT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등 마케팅비 가이드라인 발표 후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우선, 방통위의 이번 마케팅비 가이드라인은 2008년 폐지된 보조금 규제의 부활이라는데 문제점이 있다. 정부의 보조금 규제는 2003년 3월부터 2008년까지 3월까지 5년간 지속됐었다.
2000년대 초반 이동전화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사업자들은 보조금 지급을 통한 가입자 확대에 치중했다. 정부를 보조금을 통한 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2003년 보조금 지급을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이 규제는 일몰제로 3년 후 폐지 예정이었다. 하지만 3년 후 당시 정보통신부는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보조금 규제를 2년 더 연장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2008년 정부는 보조금 규제를 완전 철폐했다. 정부는 보조금 규제을 폐지할 경우 시장 과열을 우려해 의무 약정제도 도입했다.


보조금 규제 폐지 이후 2년이 지나면서 이동통신 시장은 일부의 우려대로 상당히 과열됐다. 이동통신 시장의 마케팅 비용은 2005년 3조2600억원에서 2009년 6조 1900억원으로 약 2조9300억원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이동통신 3사의 시장 점유율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동통신사들은 현상을 유지하는데 매년 조단위의 비용을 쓴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같은 마케팅 비용이 서비스 품질 개선이나 콘텐츠에 투자되길 원하고 있다. 특히, 작년말 국내 도입된 아이폰으로 국내 이동통신 시장이 타격을 받자 정부는 과도한 마케팅 비용을 그 원인중 하나로 지목했다. 마케팅 비용을 줄여 서비스와 콘텐츠에 투자했다면 아이폰의 습격에 이처럼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논리적인 오류가 있다. 우선은 마케팅비 가이드라인을 적용한다고 해서 과연 이동전화 보조금이 줄어들 것인가의 문제다. 통신사들의 마케팅 경쟁은 법으로 보조금을 규제할 당시에도 문제가 됐었다. 보조금으로 인해 통신사들은 수천억원의 과징금을 물기도 했으며 심지어 영업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조금 경쟁은 사라지지 않았다.


과거 보조금 규제와 달리 마케팅비 가이드라인은 법적인 근거가 없는 ‘행정지도’이다. 이를 어긴다 해도 규제할 만한 마땅한 방법이 없다. 법으로 금지됐을 때 과징금을 물면서까지 보조금 경쟁에 매몰됐던 통신사들이 가이드라인을 성실히 지킬지는 의문이다. 특히, 일부 사업자가 가이드라인에 대해 ‘특정 사업자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설사 마케팅비 가이드라인을 지킨다해도 정부 바람대로 통신사들이 늘어난 수익을 서비스 개선이나 콘텐츠에 투자할지도 장담할 수 없다. 통신 사업자들은 해마다 정해진 예산 내에서 네트워크와 콘텐츠에 투자한다. 통신사들의 투자 규모와 내역은 주식 시장에 바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업자들은 투자 계획을 세우는데 매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한, 주주들은 영업이익이 증가할 경우 이를 배당에 사용하길 원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마케팅 비용 절감으로 늘어난 이익을 배당잔치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견제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말처럼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마케팅비 가이드라인이 기업의 영업 자유권에 위배되는 것으로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회 창조한국당 이용경 의원은 “마케팅 활동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영업의 자유)인데 기본권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전제로 법률에 의해서만 제한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마케팅비 가이드라인의 내용 자체에 대해서도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가이드라인의 주요 내용은 통신 사업자들의 유무선을 분리해 각각 매출액 대비 22%를 넘지 않는 범위내에서 마케팅비를 지출하되, 마케팅비 총액 한도 내에서 1000억원까지는 유무선을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방통위는 유무선통합(FMC) 서비스에 대해서는 회계분리 기준 등 합리적인 배분 기준을 적용하고 회계 분리의 적정성 여부에 대해서도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통신 업계에서는 유무선 융복합 서비스에서의 유선과 무선의 회계 분리 기준을 정확히 적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가이드라인에서는 요금제를 통한 단말기 할인을 제외했다. KT는 ‘스마트스폰서’라는 요금제를 통해 단말기 할부금을 요금에서 할인해주고 있다. SK텔레콤, 통합LG텔레콤도 이같은 요금제를 도입할 경우 마케팅 과열 경쟁을 막아보겠다는 정부의 구상은 공염불로 그칠 가능성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