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구글의 서로 다른 TV 전략

[강희종 칼럼] 애플과 구글의 서로 다른 TV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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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애플 본사. 애플은 해마다 이맘때면 미디어 초청 행사를 열고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새로운 음악 관련 제품을 선보였다. 이날의 주인공은 예상했던 대로 아이팟 패밀리였다. 그런데 이날 행사 말미에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제품을 깜짝 공개했다. 2007년 출시했으나 전혀 재미를 보지 못한 ‘애플TV’의 새로운 버전이었다.

평소 스티브 잡스는 ‘TV’ 관련 비즈니스를 ’취미생활(hobby)’라고 부르곤 했다. 공전의 히트를 쳤던 아이팟이나 아이폰이 메인 비즈니스라면 TV는 그냥 취미삼아 가볍게 도전해보는 사업아이템 정도라는 뜻이다.

그러나 IT나 미디어 업계에서 애플의 애플TV를 그냥 가볍게 지나치지는 않고 있다. 대신 애플의 애플TV나 구글의 구글TV가 방송통신업계에 메가톤급 폭풍을 몰고 올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애플이 이번에는 ‘애플TV’를 선보였으나 후에는 좀 더 진보한 ’iTV’를 들고 나올 것이란 루머도 끊이지 않고 있다.

2007년 애플이 내놓은 애플TV는 실패작이나 다름없었다. 애플은 하드디스크가 달린 299달러의 셋톱박스를 출시해 소비자들이 콘텐츠를 다운로드해서 볼 수 있도록 했으나 미국 소비자들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지난 4년간 스티브 잡스는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하는 것을 느꼈나 보다. 지난 9월 1일 행사에서 스티브잡스는 그동안 얻은 몇 가지 ‘교훈’을 얘기했다.

“소비자들은 인터넷 TV 이상의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들은 원할 때마다 TV쇼와 할리우드 영화를 볼 수 있기를 원한다. 아마추어 시간(유튜브를 지칭)을 원하지 않는다. 프로페셔널 콘텐츠를 원한다. HD콘텐츠를 원하고 콘텐츠에 좀 더 낮은 가격을 지불하기를 원한다. 소비자들은 TV에 컴퓨터를 얹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컴퓨터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이것이 소비자를 이해하기 쉬운 방법이다. 사람들은 저장장치를 관리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컴퓨터와 동기화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지어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소비자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조용하고(silent), 차가우며(cool), 작은(small) 것이다.”

그러고 나서 스티브 잡스는 기존 모델보다 4분의1 크기로 확 줄인 2세대 애플TV를 소개했다. 가격도 99달러로 낮추었다. 하드디스크를 없앴기 때문에 가능했다. 애플TV는 99센트로 ABC와 폭스의 TV 시리즈를 스트리밍 방식으로 보도록 했다. 4.99달러로 영화를 스트리밍으로 볼 수 있는 서비스도 내놓았다.

애플TV를 선보인 지 며칠 후인 9월 7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가전전시회 ‘IFA 2010’에서 구글의 CEO 에릭 슈미트는 기조연설을 통해 구글TV 출시 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올해 가을 미국에서 구글TV를 출시하고 내년에는 전 세계로 서비스를 넓힌다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구글의 구글TV 전략은 애플의 그것과 상당히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구글TV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와 크롬 브라우저를 탑재해 TV를 통해 인터넷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구글TV는 TV 화면 상단에 검색창이 제공돼 이용자들이 검색과 인터넷 서핑뿐만 아니라 실시간으로 TV프로그램을 찾아 볼 수 있도록 했다. 칩셋 분야에서는 인텔과, TV 세트 분야에서는 소니와 제휴했다. 또, 입력장치 분야에서는 로지텍과 손잡았다. 구글이 그동안 공개한 구글TV의 모습은 키보드로 TV를 조작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상에서 보듯이 구글TV는 TV와 컴퓨터의 경계선상에 있다. 이 점은 스티브 잡스가 말한 “소비자들은 TV 위에 컴퓨터를 얹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부분과 대치된다. 짐작컨대 애플은 수년간 애플TV 사업을 통해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이제 막 TV시장에 발을 들여놓는 ‘옛 친구’ 에릭 슈미트에게 점잖게 충고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글은 여전히 IT 산업의 입장에서 구글TV를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누가 옳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애플TV와 구글TV의 출시를 앞두고 한국의 미디어와 TV 시장은 비상이 걸렸다. 지난 7일에는 삼성전자, LG전자 등 제조사와 KBS, EBS 등 방송사, KT, SK브로드밴드 등 통신사, 전자통신연구원(ETRI), 전자부품연구원(KETI) 등 연구소 등 산학연이 총 집결한 ‘스마트TV포럼’이 결성됐다. 앞으로 등장할 스마트TV 시장에서는 구글과 애플에 뒤지지 않겠다는 각오를 내비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토록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구글과 애플 역시 TV 비즈니스에서는 아직 ‘취미생활’ 내지는 ‘초짜’에 불과하다. 우리나라가 너무나 겁을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도 든다.

특히, 구글과 애플은 현지에서 방송사들의 협조를 얻는데 매우 애를 먹고 있다. 이 점은 구글TV와 애플TV의 시장 진입에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볼만한 콘텐츠이며 소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