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화 칼럼> DMB, 재난방송의 첨병 되어야

<이종화 칼럼> DMB, 재난방송의 첨병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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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난과 정보제공 체계

 최근 들어 가장 높은 8.8의 강진을 보인 칠레 지진을 비롯해, 30만 여명의 인명피해를 입힌 아이티 지진, 그리고 약 2년 전 8만7천여 명이 숨진 중국 쓰촨성 지진에 이르기까지 그 피해는 참혹하기 이를 데 없으며 예측하기도 어려워 인간의 나약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최근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해 있는 필리핀과 대만, 그리고 북한-중국-러시아 접경 지역에서도 잇달아 진도 6 이상의 지진이 발생함에 따라, 태평양판의 언저리라 할 수 있는 한반도가 과연 안전지대로 계속 남아있을 것인지 단언할 수도 없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대도시 위주로 인구와 시설이 집중되어 있어 유사시 피해규모가 다른 나라에 비해 커질 수 있고 시설 복구에도 그만큼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므로 재난에 취약한 특성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지진에 대비한 사회 제반 시스템을 점검하고 유사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정책수립과 시행이 빈틈없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세계적으로 재난이 잦아지면서 정부 및 관련 기관이 재난방재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고 대응에 나섰으며, 최근 소방방재청이 ‘재난 전조(前兆) 정보 관리제’를 시행키로 한 것은 그 좋은 예이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민간 차원까지 복합적이고 총체적으로 일사불란한 체계를 구축하고 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재난을 당하게 되면 사람들은 나 자신에게 닥칠 위험이 어떤 수준이며 어디로 피신해야 안전할지에 대해 온갖 촉각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신뢰할 수 있는 곳으로부터 재해 상황에 대한 정보를 받기 어렵다면 그야말로 칠흑 어둠속을 혼자 걷는 것이 된다. 그때 닥칠 수 있는 심리적 압박은 곧바로 패닉(panic) 현상으로 이어지게 되고, 급기야 최근 아이티와 칠레 지진 사태에서 보듯 약탈과 폭동 등 돌발 행동에까지 이르게 되면서, 개인의 위험은 물론 사회가 붕괴되는 위험까지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얼마나 정확히 신뢰할 수 있는 재난 관련 정보를 제공하느냐는 국가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정보전달 체계의 양 축을 이루고 있는 방송과 통신의 재난정보 제공의 중요성은 매우 높다 할 것이다.
 
 특히 지진과 같은 재난의 경우, 사람들이 건물에 있지 못하고 야외 안전지대로 피신하거나 해일이 염려되는 해안가에서는 야산으로 피해야 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정보 수신 체계가 취약할 수밖에 없다. 또한 건물은 물론 도로와 수많은 관로가 동시 다발적으로 피해를 당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통신 서비스가 어렵게 되고, 따라서 통신의 재난 정보 제공 기능은 그만큼 취약할 수밖에 없게 된다.
즉, 아무리 통신이 발달한다 해도 방송이 갖는 동보 기능과 방송의 신뢰도를 동시에 갖는 수준으로 재난 관련 정보를 제공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재난지역이 광역적이거나 재난 피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를 경우 더욱 그러할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광대역 유선망이 잘 구축되었다 해도 무선망을 비롯한 무선방송의 가치가 훨씬 중요하게 부각될 수밖에 없으며, 각국의 재난 재해 극복 시스템에서 이를 중요하게 다룰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재난은 개인에게 개별적으로 일어나기보다 집단적으로 일어나며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 위주로 관련 정보가 제공되어야 하므로, 이는 곧바로 방송이 담당해야할 영역이 된다.

 따라서 아날로그로부터 디지털로 전환되는데다 다양한 매체가 혼잡하게 사회 정보망을 분담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기존 방송시스템의 재난 기능을 제대로 포지셔닝해야 함과 동시에, 다양한 매체에 걸쳐 분산된 재난 기능의 통합 운영 및 관리 체계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며, 재난방송과 재난 정보체계가 제대로 작동 되는지 정기적 및 부정기적인 훈련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지상파 DMB의 역할과 문제

그렇게 볼 때, 방송은 기술적 신뢰도와 정보 제공의 신뢰도가 동시에 대단히 높은 편이기 때문에 통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상시 대처 능력을 발휘하기에 유리하다. 이에 국가는 전쟁 또는 재난시의 비상방송 기능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오고 있으며 매년 가상훈련을 통해 비상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그런 체계와 함께 법적으로는 방송법 제 75조에 재난방송 조항을 두어 종편 또는 보도 전문 방송사에게 재난방송을 실시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위반 시 동법 제 108조에 의거하여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되므로 해당 방송사는 발생 예방과 피해를 줄이기 위한 재난방송을 실시해야 하는 것이다.

 즉, 재난이 발생한 이 후 뿐만 아니라 예방을 위한 재난방송도 함께 해야 하는데, 이를테면 일기예보가 그 범주에 들 것이다. 그런데 최근 기상이변과 일기예보의 기술적 어려움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상당히 우려스러운 일이 가끔 일어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기상청으로부터 받은 정보를 단순히 전달하는 데 머물지 않고 예측 기능을 더욱 강화하여 그야말로 적극적으로 예보의 가치를 높일 필요도 있다.
 
 한편 방송법에서 유무선 방송을 구분해 재난방송 의무를 차별화하고 있지는 않지만, 케이블방송과 유선기반의 IPTV 방송은 재난방송 기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무선방송이라야 그 기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고 따라서 지상파방송과 위성방송의 종편 또는 보도전문 방송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할 것이다.
물론 두 방송시스템이 각기 특성이 있어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위성방송은 집중폭우나 폭설의 경우 해당지역에서 강우 감쇄로 인해 방송 자체가 수신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야외에서 안테나를 설치해야 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 그나마 위성 DMB는 휴대성 때문에 나은 편이지만 이 역시 강우 감쇄 문제와 지상의 재중계 기지국의 피해 등을 전제하면 충분치 않게 된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지상파방송이 재난방송으로서 가장 유효한 서비스가 될 것이며, 작년 말 기준으로 2500만 대 이상의 DMB 단말이 보급된 상황을 감안하면 재난방송으로서 지상파 DMB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다. 특히 DMB폰은 통신 기능과 방송 수신 기능을 동시에 갖고 있어 입체적인 재난정보 체계 구축을 위한 터미널로서의 가치가 대단히 높다 할 것이다.

그런데 작년 임진강 수해 사태 이후 하반기 국회 국정감사에서 재난경보 시스템 문제가 도마에 올랐으며, 지하철 331km 구간에서 휴대폰을 통한 재난문자방송도 제대로 수신되지 않아 무방비 상태였음이 지적되었고, DMB 사업자들도 예산부족으로 중계기 설치에 어려워 우려된다는 진단도 있었다.
또한 작년에 실시된 DMB 재난방송 수신 실험에서 실험대상의 DMB 단말기 37개 기종 중 17개 기종이 채널검색에 문제가 있는 등 오작동하면서 호환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 DMB단말기의 절반 가랑이 재난방송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물론 그 이후 유관기관 및 제조업체가 ‘재난정보포럼’을 설립하고 재난경보 수신기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후속 조치에 나서기는 했지만, 방송에 종사하고 있는 입장에서 볼 때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DMB 단말기의 오동작 문제는 당시 DMB 단말기의 인증을 맡은 기관의 입장이야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DMB폰을 비롯한 DMB 단말기의 재난방송 수신 기능을 재난방송 주관사가 주도적으로 인증할 수 없는 현재의 인증체계 문제와 DMB 터미널 제조사의 인식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빚어진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최근 방송장비 인증시스템 구축을 놓고 방송의 전문성을 담보할 수 없는 기관이 인증사업을 주관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책임 없는 기관이 단순히 과제 수행의 수준이나 비즈니스 차원에서 다룰 문제가 아닌 것이며, 방송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용해야 할 책임이 있는 당사자가 구체적인 의지를 갖고 담당해야 할 사안인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방송법 내지 이하 후속 법률에서 지상파 DMB가 재난방송으로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도록 관련 조항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재난 주관방송사인 KBS는 난시청해소 사업에 못지않게 중요한 재난방송의 역할을 강화함으로써 수신료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재난방송 기능상, 지상파 DMB에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중 가장 난제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정보 수신을 위한 배터리 문제라 할 수 있다. DMB 신호를 수신하는데 전력이 소모되면서 DMB폰의 통화 대기 및 통화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으며, 추가 배터리를 이용하거나 충전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면, 오로지 그 문제로 인해 DMB 재난방송 수신 역시 한계에 부닥치게 된다.
따라서 배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모색되고 시행되어야 DMB의 재난방송 기능이 극대화될 수 있다. 이를테면 전력 소모를 최소화하는 기술 개발도 필요하겠지만, 각 가정에 비상용 배터리 충전기 비치나 휴대폰에 장착해 쓸 수 있는 비상용 건전지 확보를 권장하고 제도화하는 방안도 필요할 것이다.

또한 지상파 DMB 시스템과 이동통신 시스템에 기반을 둔 입체적인 재난방송 기능 및 체계 구축 사례를 재난 위험 국가에 적용할 수 있도록 기술 외교적인 차원의 노력도 필요할 것으로 보이며, 그런 노력은 결국 DMB 및 관련 통신시스템의 해외 수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2500만대나 넘게 보급된 지상파 DMB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무료’ 보편적 서비스라는 멍에를 멘 채 사업자에게 수입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천덕꾸러기일망정, 국민의 인명과 재산 피해를 줄이는 재난방송의 첨병으로서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면, 세계 최초로 지상파 DMB를 개발하고 시스템을 구축 운용하고 있는 방송기술인의 자긍심을 조금이라도 채워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종화, KBS 방송기술연구소,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