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지난해 세계 TV 시장이 사상 처음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등 전반적인 TV 수요가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엄급 제품인 초고선명 TV(Ultra High Definition Television, 이하 UHDTV)의 판매는 호조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지난달 중순부터 전국 주요 백화점과 디지털 프라자를 통해 예약판매를 시작한 85인치 UHDTV 85S9의 반응이 애초 예상보다 좋아 삼성전자 측에서 추가 공급을 검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이 제품은 삼성전자가 7년 연속 세계 TV 시장 1위에 오른 것을 기념해 77대만 한정으로 내놓은 것으로 판매가가 4천만 원에 달해 판매가 어려울 것이란 우려섞인 시각도 적지 않았다.
HDTV 이후 가장 유력한 차세대 방송 주자로 여겨지고 있는 UHDTV는 보통 Full HDTV(1920×1080) 해상도의 4배(3840×2160)인 4K와 8배인 8K(7680×4320)로 분류된다. 일반 시청자 입장에서는 4배, 8배 등 단순한 수치만으로는 화질을 실감하기 어렵겠지만 일반적으로 극장에서 보는 영화보다 뛰어난 화질과 음질을 제공하는 ‘고품질 방송 서비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13’에서도 단연 강렬한 인상을 남긴 차세대 기술은 UHDTV였다. 삼성전자는 110인치 UHDTV를 선보였고, LG전자도 84인치 크기의 UHDTV를 소개했으며, 소니 역시 56인치의 UHDTV를 내놓았다. 도시바나 파나소닉도 예외는 아니었다. 거의 모든 TV 제조업체에서 UHDTV를 가장 비중 있게 다룬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제조업체가 차세대 기술을 선보인 것과 실제 사용자들이 사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UHDTV의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UHDTV가 물론 진일보한 기술임에는 틀림없지만 최소 5배에서 최대 10배까지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UHDTV를 구입할 사용자가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UHDTV로 감상할 만한 콘텐츠가 아직 많지 않다는 것도 전문가들이 UHDTV의 상용화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본 이유 중 하나다. 현재 지상파 방송사를 중심으로 시험방송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누구나 즐길만한 UHDTV급 콘텐츠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실제 사용자가 해상도를 느낄 수 있는 거리는 한정적이기 때문에 HDTV와 UHDTV의 차이를 크게 체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예상에도 불구하고 UHDTV의 초기 판매 속도는 전문가는 물론이고 제조업체의 기대치도 훨씬 뛰어넘고 있다.
이에 관련 업계에서는 UHDTV가 3DTV의 뒤를 밟게 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영화 아바타 이후 전 세계 TV 시장을 지배하던 주제는 3DTV였다. 하지만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3DTV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온통 UHDTV 이야기뿐이다. 이는 곧 UHDTV 역시 차세대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비용과 부족한 콘텐츠, 뚜렷한 차별화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면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련 학계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현재 우리나라가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주도권을 점하고 있는 만큼 차세대 방송 시장 역시 선도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선 UHDTV 분야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제조업체나 방송사의 노력뿐만 아니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가 바로 700MHz 주파수 정책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아날로그 TV 종료 이후 지상파 방송사에 배정됐던 700MHz 주파수 대역을 회수해 통신 등 타용도로 배정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렇게 되면 디지털 전환 이후 난시청 문제는 물론이고 UHDTV와 같은 차세대 방송 전환을 위한 주파수가 없어져 지상파 방송의 차세대 방송 전환도 어렵게 된다. 콘텐츠 경쟁력을 지닌 지상파 방송사의 UHDTV 기술 개발이 우선되지 않는다면 UHDTV 시장 선점은 생각할 수도 없다. 이에 관련 업계에서는 주파수 정책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만큼 새로 취임한 박근혜 정부가 어떤 해결을 내놓을지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