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백선하) 강대갑 KBS 기술연구소 부장이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방송 기술위원회(TC) 지상파방송 프로젝트 그룹(PG802) 의장직을 사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TTA 방송 기술위원회는 방송 및 방송통신 융합 관련 분야의 기술 표준 및 국내외 표준화를 추진하는 곳으로 모바일방송, 지상파방송, 케이블방송, 양방향방송, 위성방송, 실감미디어방송 등의 프로젝트 그룹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 하나인 PG802는 주로 △지상파방송 기술 분야 표준화 △지상파방송 기술 분야 표준적합 및 상호운용, 시험 표준화 △지상파방송 기술 분야 국제 표준화 협력 △지상파방송 기술 분야 표준 유지보수 등의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지난해 TTA 표준총회에서 ‘지상파 UHD TV 방송 송수신 정합(이하 지상파 UHD 표준)’이 세 차례나 부결된 데 따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지상파 UHD 표준은 지난해 7월 2일 표준 채택이 한 차례 부결된 데 이어 10월 13에는 잠정표준으로 채택된 바 있다. 잠정표준은 표준을 조속히 제정할 필요가 있으나 기술 발전 추세 확인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 일시적으로 적용되는 표준으로 제정 후 1년 이내에 정식 표준으로 채택할 것인지 재심의 받아야 하는 표준이다. 사실상 부결과 다름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17일 열린 총회에서도 안건으로 올라간 잠정표준 4건 가운데 지상파 UHD 표준만 유일하게 부결됐다.
TTA 총회는 아직까지 지상파 UHD 방송이 도입된 국가가 없기 때문에 기술 발전 추세를 고려해 부결시켰다고 설명했지만 일반적인 산업 표준의 경우 기술적 결함이 없을 때 통과되는 게 관례로 지상파 UHD 표준처럼 기술적 문제가 없음에도 부결되는 경우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 때문에 700MHz 주파수 확보를 위한 통신사들의 꼼수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TTA 총회 투표권 총 516표 중 절반에 가까운 207표를 통신사(KT 100표‧SK텔레콤 77표‧LG유플러스 30표)가 가지고 있고 여기에 계열사의 표까지 합한다면 TTA 총회의 결정권을 통신사가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강 부장이 PG802 의장직을 사임한 것도 TTA의 이러한 구조적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이번 사임은) 통신사의 이익과 상충되는 대부분의 안건들이 부결되는 구조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지상파 방송사들의 연합체인 한국방송협회도 TTA의 기술 표준화 채택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방송협회는 ‘지상파 UHD 기술 표준을 부결시킨 통신재벌, 시청자 주권의 후퇴를 우려한다’는 제목의 결의문을 통해 “통신재벌 3사는 총회에 이르기까지 분과위원회, 기술위원회, 운영위원회 등 세 차례 하부 회의에서 단 한 번도 반대의사를 표명하지 않다가 최종 총회에서 갑자기 반대했다”며 “우리나라 방송 기술 표준화 채택 정책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TTA는 기업 매출 규모에 따라 투표권을 부여하여 통신재벌들이 최종 표준안의 채택이나 탈락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도록 특권을 줬고, 이에 통신재벌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기술이 표준화되는 것을 의도적으로 막는 사태를 방조했다”며 “TTA가 방송과 통신의 표준화 논의 구조를 분리하지 않는다면 TTA 탈퇴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강 부장의 사임이 TTA 논의 구조 변경의 초석이 될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도 내놓고 있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지상파 방송사와 관계자들의 잇따른 TTA 탈퇴를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