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총괄부처 필요한가

IT총괄부처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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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종 / 디지털타임스 정보미디어부 기자

 지난 4월 12일부터 15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서 세계 최대 방송장비전시회인 NAB가 열렸다. 우리나라는 매년 5~6개 업체가 NAB에 참여하다가 작년에는 12개 업체가 참석했고 올해에는 참가 업체가 28개로 크게 증가했다. 방송장비 국산화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커졌다는 증거다.

 하지만 내막을 알고 보면 씁쓸함이 남는다. 1년만에 NAB 출품 업체가 급증한 데에는 방송통신위원회와 지식경제부의 밥그릇 챙기기가 한몫했기 때문이다. 방송장비 관련 업계에 따르면 당초 장비 업체들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로부터 지원을 받아 독립부스로 참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가 전파진흥협회를 통해 한국관을 따로 마련할 예정이니 코트라는 개입하지 말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코트라의 지원을 받아 NAB에 참석하려 했던 기업들은 전파진흥협회로부터 소액 지원만 받고 독립 부스를 마련해야 했다. 전파진흥협회는 12개 업체가 참여했다.

 우스운 일은 현지에서도 있었다. NAB 전시회에 참여했던 업계 관계자는 “방통위 송도균 상임위원이 업계 오찬 간담회를 개최한 그날 저녁 지식경제부 관계자들이 또 업계 간담회를 열었다”며 “현지에서 생색내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고 전했다.

 공교롭게 지난 13일 김형오 국회의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IT총괄부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보통신기술(ICT) 진흥 정책 및 사업 추진을 일원화하고 미래 신성장 동력인 정보통신?콘텐츠?기술(ICCT) 관련 업무를 총괄할 통합부처를 신설하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과 정부에서는 IT총괄부처에 대한 논의가 공론화되고 있다. 이에 대한 비판론도 있다.

 대체적인 업계 분위기는 IT총괄부처의 모양새가 어떻게 됐든, 부처 이기주의나 밥그릇싸움으로 기업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중복 투자나 중복 규제로 제대로 될 것도 안 된다는 것이다. 앞서 예를 들었던 방송장비 선진화사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방송장비 업계 관계자는 “한 곳이라도 제대로 지원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통신 업계 간담회를 하고 나니 지식경제부가 똑같은 내용의 간담회를 개최한 경우도 대표적인 밥그릇 싸움으로 통한다. 기업을 챙겨야할 CEO들이 이곳 저곳 정부부처에 불려 다니느라 제대로 일을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형오 의장의 IT 총괄부처 논의는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마침 국내 IT 산업 경쟁력이 하락하는 지표들도 최근 잇따라 발표되기도 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정통부 해체를 잘못된 정부조직개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IT총괄부처가 당장 현실화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 논의할 것을 주문했지만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다. 정부조직개편은 정부의 국정 운영 및 정치 철학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의 역할이지 입법부가 간여할 부분은 많지 않다. 또, IT 총괄부처의 설립은 4~5개의 부처가 연관돼 있어 국가 지도자의 강력한 리더십 없이는 추진이 불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김형오 의장이 화두를 던졌지만 실제 IT 총괄부처 설립은 차기 정부에서나 가능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나온다.

 다른 한편에서는 IT총괄부처가 과연 필요한가에 대한 비판론도 제기되고 있다. 김형오 의장은 “IT 총괄부처가 과거 정보통신부로의 부활은 아니다”고 말했지만 IT총괄부처는 결국 ‘정통부+а’의 모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서 한 정보통신 전문가는 “정통부가 해체된 것은 더 이상 정통부가 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라며 “국내 IT 경쟁력이 떨어진 것은 정통부 해체와 무관하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정통부를 해체하고 그 기능을 지식경제부, 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행정안전부로 나눈 것은 IT가 우리 사회 및 산업 곳곳에 파고 들고 있는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이른바 IT와 타 산업의 융합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IT진흥부처인 정보통신부가 더 이상 독립 부처로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굳이 과거 정통부와 같은 조직을 만들어 과거로 회귀해야 할 필요성이 어느 정도인지는 곰곰이 살펴볼 일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 정부조직개편에 관여했던 서울대 행정대학원 김동욱 교수는 “정보통신, 콘텐츠, 기술의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는 큰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이를 위해 부처를 하나로 통합해야 하는가는 또 다른 얘기”라며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정보통신 전문가는 “IT총괄부처를 둘 경우 기존 부처와 또 다른 갈등이 유발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IT총괄부처 설립이 능사는 아니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