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백선하)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2014년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권회의가 그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
ITU 전권회의는 국제연합(UN)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기구인 ITU의 최고위급 의사 결정 회의로 국제 주파수 분배, 정보통신 국제표준, 사이버 보안, ICT를 통한 인류 발전 등 글로벌 ICT 이슈를 논의하기 위해 4년마다 개최된다. 1865년 첫 회의가 개최됐으며 아시아에서 열리는 것은 일본(1994년)에 이어 두 번째다.
2014 ITU 전권회의는 지난 10월 20일 오전 11시 부산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하마뚠 뚜레 ITU 사무총장,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서병수 부산시장 등 국내외 인사와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전 세계 170여 개국 3천여 명의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개회식을 시작으로 총 3주간의 공식 일정에 돌입했다.
개회식 이후 진행된 1차 본회의에선 민원기 의장 예정자를 전권회의 의장으로 공식 추대하고 최양희 미래부 장관의 정책연설을 시작으로 각국 수석대표의 정책연설이 10월 23일까지 이어졌다.
또 이번 전권회의에서는 ITU 수장인 차기 사무총장을 포함해 65개 고위직 및 이사국도 선출했다.
먼저 ITU 차기 사무총장으로 중국의 자오허우린(趙厚麟·Zhao Houlin, 64) 현 사무차장이 당선됐다. 자오허우린(이하 자오) 당선자의 임기는 내년 1월부터 4년간이고, ITU 운영 및 의사결정 등의 과정을 총괄하게 된다.
자오 사무총장 당선자는 1950년 중국 장쑤성에서 태어나 중국 난징 우정통신대학교를 졸업한 뒤 영국 에섹스대학에서 자동차와 무선 통신이 결합된 차량 무선 인터넷 서비스인 텔레매틱스 분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자오 당선자는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중국 우편 및 전화통신부 소속 설계국에서 엔지니어로 활발히 활동하며 중국의 권위 있는 기술 관련 잡지에 상당수의 기도문을 실어 지난 1985년에는 과학 기술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우정통신부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자오 당선자가 ITU 초급 엔지니어 및 자문관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86년부터다. 이후 다양한 직책을 거친 자오 당선자는 ITU 활동을 시작한 지 20년 만인 지난 2006년 11월 사무차장에 당선됐고 8년 간 차장직을 맡아올 정도로 정보통신 분야의 전문가로 통한다.
ITU 역대 사무총장 중 중국 후보가 선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자오 사무차장의 당선으로 중국이 세계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실세로 자리매김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화웨이와 샤오미 등 중국의 정보통신 업체들이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고, 정보통신 선진국들과의 기술력 차이도 점점 좁혀지고 있어 중국이 미국과 함께 ICT 분야에 확고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전망은 어느 정도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위기다.
이재섭 카이스트 IT융합연구소 연구위원도 ITU 고위직 중 하나인 표준화총국장에 당선됐다. 이 연구위원은 10월 24일 진행된 표준화총국장 선거에서 총 169표 가운데 과반 이상인 87표를 얻어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ITU 고위직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이로써 ITU 150년 역사상 처음으로 투표로 선출되는 ITU 5대 고위직에 두 명의 아시아인이 진출하는 기록이 수립됐다.
이 표준화총국장 당선자는 오는 2015년 1월 1일부터 2018년 12월 31까지 4년간 ITU 표준화 총국장직을 수행하고, 본인이 원하면 1차에 한해 연임을 할 수 있어 최장 8년간 표준화 총국장직을 수행할 수 있다.
이 당선자는 건국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1986년 KT 연구개발본부에서 일하며 ITU에 첫 발을 들여놨다. 이후 ITU 표준화총국 미래네트워크(SG13) 분야 에디터, 통신망 구조(SG13 WP1) 의장, 차세대 네트워크 포커스그룹 의장, SG13 부의장을 거쳐 2009년부터는 SG13 의장으로 활동하며 글로벌 표준 정책 결정에 크게 기여해왔다.
ITU 표준화총국장은 ICT 글로벌 표준화 작업을 총괄하는 직책으로 ITU 표준화 부문(ITU-T)의 업무를 총괄‧조정하고 차세대 정보통신, 인터넷 정책 등 ICT 글로벌 표준에 대한 실질적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관련 업계에서는 국내 ICT 기술과 산업이 세계 표준을 주도하고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당선자는 “전 세계적으로 유세 활동을 하며 한국 ICT 인지도와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치가 상당히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는 한국만의 ICT가 아니라 국제사회와 글로벌 어젠다를 함께 만들어가는, 세계 속의 한국 ICT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앞으로 4년간 표준화총국 업무의 가치와 효율성을 높이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 당선자의 소식에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이 연구위원의 당선으로 마침내 국제사회에 공헌할 기회를 갖게 됐다”며 “지금까지 ICT 분야에서 축적한 경험을 다른 나라와 공유함으로써 ITU와 글로벌 ICT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의지를 표했다.
또 우리나라는 ITU 이사국 선거에서 7회 연속 이사국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은 10월 27일 ITU 전권회의 본회의장에서 열린 ITU 이사국 선거에서 유효표 167표 중 총 140표를 획득해 압도적 지지로 13개 이사국에 당선됐다.
ITU 이사국은 아시아·태평양 13개국을 비롯해 미주, 아프리카, 유럽, 동구(러시아·동유럽·중앙아시아) 등 총 48개국으로 구성된다. ITU 이사국 임기는 4년이다.
우리나라는 1989년 처음 ITU 이사국에 진출한 이후 연속 6회 선출돼 지난 20년 동안 ITU 운영과 전략계획 수립, 주요 정책 결정에 참여해왔다.
특히 ITU 전권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은 이사회에서 전체적인 논의를 통해 실행계획을 세우기 때문에 ITU 이사국 선출은 우리나라가 세계 ICT 정책을 주도하기 위한 중요한 기반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ITU 전권회의 준비기획단 이상학 부단장은 “150년 전통의 국제연합(UN) 산하 ICT 분야 정부 간 국제기구인 ITU에 이사국 7회 연속 진출은 우리나라가 ITU ICT 개발지수(IDI) 3년 연속 1위, UN 전자정부 2년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 글로벌 ICT 강국임을 ITU 회원국들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라며 우리나라가 ICT 경쟁력 확보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이번 ITU 전권회의에서는 국내 벤처기업이 세계 최초로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구현한 지능형 물품보관함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현재 각국 대표단들이 이용 중인 1500개의 스마트박스는 보관함 문에 부착된 디지털 잠금 장치에 자체 개발한 첨단 저전력 무선 통신 모듈을 탑재해 스마트폰과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직접 보관함을 배정하고 비밀번호를 설정하는 등 실생활에서 IoT를 직접 체험할 수 있어 많은 대표단들이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다.
2011년 초부터 제품을 개발해온 나예룡 스마트박스 대표는 “스마트박스는 기존의 물품 보관 및 전달 시스템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기존의 수많은 수동식 보관함들이 손쉽게 첨단 지능형 보관함으로 전환돼 마트, 지하철, 놀이시설 등의 물품 보관함은 물론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아파트, 기숙사 등의 물품 전달함(무인 택배함) 등에도 빠르게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권회의가 열리는 부산에서는 전권회의 외에 국내 최대 ICT 전시회인 ‘월드 IT쇼’와 ‘해외바이어 초청 수출 상담회’가 10월 20일부터 23일까지 열렸고, 미래 이동통신(5G) 현황과 주요 이슈를 논의하는 ‘5G Global Summit’이 10월 20일부터 21일까지, ‘빅데이터 월드 컨벤션’이 10월 22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됐다. 뿐만 아니라 ‘글로벌 ICT 프리미엄 포럼’이 10월 27일과 28일 양일간 열렸으며, ‘클라우드 엑스포’가 10월 27일부터 29일까지, ‘헬스 IT융합 전시회’가 10월 27일부터 29일까지 열려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제 ITU 전권회의는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10월 20일부터 현재까지 진행된 ITU 전권회의는 에볼라 바이러스 등 준비과정에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ICT 인프라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행사기간 중 우리나라를 찾은 전 세계 ICT 대표단에게 IoT, IoE, 홀로그램 등 국내 ICT 기술과 서비스를 홍보하는 장이 돼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