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미국 이동통신 사업자 AT&T가 미디어‧엔터테인먼트 대표 기업인 타임워너를 인수하기로 하면서 전 세계 방송 통신 업계에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AT&T는 10월 22일(현지시간) 타임워너를 주당 107.50 달러, 총 854억 달러(약 97조4,414억 원)에 인수키로 양사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AT&T는 타임워너의 21일 종가인 89.48 달러 보다 높게 책정한 금액으로 인수 계획을 밝혔는데 주요 외신은 AT&T가 타임워너의 콘텐츠를 높이 평가해 프리미엄을 붙였다며 예상보다 높은 인수 금액이 추후 승인 과정에서 문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내 2위 이동통신 사업자이자 3위 케이블 공급업체인 AT&T는 워너브라더스, 뉴스 전문 방송 CNN 등을 보유하면서 매출액 기준으로 디즈니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종합 엔터테인먼트인 타임워너를 인수함으로써 플랫폼과 콘텐츠를 동시에 보유한 거대 미디어 그룹으로 재탄생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다양한 플랫폼을 통한 콘텐츠 유통으로 소비자들에게 혁신적인 미디어 사용 경험을 선사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내 전문가는 “국내외를 막론하게 플랫폼과 콘텐츠 또는 플랫폼과 플랫폼 기업 간 합병 시도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플랫폼이 다양화되면서 질 좋은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고, 그에 따라 가격이 증가하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며 “콘텐츠 기업과 합병해 직접 콘텐츠 제작에 나서던가, 아니면 또 다른 플랫폼 기업과 연합해 콘텐츠 사업자와의 협상력에서 우위를 점하던가 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T&T의 경우 SK텔레콤과 마찬가지로 이동통신 산업 자체가 이미 포화 상태이기 때문에 콘텐츠를 통해 사업 가능 분야를 더 확장시키려는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인수합병에 대한 미국 내 반응은 엇갈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넷플릭스나 훌루 등 기존 OTT 사업자뿐 아니라 구글이나 애플 등 IT 기업들도 비디오 스트리밍 경쟁에 뛰어들면서 낮은 가격에 알찬 채널로 구성된 스키니 번들(skinny bundles) 상품을 내놓는 상황에서 AT&T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콘텐츠 제작 능력을 지닌 타임워너와의 M&A밖에 없었다며 이번 M&A는 AT&T와 타임워너 모두에게 윈-윈이 되는 거래라고 분석했다.
반면 AP통신은 AT&T가 타임워너의 콘텐츠를 보는 시청자들의 정보를 자세히 분석해 맞춤형 광고를 제공하고, 맞춤형 광고로 프로그램 제작비까지 낮추겠다고 했는데 이미 대다수 광고가 소비자 분석을 통해 제공되고 있고, 소비자들 역시 AT&T의 계획을 신뢰하지 않는다며 정치권의 의견을 빌려 이번 M&A가 반독점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잭도리서치의 잰 도슨 역시 AT&T가 M&A 이후 타임워너 시청자들의 시청권에 불이익을 주거나 혜택을 제한할 수 있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몇몇 IT 전문 매체들도 AT&T와 타임워너의 M&A 성공 가능성에 의문을 표하며 대형 미디어 기업들이 긍정적인 효과를 내놓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정치권의 반응은 더 차갑다.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캠프 대변인인 브라이언 팰런은 “규제당국은 양사의 M&A 협상을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고, 클린턴 후보의 부통령 러닝메이트인 팀 케인 상원의원 역시 “이번 M&A에 많은 우려와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도 “이런 협상은 민주주의를 파괴한다”며 “대통령에 당선되면 합의를 차기 조처하겠다”고 말했다. 이들 후보뿐 아니라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다수 의원들 역시 이번 M&A가 반독점 문제를 일으킬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대해 한 학계 전문가는 “최근 미국에서도 대기업간 M&A에 대한 연구가 늘어나고 있고, FCC에서도 ‘미디어 시장의 여론 다양성 제한’ 등과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어 이번 승인 여부를 쉽게 확정지을 수 없다”며 “(승인 여부가 나올 때까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많은 논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T&T와 타임워너 M&A에 대한 승인 여부는 국내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M&A 무산 이후로 한동안 잠잠했던 국내 방송 통신 시장도 이번 결과에 따라 좌지우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M&A 무산 이후 M&A 움직임이 뜸해지긴 했는데 최근 LG유플러스도 M&A 추진 의사를 밝혔고, 딜라이브도 계속 재매각을 추진하고 있어 이번 M&A 승인 여부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그동안 시장과 효율성만 강조해 수많은 M&A를 승인한 결과 잠재적 진입자가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반 자체를 무력화시켰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어 AT&T와 타임워너의 M&A 여부가 국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