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백선하 전숙희 기자] 방송 서비스와 통신 서비스를 싼값에 묶어 파는 결합상품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결합상품을 둘러싼 불공정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국회에서 다뤄지는가 하면 결합상품을 출시할 때 미래창조과학부의 심사를 받아 인가하도록 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방송통신위원회 역시 올해 중으로 결합상품에 대한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기로 한 가운데 학계에서도 결합상품에 대한 새로운 규제 장치의 필요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7월 23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방송학회 주최로 열린 ‘미디어 콘텐츠 가치 정상화 방안 세미나’에 참석한 정준희 중앙대 교수는 “통신 사업자가 자신의 통신 상품의 방어 및 추가 이익 획득을 위해 인터넷TV(IPTV)의 가격을 지나치게 낮추어 책정하고 있어 콘텐츠 제공자에게 돌아가야 할 수익이 정당하게 책정되지 못하고 있다”며 결합상품의 구조적 문제를 제어할 수 있는 새로운 규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결합상품은 통신과 집 전화, 초고속 인터넷, IPTV, 인터넷 전화 등 여러 가지 상품을 묶어서 각각의 서비스를 따로 가입할 때보다 싸게 판매하는 상품으로 가입자 유치 효과가 높아 통신 사업자는 물론이고 케이블 사업자들까지 결합상품으로 가입자를 모으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결합상품을 통해 방송은 공짜라는 인식이 사회 깊숙이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결합상품에서 방송 서비스는 인터넷 또는 통신 가입자 유치를 위한 미끼 상품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남표 MBC 전문연구위원은 “세미나에 오기 전에 SK텔레콤 홈페이지에서 요금제를 뽑아보니 인터넷을 3년 약정을 할 경우 월 38,000원, 가족 3~4명을 묶으면 인터넷, 집 전화, IPTV 다 합쳐서 월 25,000원이었다”며 “이 과정에서 방송 서비스의 값어치는 사라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처럼 방송 콘텐츠를 별도의 지불을 요하지 않는 일종의 ‘무료’ 서비스로 인식하는 태도와 여타 다른 상품에 부가된 일종의 미끼로 취급하는 산업적 태도가 콘텐츠 생산 구조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는 “케이블과 IPTV 등 유료 매체의 경쟁이 콘텐츠의 차별화를 바탕으로 하기보다는 시장 내 가격 경쟁에만 집중되다 보니 유료 매체의 저가화와 결합상품을 통한 과도한 할인 경쟁이 발생하고 결국 콘텐츠 가치에 대한 수신료 배분액은 매우 낮은 수준에 정체돼 있다”며 이 같은 구조는 국내 방송 산업에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시훈 계명대 교수 역시 “우리 사회가 방송 영역만이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제 가치를 지급하지 않는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며 “콘텐츠 가치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공영방송이나 유료방송이나 수신료를 주재원으로 하는 재원구조의 정상화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정 교수는 결합상품으로 인한 콘텐츠 저가화 추세와 콘텐츠 생산을 위한 선순환 구조 붕괴 등 지금의 비정상적인 방송 사업 구조가 모두 잘못된 방송 정책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방송 시장의 성장이라는 목표로 다양한 행위자를 시장 안으로 들였지만 실제로는 기술과 기기가 주도하는 산업 구조 속에서 통신 사업자의 시장 확대를 위해 방송 및 콘텐츠 부문의 구조적 위기를 방치하는 방향으로 진행돼 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관련 업계에서는 “통신의 지배력이 결합상품, IPTV 등으로 방송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며 지배력 전이 가능성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정미정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도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공공 플랫폼을 어떻게 강화시킬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라며 정부의 방송 정책에 대한 점검을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정 교수는 “콘텐츠 저가화 구조를 타파하는 것은 단순히 이용자들에게 대가 지불의 의무를 전이시키는 방식으로 확보될 수 없다”며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방송 사업 및 콘텐츠 제공자들이 국내 방송 콘텐츠의 안정적 재생산과 재투자를 위해 필요한 직간접적 공적 지원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산업적인 측면과 이중적 전략을 공동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