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불법 감청 의혹 외면하는 지상파

[기자수첩] 국정원 불법 감청 의혹 외면하는 지상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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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경영진은 기업의 아픈 구석을 건드리는 기사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독자들은 그것을 원했지만 이미 상관없었다. 언론은 이미 광고주들의 것이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위기였다.”

월스트리트저널 편집국장이었던 폴 스타이거의 말이다. 돈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사를 만들고자 했던 폴 스타이거는 1991년 언론 재벌이자 미국 보수 진영의 킹 메이커를 자처하는 루퍼드 머독이 월스트리트저널을 인수하자 사표를 낸 뒤 프로퍼블리카라는 인터넷 언론을 만들었다.

할 말을 할 수 있는 언론이 되기 위해 처음 몇 년 동안은 광고 게재도 거부하고 기부금만으로 운영했다. 기업의 광고비 대신 다수 시민의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이 언론사는 2010년 온라인 매체로는 처음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미국 저널리즘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한 자에게 수여하는 상을 온라인 매체가 받은 것이다. 평균 취재 기간 2. 정부와 기업 등 권력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선정적이지 않은 보도를 내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프로퍼블리카의 모습은 언론이 가져야 할 진정한 역할과 자세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과연 현재 대한민국 언론은 진정한 언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최근 지상파 방송사의 무보도행태가 도마에 올랐다. 국가정보원이 민간 통신 장비 업체를 통해 이탈리아 해킹팀의 불법 감청 프로그램 RCS(Remote Control System)를 구매해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방송사가 이 사안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민희의원실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상파방송 3사는 이 사실이 국내에 처음 알려진 79일부터 13일까지 메인 뉴스에서 단 한 번도 보도하지 않았다. 반면 종합편성채널 JTBC의 메인 뉴스 프로그램인 뉴스룸에서는 710일 보도를 시작으로 11일과 12일 각각 2, 136건 등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국정원의 대국민 불법 사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JTBC 뉴스룸 캡처

최 의원은 이탈리아 해킹팀이 76일 누군가로부터 해킹당해 400GB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인터넷에 유출되면서 외신에서는 이와 관련된 보도가 속속 이뤄졌는데 국내 언론에서는 79일까지 몇몇 보안 관련 언론 매체를 제외하고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보다 못한 프로그래머 한 명이 직접 유출 자료를 입수해 분석하고 외신을 번역해 자신의 블로그에 이번 사안의 심각성을 장문의 글로 쓴 79일 이후에야 겨우 언론 보도가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누구보다 먼저 사안의 심각성을 알렸어야 할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러한 사실이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방송사는 여전이 이 사안을 외면하고 있다.

폴 스타이거의 말을 빌리면 경영진은 정권의 아픈 구석을 건드리는 기사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독자들은 그것을 원했지만 이미 상관없었다. 언론은 이미 정권의 것이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위기였다로 현 상황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뉴스가 쏟아지는데 진짜 뉴스는 점점 찾기 어려워지는 현실에서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독자들이 원하는 말만 골라 하는 프로퍼블리카의 모습을 지상파 방송사에 기대한다면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