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능력 중심 사회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로 마련된 국가직무능력표준(National Competency Standards, 이하 NCS)이 현장의 목소리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어 도입 취지가 무색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NCS는 산업 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지식, 기술, 태도 등의 직무 능력을 정부가 산업부문별‧수준별로 체계화해 국가적 차원에서 표준화한 것으로 이를 기반으로 교육 모델과 학습 모듈을 만들고 있다.
문제는 산업 현장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인재를 만들어 내겠다는 NCS 분류 체계가 산업 현장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현 NCS 분류 체계는 지난해 6월 20일 제3차 국가직무능력표준 운영위원회(이하 운영위원회)에서 확정된 분류 체계로 이전까지 ‘대분류 20 정보통신–중분류 방송기술–소분류 방송제작기술’에 포함돼 있던 세분류 촬영, 조명, 음향, 편집 등이 이날 회의에서 갑자기 ‘대분류 08 문화‧예술‧디자인‧방송 관련직–중분류 문화 콘텐츠–소분류 영상 제작’으로 변경됐다. 전문가 타당성 검토까지 거친 방송기술 분류 체계가 전문가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은 운영위원회에서 변경 확정된 것이다.
이후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이하 연합회)를 비롯한 현업 방송기술인들은 방송기술에 대한 NCS 분류 체계가 산업 현장과 맞지 않는다며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 3월에는 ‘방송기술 NCS 직무 분류 체계에 관한 의견서’를 고용부에 제출해 “방송사의 방송기술 업무가 영상, 특수영상, 음향, 조명, 편집, 라디오 등으로 다양하게 나뉘어져 있는데 NCS 분류 체계에는 방송중계와 방송품질관리밖에 없다”며 “현업 종사자들은 물론이고 진로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 예비 방송기술인들이 방송기술이라는 직무에 대해 혼란스러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업 방송기술인뿐만 아니라 관련 업계에서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 음향기기업체 관계자는 “연극이나 뮤지컬 무대와 방송 무대는 공간 자체가 다르고, 방송은 전송하고 송출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같은 작업이라고 볼 수 없다”며 “NCS 분류 체계로 학습을 받는 사람들이 현장에 왔을 때 느끼는 괴리감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현업 방송기술인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6월 22일 고용부 주최로 열린 NCS 분류 체계 심사위원회에서도 연합회 측이 “방송기술은 방송 프로세스 전반에 이해가 필요한 직무로 제한된 시간에 품질과 효율의 조화로운 접점을 찾아 업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기술적 측면이 더 강조되는 분야”라며 “전자공학적인 기본 능력에 예술적인 창의력이 융합되는 직무이기에 방송기술은 대분류 20에 더 적합하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위원들은 “방송기술 업계 중심으로 봐서는 안 된다”며 현업 방송기술인들의 제안을 일축했다.
NCS 분류 체계의 핵심은 ‘현장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다. 학교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을 처음부터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필요한 직무 능력이 무엇인지 표준화해놓고 이 표준에 맞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현장에서 별도의 재교육 없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NCS의 핵심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나오는 목소리들이 정부 정책 담당자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안 되고, 반영이 안 된다면 NCS 분류 체계는 물론이고 교육 모델, 학습 모듈도 다 소용없는 짓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종인 연합회 사무처장은 “NCS 분류 체계 및 교육, 학습 모듈 개발 논의는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지만 NCS 분류 체계가 직무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면 소용없는 짓”이라며 “주요 공공기관과 기업에서 NCS 기반 직무능력평가 및 채용 모델을 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근간이 되는 NCS 분류 체계가 잘못될 경우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공산이 크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수정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