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백선하) 이르면 다음 주 중으로 국가재난안전통신망(재난망)의 700MHz 주파수 분배가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가 계획하고 있는 재난망 주파수 위치가 통신사에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전형적인 ‘통신 편향성 주파수 알박기’라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미래부는 10월 10일 오후 지상파 방송사와 통신사들을 상대로 각각 사전 설명회를 열어 ‘재난망 주파수 분배(안)’을 공개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했다. 업계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명목을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재난망 주파수 분배 계획의 일방적인 통보였다.
사전 설명회에 참석한 한 방송사 관계자는 “재난망 주파수 대역을 표시한 자료 1장 달랑 나눠주고 의견이 있으면 얘기해보라는 식이었다”며 “말로는 의견을 달라 했지만 결국 지상파 방송사들의 의견을 반영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들으러 간 자리였다”고 토로했다.
더 큰 문제는 주파수 위치다. 이날 미래부가 제시한 계획에 따르면 재난망에 분배될 700MHz 대역 주파수는 718~728MHz(10MHz 폭), 773~783MHz(10MHz 폭)다. 이는 지난 2012년 1월 최시중 위원장 시절의 구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의결한 ‘모바일 광개토 플랜 1.0’에서 명시한 728~748MHz, 783~803MHz 총 40MHz 폭을 고려한 계획이다. 미래부가 통신 편향적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앞서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인총연합회 등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는 “700MHz 대역 주파수를 차지하기 위한 통신재벌들의 막대한 로비가 펼쳐져온 상황에서 그전에 논의조차 없었던 700MHz 대역 재난망 구축 논의가 한두 달 만에 급물살을 타고 있다”며 “겉으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 하고 속으로 통신 재벌을 배불리려는 양두구육식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의심을 벗어나려면 미래부가 모바일 광개토 플랜을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고 강력 주장한 바 있다.
구 방통위가 의결한 모바일 광개토 플랜은 단순 의결 사항일 뿐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아 사실상 효력이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미래부가 이를 기정사실화해 통신사들에게 주파수를 내어 주기 위한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미래부가 내놓은 재난망 주파수 분배(안)을 보니 그동안 의심이 사실로 확인된 것 같다”며 “재난망을 내세워 700MHz 대역 주파수를 통신에게 다 주려고 하는 의도를 지금이라도 바꿔야 한다. 모바일 광개토 플랜을 백지화하고, 재난망 우선 배정 뒤 나머지 대역을 가지고 사회적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만약 바꾸지 않고 지금의 계획을 계속 밀고 나간다면 시민사회단체들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뿐만 아니라 이날 미래부가 제시한 재난망 주파수는 미국의 퍼스트넷(재난망)과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미래부가 국제 표준 운운하고 있는데 같은 PS-LTE 방식을 쓰는 미국과도 조화가 안 된다. 미국과 조화를 시키면 북미 시장에 단말기와 기지국 장비도 수출할 수 있고, 상호 구조 파견 시 단말기도 그대로 쓸 수 있다”고 꼬집은 뒤 “전파 자원 자체가 공익적 자원인 만큼 700MHz 대역 주파수를 재난망과 무료 보편적 서비스인 지상파 UHD 방송을 위해 활용하는 게 올바른 선택이 아니겠느냐”고 미래부의 계획에 의문을 표했다.
700MHz 주파수 대역을 둘러싼 방송사와 통신사의 힘겨루기는 결국 대안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지상파 UHD 방송을 위해 주파수가 필요하다는 방송사는 700MHz 대역 주파수 외에는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반면 트래픽 해결을 위해 주파수가 필요하다는 통신사는 700MHz 주파수 외에도 다른 대안이 많다. 이미 확보해 놓은 2.3GHz 대역과 2.6GHz 대역은 지금 당장이라도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신사들은 여전히 더 많은 주파수 확보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700MHz 대역 주파수를 어떻게 사용해야 국민에게 이득이 될지, 어떻게 활용해야 더 공익적인지, 국민의 재산인 주파수를 둘러싼 마지막 공은 이제 미래부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