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백선하)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비공개로 논의하고 있는 통합방송법이 방송계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 원칙에 따라 방송 시장에서의 규제 완화와 차별 해소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만큼 통합방송법 제정은 방송 나아가 미디어 업계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까지 진행된 통합방송법 논의들이 유료 방송 중심으로만 이뤄지고 있어 ‘반쪽짜리’ 법안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박상호 공공성TF 연구위원은 9월 22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9간담회실에서 열린 ‘국감 이슈 연속 토론회–사업자 민원으로 얼룩진 정부의 방송 규제 완화’에 참석해 “통합방송법은 방송법과 IPTV법을 합치는 것을 전제로 거론되고 있는데 미래창조과학부는 통합유료방송법만 논의하고 있다”며 “통합유료방송법이 제정된다면 반쪽짜리 법에 머물 뿐만 아니라 유료방송법 자체가 사업자들의 민원의 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미래부와 방통위가 운영 중인 ‘방송법‧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법(IPTV법) 규제체계 정비 연구반’ 일명 통합방송법 연구반은 유료 방송의 규제체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연구위원은 “방송이라는 영역이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으로 무 자르듯이 구분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광고를 두고 모든 방송 사업자가 이전투구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료 방송 사업자만 규제 완화의 특혜가 제공된다면 방송 생태계에서 공적 영역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태섭 동의대 교수 역시 유료 방송 중심의 규제 완화가 지상파방송 등 공적 서비스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유료 방송 중심의 과도한 규제 완화는 결국 돈을 낸 만큼 이용자 복지를 가져가라는 식으로 흐를 수 있어 상당히 위험하다”며 “야당 측에서 여당과 합의를 통해 길환영 방지법 등 그동안 논의되어온 공적 서비스 조항 등을 통합방송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같은 의견에 대해 연구반 활동을 하고 있는 이종관 미디어미래연구소 연구원은 “통합방송법 논의가 작은 부분부터 정비해 큰 틀로 나아가는 ‘미세조정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어 공공성, 공익성과 같은 거대 담론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한 뒤 “UN의 Post-MDG 보고서에서도 ‘Leave no one Behind’ 즉 ‘누구도 소외되게 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첫 번째 의제로 설정하고 있고, ITU 2014에서도 ‘시장의 힘만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내용을 의제로 설정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어긋나는 것 같다”며 공익적인 부분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부분에 동의를 표했다.
또한 제대로 된 통합방송법 제정을 위해 좀 더 체계적인 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현재 통합방송법 논의는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다. 오는 11월 중 법안 작업 완료, 내년 초 입법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하는데 법안 완료를 한 달여 앞둔 지금까지도 공개된 내용이 없다.
박 연구위원은 “2000년 통합방송법 마련 과정에서는 공공성과 산업성이라는 상충되는 가치 지향을 하나로 담는 과정에 다양한 논의와 의견수렴의 장이 마련됐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때와 비교해서 첨예한 이슈가 더욱 많음에도 불구하고 미래부 주도의 연구반을 중심으로 밀실 연구로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경환 상지대 교수도 “조금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투명화된 논의 과정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면서 “정부가 지향하는 정책 방향을 던져 놓고 사회적 논의를 활발하게 형성해야 후에 미래부가 실패를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미정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 역시 “얼마 전 기사를 보니 방통위가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다’고 말하던데 11월 법안 제출을 앞두고 있는데 아직까지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은 스스로 졸속 법안임을 증명한 것 아니냐”면서 미래부와 방통위의 논의 과정을 비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방송 영역에 대한 정부의 지배력 강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김경환 상지대 교수는 “지난 통합방송법 논의도 방통위 안에서 논의되다가 유야무야됐는데 이번 통합방송법 논의는 미래부가 방통위의 권한을 가져오겠다는 의도로 시작된 것이어서 미래부와 방통위 간 거래로 기형적인 통합방송법이 나오는 건 아닌 가 우려스럽다”고 말한 뒤 “더 큰 문제는 방송에 대한 정부의 지배력 강화”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컨트롤하기 쉬운 사업자에게 규제를 완화해주는 것 같다. 공정한 경쟁을 위한 환경 조성이라는 명분을 깔고 있지만 특정 사업자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