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쓰기’는 저널리즘이 아니다

[분석] ‘받아쓰기’는 저널리즘이 아니다

836

(방송기술저널=백선하) 모든 뉴스는 사실에 기초해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보도에서 우리나라 언론들은 사실을 보도하지 못했고, 진실도 전달하지 못했다. 제대로 된 뉴스를 보도하지 못한 것이다. 이에 대해 총체적인 부실을 드러낸 언론사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세월호 참사 보도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방송기술저널

‘받아쓰기’는 제대로 된 저널리즘이 아니다

지난 12일 오후 2시 30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19층에서 한국방송학회 주최로 열린 ‘세월호 참사 보도의 문제와 정책적 대안’ 세미나에 참석한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보도 참사라는 ‘혹평’은 현장에 투입된 취재진들의 미숙한 행태로 인한 점도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오랫동안 고착된 취재 보도 관행에 따른 받아쓰기 보도의 폐해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정부 기관이나 출입처가 제공한 보도 자료나 구술 자료를 아무런 의심 없이 ‘진실’로 둔갑시킨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다.  

YTN 해직기자이자 방송기자연합회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승호 위원장 역시 이에 공감을 표했다. 조 위원장은 “재난 보도를 하면서 정부 발표를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부 발표와 함께 각 언론사 기자들이 현장 취재한 내용을 동시에 보도해야 한다. 유가족들의 주장과 어민들의 인터뷰 등 현장의 상황을 자세히 취재해 정부의 발표가 옳은 지 그른 지 판단하면서 보도해야 하는데 세월호 참사 보도에서는 이런 부분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뉴욕 맨해튼 아파트 붕괴 사고가 발행했을 당시 뉴욕타임스는 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웠지만 사고 발행 약 2시간이 지나 첫 보도를 했다. 촌각을 다투는 속보 경쟁 보다 정확한 사실 보도로 오보를 줄인다는 언론사 내부의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도 마찬가지다. 런던의 지하철 테러 사건 당시 BBC 역시 다른 언론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련 소식을 늦게 전했다. 사실을 확인하는데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실 확인’이라는 검증은 그대로 언론사에 대한 신뢰로 이어진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보도에서 우리 언론들은 사실 확인보다는 속보 경쟁에 치우쳤다. 언론사 내부 자성의 목소리가 철저히 요구될 수밖에 없다.

 

재난 보도는 ‘쇼’가 아니다

선정적인 보도 경쟁이라는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재난 보도에 대한 조사 연구에 따르면 시민들은 객관적이고, 진지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보도를 바란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보도뿐 아니라 크고 작은 재난 보도에서 우리 언론이 보여준 태도는 참혹한 사고 현상과 유가족들의 오열 모습 등을 여과 없이 보도하면서 배경 음악을 깔고, 최상급의 부사나 형용사로 강조하는 등 재난 보도의 주요 요소 중 하나인 냉정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배경 음악이나 앵커 멘트 없이 카메라로 묵묵히 줄지어 서 있는 경찰과 소방대원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CNN의 영상이 그 어떤 언론사의 영상보다 기억에 남는 이유다.

지난 2010년 발생한 칠레 탄광 사고 현장을 취재한 영국 가디언지 조나단 프랭클린 기자 역시 “한국의 재난 보도는 공인이 아닌 일반인의 감정 변화에 지나치게 집중한 측면이 있다”면서 “이는 언론이 공정성을 해치고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접근하는 나쁜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박성제 MBC 해직기자도 페이스북을 통해 “뉴스 중간 타이틀에 음악 좀 넣지 마라. 이건 올림픽이 아니라 재난 방송이잖아”라면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차분하게 전달해 달라고 당부했다.

 

‘국가 재난 주관 방송사’가 왜 존재하는가?

이번 세미나에서는 색다른 목소리도 제기됐다. 토론자로 참석한 정일권 광운대 교수는 “세월호 참사 보도를 보면서 과연 종일방송이 필요한가? 그리고 같은 내용을 여러 방송사가 똑같이 보도하는데 주관 방송사가 왜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들었다면서 “주관 방송사가 존재하면 기본적인 정보 전달은 주관 방송사로 통일하고, 나머지 방송사는 자율적으로 분석 방송을 하던지 다른 방송을 하던지 알아서 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냐”고 말했다.

사실 ‘과잉 보도’는 세월호 참사 보도 문제점 중 하나로 제기된 바 있다. 당시 KBS 1TV와 2TV,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4개 채널, 종합편성채널 4개 채널, 보도전문채널 2개 채널 등 약 10개에 해당하는 주요 채널이 1주일 넘게 세월호 참사 사건만 종일 생중계하다시피 했다. 국가적 재난이기 때문에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 똑같은 내용을 각기 다른 방송사에서 똑같이 보도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일부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그렇다 보니 전문적인 분석이 뒷받침된 정확한 방송이 아닌 속보 방송, 선정적인 방송으로 시청률 올리기에만 급급했다는 것이다. 분명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언론사의 파행적 지배구조 개선해야”

마지막으로 정 교수는 “사회 전반에서 언론 보도에 대해 비판만 하고 있는데 왜 그런 보도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원인을 들여다보고, 그 근본을 해결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전 KBS 기자)는 “KBS 파업과 길환영 사장 해임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언론의 자유가 제대로 허락되어야 한다”며 지배 구조 개선 문제를 언급했다.  

이에 대해 방송사 한 관계자는 “지배 구조 개선이라는 문제까지 드러난 세월호 참사 보도는 현 우리나라 언론의 총체적 문제를 보여줬다”면서 “오히려 이번 기회를 통해 언론이 내부적으로 스스로 반성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 제대로 된 언론으로 바로 설 수 있다”며 희망의 뜻을 전했다.

민낯을 드러낸 언론이 앞으로 내부 반성과 제도적 개혁을 통해 사실에 기초한 진실 보도라는 기본 원칙을 되찾을 수 있을 지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있는 수많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